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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염좌    twitterpostype

8월 18일의 아이바군

​염좌

7번째.

< 8月 15日 >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옥상 위에 떨어진 쓰레기들은, 바람을 따라 무도회장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춤을 추고, 니노미야는 하늘을 바라보며 차가운 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다. 팔을 따라 올라가던 하복의 소매는 제 짧은 길이를 견디지 못해 제자리에 멈춘다. 말랐으면서 살짝 튀어나온 배가 호흡을 따라 위아래 운동을 반복한다. 니노미야는 옆에 놓인 먹다 남긴 빵과 아직 새 것인 바나나맛 우유를 슬쩍 바라본다.

 

"우리 매점 우유 말이야, 맛있어서 매일 먹고 싶다고 네가 자주 말했잖아."

 

종이 우유 곽에서 시선을 하늘로 돌린다. 8월 중순, 여름의 하늘은 따가운 햇볕이 얼굴을 찌르고 여전히 습했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바람에 니노미야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중얼거린다.

 

"아이바, 거기서는 멍청한 짓 안 하고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누워있는 니노미야의 위로 사람 형상의 그림자가 진다. 옥상으로 올라오는 층계참이 있는 사각형의 건물 위에 숨어있던 아이바가 뛰어내려온 것이다. 귀를 가리는 길이의 검은 머리가 커튼을 치듯 햇빛을 가린다. 니노미야는 뭐하냐는 얼굴로 눈썹을 찌푸리고 아이바는 오리 입술을 삐죽 내민다.

 

"저기, 니노. 그렇게 말하면 내가 죽기라도 한 것 같잖아."

 

니노미야의 얼굴 바로 옆에 아이바의 엉덩이가 자리 잡는다. 니노미야는 곁눈질로 아이바의 엉덩이를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린다. 살아있음 됐지. 그의 반응에 아이바는 하복의 단추를 풀며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잖아, 라고 한 마디 덧붙인다. 니노미야의 바나나 우유는 어느새 빨대가 꼽혀 아이바의 입 속에 들어가 있다.

 

"야, 내 껄 왜 네가 먹어."

"에? 먹을 거 였어? 니노 이 우유 싫어하잖아."

"...아이바군은 정말, 변하질 않네."

"뭐야. 무슨 뜻이야, 그거!"

 

 

말 그대로의 뜻. 니노미야가 피식 입 꼬리를 올린다. 쿠루룩. 이상한 소리를 낸 우유 곽은 어느새 텅 빈 채 아이바의 옆에 놓인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곁에 한 쌍의 젓가락처럼 드러눕는다.

 

 

니노, 하늘은 왜 자꾸 봐?

그냥. 너 닮아서.

나는 저렇게 안 높은데?

하늘이 높기만 한 건 아니잖아, 멍청아.

 

니노미야의 말에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아이바가 갑자기 몸을 벌떡 올려 앉는다. 옆에 누운 니노미야의 배를 통통 치기 시작한 아이바는 꽤나 흥분한 얼굴이다.

 

"완전 까먹고 있었어!"

 

니노미야가 얼굴로 작게 물음표를 그린다.

 

"언제였지. 아, 18일! 18일 새벽에 하늘에서 별이 내린대! 으응, 어떻게 부르더라. 사람들이 뭔가 엄청난 이름으로 부르던데."

"유성우?"

 

아이바의 올라간 목소리에도 니노미야는 여전히 시큰둥한 눈치다. 그러나 그런 니노미야의 반응은 아이바에게 아무런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아이바 마사키는 이미 니노미야 카즈나리와 함께 별을 보러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응! 그거! 별똥별이 가득 내리는 하늘이래. 무지 멋지지 않아? 우리 옥상에 소원 빌러 오자. 주변에 빛이 많으면 별이 내리는 게 잘 안 보인대. 학교 주변은 온통 산이잖아!"

 

양 팔을 벌려 유성우의 흉내를 내는 아이바를 한참 바라보던 니노미야가 입술을 뗀다.

 

"저기 아이바, 그거 알아?"

"응?"

