
고도를 기다리며
공삼
작품 내에서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베케트조차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냐는 질문에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 이라는 답을 남긴다.
따라서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관객들,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끊이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으며, 그에 대한 정의는 결국 이 희비극을 관람하는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 연극의 의미를 처음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파리의 산 퀜틴 감옥의 재소자들이다. 고도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초자연적인 존재일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종교적인 암시는 그의 작품 안에서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영적인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어떤 우주적 존재가 아닌 보다 추상적인 개념일지도 모른다. 죽음이나 희망과도 같은,
상퀜틘 감옥의 재소자들은 이 '고도'를 감옥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바깥세상'이라고 해석했다.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들을 그들이 마침내 얻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엔 고통스러운 환멸뿐일 것이라고,
***
띄엄띄엄 떨어진 책상과 의자 자신의 주위로 친구들이 요란스레 떠드는 것이 거슬렸지만 그저 창밖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은 창밖 넘어, 보다 아득한 미래에 있었다.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당당하게 짝을 만날 수 있겠지. 만에 하나 그의 짝이 미성년이라면 기다려야 하는 날이 조금 더 길어지겠지만 그 정도쯤이야.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복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제가 원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들, 그 모든 것이 지루해 니노미야는 그 가운데 홀로 유리되기를 자처하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자신이 바랬던 그의 새로움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시선 한점 마주치지 않았는데 익숙하고 달콤한 통증이 그의 척추뼈를 관통했다. 그의 새로움에 이끌린 니노미야의 몸은 제멋대로 중력을 잃고 우주로 부유하려 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 절대로 만날 수 없을 거라 단념하고 꾸준히 체념해 왔든 터라 예상하지 못했든 이 만남은 마치 세계가 뒤집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가져다줄 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점점 그에게로 가까이 오는 그 아이의 발걸음에 니노의 온 신경이 집중했다. 아이의 발걸음 소리에 맞추어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고 당장에라도 눈물이 흐를 것처럼 열기가 몰려들었다. 이름을 보고 같은 일본인 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같은 성별에 또래 일 것 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니노미야는 그가 은연중에 그려왔던 자신의 모든 상상이 부서지고 새로이 생겨났다.
하긴 네임에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귓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무심한 척 턱을 괴고 있는 손에 식은땀이 흘렀다. 항상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네가 누구인지 너무 궁금했어. 있잖아 SNS는 왜 안 해? 내 이름은 어디에 있어? 있잖아. 네가 정말..
그리고 그 모든 말이 니노미야의 들떴던 마음처럼 잔뜩 부풀어 오른 그 순간 그 아이는 자신의 가방을 니노미야 자리 책상위로 풀썩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에 맞추어 니노미야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 안녕! 니노미야 카즈나리 맞지? 내 짝이랑 한자가 같아서 깜짝 놀랐지 뭐야?! "
하?
니노는 방과 후 엉덩이를 뭉개고 있던 오노가 있을 미술실로 달려가 그 앞에서 에어 드럼을 한 곡 아니 두 곡쯤 연달아 연주하고 나서야 잔뜩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었다. 바스스한 흑발이 곤두선 체로 니노미야가 고개를 돌릴 때 마다 풀썩풀썩 소리를 내며 그의 마음처럼 흐트러졌다.
"그럴 수가 있어? 그럴 수가 있느냐고!!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한자 읽는 법도 몰라!!!"
니노 네 이름이 특이하게 읽는 경우 라는 걸 명심해 뒀어야지..
그래도 그렇지!! 그 몸뚱어리는!! 이름통도 없대!?!! 지 짝이!! 제 눈앞에 있는데!!! 읽는 방식이 좀 다르다는 이유 따위로 지 짝도 못 알아봐!!!
한참을 화를 쏟아내던 니노미야는 점점 작아져 바닥에 들러붙었다. 오노상.. 아이바가 영원히 눈치채지 못하면 어떡하지…. 습관적 우울함이 구름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그럴 일 없어. 만약에 아이바가 가지고 있는 게 내 이름이 아니라 다른 사람 거면 어떡하지…. 괜찮아 그 애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 너잖아
..흑
그렇겠지? 오노상 언젠간 알아보겠지?