"학교 옥상보다 훨씬 별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에엑, 거짓말. 어딘데? 아이바가 벌렸던 양 팔을 다시 바닥에 붙이며 니노미야 쪽으로 몸을 굽힌다. 헐렁한 검은 반팔이 하복 사이로 존재감을 더한다. 니노미야는 덤덤하게 말을 덧붙인다.

 

 

"내가 하는 게임 속 광장에는 밤만 되면 별이-"

 

아이바의 높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니노미야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바보."

 

누가 바보래. 어쨌든 가기 싫어. 귀찮아.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게으른 몸으로 니노미야가 대꾸했다.

 

니노 바보, 바보.

 

서운한 목소리. 아이바의 목소리는 커피포트 속의 물같다. 화가 나면 숨소리가 섞여 연기를 뿜듯 끓어오르기도 하고 기쁘면 또 그 감정대로 부글부글 넘실댄다. 그가 가끔 차갑게 식을 때는 오로지 혼자 있는 시간뿐이다.

 

상냥한 사람들은 전부 자신의 좋은 감정만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것 같다. 감정은 전염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일찍이 자각하고 타인에게 그 마이너스를 옮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나는 상냥하지 않으니까, 그 쪽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하지만 플러스. 플러스. 플러스. 그렇게 플러스를 쏟아부어버린 마음의 공식에는 어느새 마이너스와 등호 밖에 남지 않아서, 아이바는 가끔 홀로 괴로워한다. 니노미야는 그걸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별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멍하니 아이바에 대해 곱씹던 니노미야의 양 팔을 어느새 붙잡은 아이바가 밭의 채소라도 수확하는 것처럼 그의 상체를 들어올린다.

 

"야, 엉덩이뼈 아파."

 

아이바의 손에 묶이듯 끌어올려진 니노미야에게 그는 확신에 들어찬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니노는 같이 가줄 꺼지?"

"..."

"유성우 말이야."

 

...빌어먹을 유성우. 속으로 욕을 지껄이는 니노미야의 표정을 불쌍한 강아지가 훑는다. 니노미야는 한숨을 쉬고 답한다. 몇 시에 내리는데. 그의 질문에 아이바가 급하게 교복 바지에 숨겨 두었던 폰을 꺼내 인터넷을 킨다. 이내 "새벽 2시! 그럼 우리 1시 30분에 만날까?" 라며 활짝 웃는 아이바의 얼굴을 니노미야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니노미야는 알고 있다. 유성우는 2시가 아니라 1시 2분부터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옥상에는 저 혼자 앉아있을 것이고 아이바는 오지 못할 것이다.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린다.

으악, 우리 다음 수학이잖아! 자신이 먹었던 빈 우유 곽을 주우며 아이바가 급하게 옥상의 문을 연다. 니노, 가자! 낡은 철제문은 기름칠을 기다리는 동화책의 깡통맨처럼 끼익 소리를 낸다. 흑발의 머리카락이 계단 아래로 점점 사라져간다. 니노미야는 천천히 아이바의 뒷모습을 눈에 익히며 층계를 따라 내려간다. 그 놈의 별, 이젠 그만 좀 보고 싶은데.

 

 

 

7번째.

< 8月 16日 >

 

 

운명을 믿는 니노미야는 가능하다면 해피 엔딩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지만. 마찬가지로, 7번째 맞이하는 16일은 꽤나 견디기 힘들었다. 교실에는 여전히 바보같이 웃는 아이바가 있고 그는 빗자루 싸움에서, 사와다에게 7번째로 질 것이다. 7전 7패. 역시 운명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 도시락, 함바그 싸왔어. 같이 먹자!"

책상을 붙이면서 제 도시락을 자랑하는 아이바의 저 말도 7번째다. 아이바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함바그는 맛있지만 6번이나 같은 음식을 먹다 보면 조금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뭐, 함바그니까. 늘 맛있다. 치즈 함바그지? 라고 니노미야가 묻자 아이바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가방에서 제 도시락을 꺼내던 니노미야의 팔이 잠시 멈춘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치즈 함바그의 반을 주고 시작되는 똑같은 점심시간은 아이바의 시시콜콜한 축구 시합 이야기로 흘러간다.