"그렇겠지…?"
***
사실 사무엘 베케트는 네이머 였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런 연극을 썼던 걸 거야
어느 날의 대화 속에서 흘려 들었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감겨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젠가 놀러 갔던 니노미야의 방 책상 한구석에 꽂혀 있던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이바에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아직 어린 네이머들은 어떤 사회적 통념보다 당장 자신의 짝을 만나야 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는 본능이 강하기 때문에 그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되는데 그 책은 그중에서 어린 네이머들의 교육의 목적으로 읽히는 권장도서 중에서도 아주 유명한 책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이었지만 읽어보았다는 그 기억만은 선명한 그 책은 책의 주인 또한 여러 번 읽은 듯 책등이 제법 너덜너덜해져 있었고 조심스레 펼친 책장 안에는 물 자국이 점점이 번져 있었다. 사실 그건 물 자국이 아니라 눈물 자국이었던 거 아닐까? 그 사람도 사실 자신의 고도를 기다리고 있던 거야 잔잔한 물안개처럼 퍼진 목소리가 작은 방을 메워 시야가 흐릿한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시선만이 선명했다.
***
오늘도 핸드폰은 잠잠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몇 번인가 울린 게임 알람음과 실없는 소리나 해대는 몇몇 놈들의 연락을 뺀다면 핸드폰은 잠잠한 게 맞았다. 맞나? 아이바는 거실 티브이에 연결해 놓았던 플레이스테이션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리다 방에 올라가서 방학숙제나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방으로 올라왔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에 꼭 쥔 핸드폰은 조용했다. 땀에 젓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아 내고 다시 한 번 핸드폰을 쳐다봤지만 이런다고 올 연락이었으면 진작 왔을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우니 책상 위에 아무 의미 없이 펼쳐진 문제집이 보였다. 슬슬 방학숙제를 시작해야 하나? 몇 번 펼쳐보는 척했던 문제지와 학습지가 지나치게 깨끗해 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다른 애들은 숙제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릿속엔 단 한 사람이 남았다.
사실 아이바는 그를 둘러싼 친구들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게 니노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도. 자신의 짝과 이름의 한자가 같은 그 친구는 이따금 자신이 아니라 자신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영문 오를 친구는 이따금 가을 하늘처럼 흐린 눈동자로 자신보다 더 먼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 큰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럴 때면 아이바는 도저히 그에게 다가갈 수가 없어서 그저 그의 이름이 있는 부위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차라리 속 시원히 말해준다면 저도 나도 편할 텐데.
아이바는 침대에 몸은 던지듯이 누워 다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마츠모토에게 문자를 남겼다. 있잖아 쥰. 나 니노에게 뭔가 실수 한 거 있나? 방학식에도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옆자리에 아이바는 핸드폰 자판을 꾹꾹꾹 눌러 니노에게 문자를 남겼더랬다. 한참을 고르고 골라 간신히 보낸 그 일곱 글자는 그가 문자를 보냈던 간절함을 배신하듯 무색하게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그의 핸드폰은 조용했다. 그 순간 마츠쥰에게 답장이 도착했다. 응 있지. 화면을 채운 건 영문 모를 소리뿐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
아이바는 숙제를 하기에 앞서 방 청소를 먼저 하기로 했다. 원래 이런 거 할 때는 청소 먼저 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거잖아. 괜히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문제집들을 착착 정리하는 척하고 먼지 좀 쓸어보고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도 괜히 한 번씩 훑어보고. 음 절대 시간 때우려고 앨범을 펼쳐보는 건 아니니까
태어난 순간부터 있는 찍힌 사진들은 켜켜이 모여 심심할 때나 혹은 이번처럼 일을 미뤄야 할 때 좋은 도피처가 돼주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니노네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앨범 봤었지. 킥킥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라나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낯설어 나오는 건 웃음뿐이었다. 아 유치원에 가기 전엔 네임이 없었지 아마 네임이 발현했던 게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였나. 아이바의 경우 네임이 발현하면서 겪는다는 발현통도 상대방의 글씨가 바뀔 때마다 겪는다는 네임통도 없었다. 이따금 있는 어린 네이머들을 위한 상담에서 아이바가 자신의 경우에 대해 이야기 하자 모든 것을 들은 상담사는 흐리게 웃으며 아이바의 짝은 아주 상냥한 사람 인가보다. 라는 영문 모를 말을 남겼을 뿐이다.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 앨범을 계속해서 넘기자 어렸던 자신은 어느샌가 자라 초등학생이 되어있었다. 아이바의 오른손을 크게 들어 브이 하는 습관은 이름이 떠오르고 나서 생긴 것이다. 오른손 손목 안쪽 비교적 남들의 눈에 잘 보이는 위치에 떠오른 짝의 이름은 남들에게 자랑하려 하지 않아도 잘 보이는 위치였기 때문에 처음 이름이 떠오르고 나서 학교에 가게 된 날 전교에 소문이 나서 곤란했던 기억만은 선명했다.
흐린 화질 너머로 삐뚤빼뚤 새겨진 글씨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금은 단정한 한자로 바뀐 그 글씨가 당시에는 히라가나였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 바로 만날 수 있을까? 니노미야 카즈…. 나리?
..也 (なり)?
반은 엉망에 반은 정돈 돼 있던 방안에 턱 괴고 앨범을 넘기던 아이바위로 번개 같은 깨달음이 내려치는 순간 아이바는 방 밖으로 나왔다. 아이바를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세도 없이 짝이 맞지 않은 신발을 억지로 구겨 신었다는 것을 의식할 세도 없이 그저 뛰었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이 야속했다.
내달리는 걸음걸음마다 흘리는 너와 함께 할 미래가 너무나 기껍고 애틋해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아마 싹싹 빌게 되겠지 몇 달은 아니 몇 년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지도 몰라. 당장에라도 만나면 멍청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내 이름이 어디 있느냐고 물어봐야지 그리고 그리고 또
'니노 몸은 괜찮아? '
척추를 타고 흐르는 통증은 사실 니노미야에겐 이미 익숙한 것이었다. 어둡고 좁은 그 방에 광원이라고는 오로지 핸드폰 화면 너머의 다정함 뿐인듯했다. 잔인한 그 일곱 글자에 니노미야는 아무런 답 없이 핸드폰을 끄고 땀에 식은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북받치는 설움에 턱 끝이 아득하게 떨려왔다. 멍청아 그게 아니야.. 수면 위로 떠올랐던 별이 기어코 흘러넘쳐 배겟잎을 적시고 허공으로 흐날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바라던 말은 그게 아니야. 액정 너머로의 상대방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였다.
***
'고도를 기다리며 '는 사무엘 베케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격은 피신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으로 그가 피신지에서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 한 것이다. '고도를 기다리며 '의 경우 일반적으로 부조리극 분류되지만 … 작품 내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두 주인공의 기다림의 대상인 '고도'는 극의 막이 내리는 그 순간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두 주인공은 그들 자신이 '고도'가 누구인지 어떤 외모를 가졌는지 언제 오는지도 모르고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심지어 ' 고도 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인지 확신하지도 못한다. 극 중후반 부에 등장해 고도는 오늘은 못 오고 내일 꼭 올 것이라고 두 주인공에게 소식을 전하는 소년만이 고도가 실존하는 걸 알리는 유일한 증인이지만, 그 다음 날은 그 전날과 모든 것이 같고 어제가 어제 인이 오늘이 오늘인지 이미 발생했거나 발생하지 않은 것들의 반복 속에서 그들은 그저 고도를 기다릴 뿐 인체로 막을 내린다.
이를 통해 베케트는 인간의 삶을 단순한 '기다림'으로 단정 지어버리고 이런 기다림 속에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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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식 하루 전날 이었다.
모든 시험이 끝나 선생들이 아이들을 교실 책상앞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사라진 요즘이었다.
"니노."