 

"니노는 A반 애들이랑 축구 시합 할 때 어디 있었어? 나 무지하게 활약했었는데. 진짜 보여주고 싶었어."

"헤에, 우리 반이 이겼나보네."

"응, 응. 나 혼자 3골이나 넣었다니까!"

 

 

손가락 3개를 펼치며 아이바가 웃는다. 하지만 니노미야는 어? 라고 짧게 되묻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책상 의자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간다. 니노, 의자가 뒤로-. 아이바의 말을 끊은 니노미야가 그의 어깨를 세게 부여잡는다.

 

 

"아이바, 너 지금 3골이라고 했어?"

"어? 응....왜? 뭐야, 그렇게나 안 믿기는 거야? 나도 할 때는 하는 아이바니까!"

 

 

3골. 니노미야는 6번의 기억을 더듬었다. 첫 번째 기억에서 아이바는 "나 혼자 2골이나 넣었다니까!" 라고 기뻐했다. 두 번째 기억에서도 아이바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똑같은 대사를 읊었고 니노미야는 그 말을 무시했다. 세 번째 기억에서도 마찬가지였고 혹시나 싶어 니노미야는 때마다 다르게 반응했지만,

 

- 활약했으니까 저녁 사줘

- 대단하네

- 그래서 우리 다음 시간은 뭐더라

 

바뀌는 건 없었다. 아이바는 결국 똑같은 경로를 거쳐 제자리로 돌아왔다. 빙글빙글, 끝도 없이 돌아오는 미로. 니노미야는 모든 순간이 평생 제 자리를 유지할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바의 어깨를 쥔 니노미야의 손에 힘이 들어가지만 그는 꿈쩍도 않는다. 오히려 걱정되는 눈치로 니노미야의 얼굴을 살핀다. 니노? 어디 안 좋아? 그러면 니노미야는 천천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로 돌아와 자리에 앉는다. 앞에서 계속 추궁해대는 아이바를 무시한 채 제 앞에 놓인 도시락 통을 연다. 지금까지와 다름없는 새하얀 밥, 돼지간장조림, 계란말이.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콩자반.

 

왜 이제 와서, 별은 희망을 주는 걸까.

 

 

"뭐야, 나한테도 말해줘."

"별 거 아니라니까. 그냥 세 골이나 넣었다기에 놀란 거야. A반에 그 축구부 10번 녀석 있잖아."

"미즈카미?"

"뭐, 대충 그런 녀석."

 

 

니노미야가 능숙한 젓가락질로 콩을 하나 집어 올린다. 아이바는 애써 웃는 니노미야의 입 꼬리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니노미야는 콩 하나를 제 작은 입 안에 넣으며 말한다.

 

어쨌든 세 골 넣은 거. 축하해.

 

***

 

아이바와 니노미야가 집으로 가는 길은 단순하다. 소부센을 타고 늘 내리던 역에서 내려, 오른쪽 골목으로 쭉 꺾어 걸어가면 된다. 유치원을 마친 놀이터의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소리 지르는 광경이 눈에 보일쯤엔 각자의 집이 보인다. 어차피 옆집이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니노미야에게는 아이바의 농구부 활동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함께 이 길을 따라 집으로 오는 게 당연한 일상이었다. 16일도 마찬가지이다. 일상은 대부분 큰 변화가 없기에 일상이라고 부른다.

 

지하철의, 누군가에게는 음악 소리가 될 수 있는 소음을 들으며 아이바와 니노미야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이바가 옆에 선 니노미야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니노, 내일 알지?"

"내일 뭐."

"유성우 보러 가기로 했잖아. 주말이라고 밤늦게까지 게임만 하다가 잠들면 안 돼. 아니다, 새벽까지 게임만 하면 안 늦고 올 수 있겠네. 응, 응. 같이 간식 먹으면서 별 보자."

"너 말이야, 말하는 거 못 알아듣겠어. 그리고 12시가 지나면 내일 아니고 모레거든요, 아이바상."