호명은 찌는듯이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반쯤 열린 창 그 위를 가로지는 은회색 창살 그 사이로 구름한점 없이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그 보다 가까이에 펼쳐진 운동장에선 결코 무시 할수 없는 함성소리가 울려퍼졌다. 무더위는 많은 이들의 의욕을 무참히 꺽었지만, 한창떄의 남학생들의 혈기만은 꺽을 수가 없었고 밖에서 들려오는 야유와 함성소리는 체육선생님이 자습하라며 던져준 공에 정신 팔린 개새끼들 처럼 달려나가 망할 축구인지 농구인지 염병인지를 하러 나간 정신나간 새끼들의 것이었다.
어떤 놈이 삼점 슛을 넣었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아서 엉거주춤 어설프게 내려앉은 커튼과 그림자 틈세에 숨은 니노미야는 오노가 사다준 아이스를 물고 등장한 보스를 잡기 위해 다급하게 달그락 거렸다. 차가운 아이스를 물고 있느라 차가워지기 시작한 입술이, 시려오고. 꾹꾹꾹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들이 눌러대는 게임기의 버튼들이 질러대는 비명소리가 거슬려 게임기를 바꿀때가 됬나 라고 생각 할때였다. 마츠 쥰이 덜컥 그의 은신처에 침입한것은
이제 슬슬 말해야 하는거 아니야?
사실 거슬리던 것이 게임기 였을지 아님 아이스를 물고 있던 입술 이었을지 아니면 바깥에서 들려오던 함성소리속 섞여있던 너의 이름 탓이었을지 그것도 아니면 척추 끝마디가 떨려오기 시작한 탓인지
시비 털지마 제이
니노. 우리 이제 3학년이야
도데체 언제 까지 숨길 셈이야? 애정어린 질책이 니노미야를 아프게 찔렀다. 쥰은 상냥하고 다정했지만 필요할때는 가차 없이 혹독하게 굴었다. 입 다물고만 있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란걸 알고 있잖아.
" ..개학하면. "
일단 이 방학이 끝나면
단둘만이 있던 교실에 마무리되지 못한 말의 끝 마디가 손에서 떨어진 게임기와 함께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숨죽인 비명이 선두로 교실을 가득 메우고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와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와 게임기의 알람 음이 그 뒤를 따랐다. 모든 사람이 사라져 텅 빈 교실에 메마르게 울려 퍼지는 게임 종료음만이 교실바닥에 고여서는 학기가 끝났음을 쓸쓸하게 외치는 듯했다.
프랑스의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1999년 7번째 달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올 것이다. 라는, 이젠 유명하다 못해 식상해진 이 문장은 노스트라다무스 사후에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되었다. 그의 예언을 맹신했던 대게의 종말론자들은 천제의 별들이 일직선이나 십자형으로 늘어나면서 대재앙이 다가온다는 주장이나 거대 혜성의 충돌로 멸망할 것이라는, 자신들의 해석을 보편적으로 설파했지만 김빠지게도 8번째 달이 지고도 9번째 달이 지고도 심지어 마야의 달력이 끝나는 날에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세계 곳곳의 나신에서 침묵 속에 떠오른 문자들은 다른 의미에서의 세계의 멸망을 선언했다. 어쩌면 그 날이야말로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했던 예언의 날이었던 걸지도 모르지.
불특정 다수의 나신에서 소리 없이 떠올랐던 타인의 이름들은 세상 밖에 그들의 존재를 처음 알린 그 순간부터 질 나쁜 장난쯤으로 치부되었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직 인정되지 않았을 무렵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허무하리 만치 간단한 이유와 우연에서였다. 이름이 생겼던 이들 중에 학자가 있었고, 그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다. 강단에서 내려와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었던 그 노인은 어느 날 자신과 자신 배우자의 몸에 떠오른 서로의 이름을 연구하는 것에 기꺼이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한다.