 

아이바는 흥분하면 온갖 단어들이 섞여 한꺼번에 토해져 나온다. 그치만 신나는걸! 잔뜩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바를 뒤로 한 채, 니노미야는 열린 문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아이바는 그와 함께 계단을 따라 역을 빠져나가고 다시 길을 걷는다. 노을 지는 길목에서는 또 다시 점심시간과 마찬가지의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진다. 이걸로 7번째 같은 대화. 니노미야는 습관적으로 눈을 굴려 놀이터 아이들의 수를 센다. 바뀐 건 없다. 여전히 여자 아이 3명, 남자 아이 4명이다. 양 갈래로 묶은 머리도 그대로, 미끄럼틀을 타는 시간도 그대로다.

 

"저기, 니노."

 

아이바의 목소리가 떨린다.

 

"정말 같이 별 보러 가는 거 잊으면 안 돼. 알았지?"

"...뭐야, 그거 가지고 그렇게 떨면서 말하지 마."

"하하, 떠는 거 아니야."

"...."

"나 할 말 있으니까 꼭, 꼭 같이 가는 거다."

"그렇게 걱정되면 미리 만나면 되잖아."

 

미리 만나자, 라는 말은 몇 번이나 했었지. 이 녀석이 죽은 이후로 매번 했던 거 같은데. 별 기대 없이 니노미야가 툭 뱉은 말에는 역시나, 별 시원치 않은 답변이 돌아온다.

 

"그게, 내일은 뭔가 엄마가 일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래도 가게 일 마치면 금방 갈게. 지각도 안 할 테니까."

 

 

현관문 앞에 선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양 손을 꼭 붙든다. 니노미야는 양 손을 꼭 붙든 아이바가 다음에 무슨 말을 뱉을지 알고 있다. 문자할게. 안녕, 니노. 진부한 두 대사를 남기고 뒤돌아선 아이바는 문을 열기 전 한 번 더 짧게 손을 흔든 뒤,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니노미야는 그 문을 멍하니 바라본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니노미야는 오른발의 축을 돌려 제 집으로 향한다.

 

 

 

 

첫 번째.

< 8月 17日 & 18日 >

 

 

첫 8월17일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연락을 받은 건 오후 4시 32분이다. 아이바의 어머니가 울고 계셨고 니노미야는 깜짝 놀라, 하고 있던 게임의 STOP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고 니노미야는 그녀의 숨소리를 그대로 들으며 앞으로 듣게 될 불행에 대비했다. 그 다음 말을 들었을 때 니노미야는 입고 있던 낡은 흰 색의 반팔 티와 회색의 반바지를 입고 그대로 도쿄의 대학 병원으로 내달렸다. 눈물이 나지 않아서 참 박정한 새끼네, 라고 생각했다. 도착한 병원에는 아이바가 누워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보같이 웃고 있던 놈이다.

 

의사는 교통사고라고 했다. 대낮부터 술에 취해 트럭을 운전하던 운전수가 횡단보도를 걷고 있던 아이바를 보지 못한 것이다. 니노미야는 침대 옆에 가만히 서서 자신보다 움직이지 않게 된 게으른 아이바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네가 없는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모든 일은 시작하고 결국 끝을 맞이한다. 끝이 새로운 시작이라곤 하지만, 끝은 끝이다. 새로운 시작은 또 다른 일의 시작일 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니노미야는 자신과 아이바와의 끝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영원할 거라 믿는 순간 힘든 건 자신인데도. 니노미야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작은 손으로 문질러 없앴다. 호흡이 내리는 별만큼이나 가파르다. 점점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건 두려운 일이다. 겨우 숨을 고른 니노미야가 툭 한 마디를 던진다.

 

 

"....야. 별 보러 가자며. 멍청아."

 

약속도 안 지키는 새끼. 소설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진부한 대사를 읊으며 니노미야는 병실을 나섰다. 이후부터는 가족들과 마지막을 보낸다고 했다. 니노미야는 멍하니 병실 앞을 지켰다. 얇은 제 두 다리 위에 양 팔을 올린 채 하염없이 아이바가 있는 그 곳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앞으로는 어떡하면 좋지.