연구를 거듭해 그 노인은 어린아이가 필기구로 낙서 한 것 처럼 보였던 노부부의 몸의 서로의 이름의 성분이 잉크가 아닌 멜라닌 색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그 어떤 인공의 것이 아닌 인체 내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어 피부 표면층에 떠오른 것으로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사이에서 공통된 특징을 가진다는 것 또한 발견한다.
각자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게 된다면 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나 참 연애소설도 적당히 봤어야지. 논문을 읽은 학자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비웃음이 학계를 떠돌았다. 그 외견이 어떤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문신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서로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 어떠한 다툼도 고난도 역경도 없이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이 동화적 결말은 현실에 존재하기엔 지나치게 로맨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 전설 같은 존재들의 수는 점점이 늘어났고 학계를 벗어나 사회 전반에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치매 노인의 심심풀이 같았던 연구에 점점 투자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더욱 많은 표본이 생기고 마침내 자신의 몸에 자신이 한적 없는 문신이 생겼다는 연예인의 사진과 그리고 어느 날 신생아의 눈동자에 선명하게 떠오른 이름에 세계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정식 학명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으나 표기를 위해 임시로 적었던 'NAMER' 라는 명칭은 단순히 지문에 처음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비공식 학명이 되었다. 이름을 뜻하는 영단어 'NAME'에 동사나 명사 뒤에 붙어 행위자 혹은 실행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접미사 'ER'을 붙여 만든 합성어로 그 뜻은 그 만들어진 과정처럼 단순하고 명징하다.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기서 이름을 가졌다는 것은 본인의 것이 아닌 타인의 이름을 가진 것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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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도록 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저 우연한 확률로 만나게 될 때 까지 정확한 기약도, 일말의 확신도 없이 냉동고에 갇힌 생선처럼 꼼짝없이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기분은? 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인지 하물며 성별은 무엇인지 생김새도 나이도 그 어느 무엇도 하나 알 수 없는,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단서라곤 몸 어딘가 어쩌면 본인조차 확인 할 수 없는 부위에 상대방의 필체로 쓰인 이름뿐인, 사람의 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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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는 아직 이름이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무렵부터 네이머들의 러브 스토리를 보고 자랐다. 틴에이져 소설에서나 나올법했던 네이머들의 존재들은 소설가들과 극작가들에겐 너무나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었고 곧 그들의 러브 스토리는 극장가와 안방극장을 가득 메우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네이머들은 일반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곧 그들의 존재 자체는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 소울메이트와 영원한 사랑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랑 이야기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 또한 네이머이길, 자신의 몸 한구석에도 이름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니노미야도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던 평범한 아이였다.
그래서 그 또한 만약에 자신이 네이머라면 제 짝을 만나게 된다면 그 이후의 달콤한 미래만을 꿈꾸었다. 티비에서 주구장창 보여주는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네이머이고 내 짝을 만나게 된다면 급식에서 나오는 간식은 전부 그 애에게 줘야지 그 애도 나처럼 날생선은 싫어할까? 혹시 나처럼 게임을 좋아할까? 밤새도록 같이 게임을 한다면 즐거울 텐데. 가방에 자꾸 부딫히는 탓인지 등 한구석이 간지러운 와중에도 니노미야는 하굣길 내내 아직 만나지 못한 짝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밤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그립다'라는 말을 알게 된다.
그 단어를 처음 배운 이후 니노미야는 여타 다른 아이들이 해맑게 웃을 때 얼굴도 모르는 제 짝이 하염없이 그리워 눈물을 쏟았고 그 나이때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있을 때 극심한 탈수로 인한 진정제 섞인 수액을 맞으며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신경이 곤두섰다 가라앉기를 반복했고 불안했으며 그립고 슬펐다. 일상실황에 지장이 갈 만큼 우울해 했기 때문에 그는 부모님 손에 이끌려 상담소를 주기적으로 다니게 되었다. 부모님 손에 잡힌 여린 손은 그저 제 몸 어딘가 새겨진 글씨가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가는 길 내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 니노미야가 가장 슬펐던 것은 그 글씨의 주인에 대해 그가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자신보다 나이는 많은지 적은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나와 같이 날 그리워는 하는지
게다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 아로새겨진 그 글씨들은 짝의 글씨체가 바뀔 때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통증을 그에게 선사했다. 본래 있던 것 위에 새로이 새겨지는 그 통증은 그 옛날 화인을 찍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서 니노미야는 그런 날이면 학교를 결석하고 꼼짝도 못 하고 앓아누웠다.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익숙한 처방약 봉투와 물병을 타고 흐르는 회의감과 우울함이 익숙한 듯 그의 머리맡에 고일 때면 니노미야는 그동안 참아왔던 얼굴도 모르는 제 짝에 대한 욕을 퍼부었다.
이깟 이름이 뭐라고 상대방의 글씨체가 바뀔 때마다 고열에 앓아야 하며 시시때때로 항우울제를 섭취해야 하는지 게임을 하기도 바쁜데 효과도 없는 그놈의 상담은 왜 받아야 하는지 아무 이유도 모르고 우울해야 하고 턱 끝까지 차오르는 설움에 발발 떨리는 턱으로 울음을 참아내야 하는지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너를 왜 애타야 하는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고 허상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 지긋지긋한 통증까지도 달갑고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니노미야는 환상통을 겪을 때마다 이부자리에 뒹굴고 배겟잎을 깨물며 통증을 내가 지금 물고 있는 것이 사실 배겟잎이 아니라 얼굴 모를 상대방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으로 참아내곤 했다. 그는 언젠가 상담소에서 꼭 읽으라고 받았던 책의 한 구절을 밤새도록 외고 외웠다.
이 세상 눈물의 양은 정해져 있다지. 누군가 울기 시작하면 다른 누군가는 울음을 멈추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웃음도 마찬가지라고...
별이 지지 않는 새벽 동안 위 하늘에 흐르는 것이 사실 별이 아니라 자신의 눈물 인듯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전 세계인들의 관심은 몇 번의 범죄와 그 실체가 드러나자 빠르게 식었다. 마냥 로맨틱하기만 할 줄 알았던 네이머간의 사랑 이야기는 예상외로 수많은 불법적인 것들을 낳았다. 전 세계 모든 인구가 네이머가 아니었기 때문에 발생한, 유명 연예인이나 자산가들의 네임을 알아내어 그들의 짝 행세를 하는 일종의 네이머 사기가 가장 유명했고, 보편적이었다. 불법 의료 시술로 만들어진 이름에 한 사람의 이름을 여러 명이 가지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정확한 판별을 위해서는 고가의 의학적인 검사를 필요로 했다.
게다가 그런 부차적인 것을 제외하고도 네이머들 간의 범죄도 상당했다. 이름이 있는 부위에서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과 짝을 찾아야 한다는 본능은 네이머로 하여금 상대방에게 맹목적이 되게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나이 차가 심한 짝을 너무 어릴 때 만나게 된다면 말로는 이룰 수 없는 착취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오는 착취이든
사실 니노미야가 어렸을 무렵에 도시 곳곳에는 불법 네임 검색기가 있었다. 미성년이건 성인이건 할 것 없이 본인의 동의만 있다면 자신의 이름과 상대방의 이름을 그 검색기 데이터베이스에 올릴 수가 있었고 그 기계로 아직 법적인 체제가 마련돼있지 않았을 당시 많은 네임파트너들이 서로를 만날 수가 있었다. 사설에서 법망을 피해 운영하는 것이다 보니 데이터베이스에 자신의 정보를 올려두는 것과 검색을 하는 것에 고가의 비용을 요구했고 그 비용은 어린 니노미야가 강담하기에는 너무나 고가의 비용을 요구했지만, 니노미야는 기꺼이 감내해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을 성인 네이머가 아직 어렸던 자신의 네임 파트너를 지속해서 감금, 성폭행해왔다는 사실이 용감한 이웃을 통해 밝혀지고 일본 전역에 퍼졌을 때 니노미야의 동네에 있던 모든 사설 검색대가 사라졌다. 니노미야는 그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애지중지했던 돼지 저금통을 깨 그동안 사고 싶었던 새 게임기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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