 

근데, '앞으로' 라는 게 있는 건가.

 

 

***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니노미야는 제 폰의 화면을 바라본다. 17일이 끝나고 18일이 시작되었다. 병원 시계의 초침 소리가 이제야 귀에 들어온다. 몇 시간을 한 자리에 앉아 꿈쩍도 않던 니노미야가 처음으로 그 곳에서 벗어났다. 그는 제 집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탈탈탈 지나간다. 원래라면 아이바가 태워주는데. 습하고, 짜증나는 여름의 바람이 피부를 타고 지나간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와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빨리 학교에 도착해버렸다. 시간은 아직 12시 40분이었다. 너무 일찍 왔네. 자전거를 대충 운동장에 세워둔 그는 옥상에 올라가 발라당 드러누웠다. 아이바는 아직 오지 않았다. 12시 40분이니까. 아직 오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다.

 

시간이 한참 남아서, 그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본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급하게 휴대폰을 확인한 니노미야는 시간이 1시 2분이라는 걸 확인하고 또 다시 별을 올려다본다. 칠흑 속에 뛰어든 과거의 흔적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니노미야는 넘실거리는 시야를 닦아내고 흐르는 별의 강물들에 집중한다. 아이바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 시끄럽게 떠들어댔을 것이다.

 

대박이야! 니노! 별이 이렇게 많이 쏟아질 줄은 몰랐어! 폰에 찍힐까? 아, 근데 사진은 제대로 안 나오네. 으악, 그럼 얼른 소원부터 빌까? 역시 내 소원은 -

 

 

 

"결국 그 바보는 못 봤네."

비도 오지 않는데 별을 따라 비가 쏟아진다. 니노미야는 입술을 꾹 깨물고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아이바에게 바보 병이 옮기라도 했는지 눈물이 멎질 않는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니노미야는 점점 옅어지는 별들을 바라본다. 어차피 떨어지는 별은 소원 따위 들어주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제 운명대로 죽어버린 게 저 별들인데.

 

그럼에도 니노미야는 입을 연다. 원래 사람은, 멍청한 희망을 부여잡고 산다.

 

 

"보고 싶어."

 

아이바.

 

 

***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더라. 멍한 얼굴로 잠에서 깬 니노미야는 침대 머리 맡 베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한다. 하지만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계단을 올라오는 시끄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그 소리에 니노미야는 깜짝 놀라 벽에 제 등을 붙인다. 덜컹 하고 열린 미닫이문에는 멍청하게 웃고 있는 아이바가 서있다.

 

"니노! 우리 지각이야! 자전거 타고 가자!"

 

 

두 번째.

< 8月 15日 >

 

"니노! 우리 지각이야! 자전거 타고 가자!"

아이바는 침대에 깡충 뛰어올라 니노미야의 팔을 끌어당겼다. 여전히 멍한 얼굴의 니노미야는 제 팔을 잡은 아이바의 온기를 확인했다.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건 아닌데. 끔뻑끔뻑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는 그를 아이바는 이상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상태 이상하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냐고? 당연히 있지. 니노미야는 곁눈질로 책상의 전자시계를 살핀다. 8월 15일. 확실히 15일이다.

 

"....아, 응."

 

아이바가 살아있는 15일. 아이바에게 그런 일이 생겼던 건, 전부 꿈인 걸까.

 

"조금 나쁜 꿈을 꿨, 는, 데."

 

천천히 입술을 깨무는 니노미야에게 아이바가 무슨 꿈이냐고 되물었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냥, 좀 나쁜 꿈. 그렇게 둘러댄 니노미야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등교를 했다. 점심시간에는 옥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나쁜 꿈과 똑같은 말투와 대사로 아이바가 말했다.

 

"언제였지. 아, 18일! 18일 새벽에 하늘에서 별이 내린대! 으응, 어떻게 부르더라. 사람들이 뭔가 엄청난 이름으로 부르던데."

"유성우?"

 

 

니노미야는 생각한다. 이런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 그래, 예지몽.

 

그럼 예지몽은 전부 들어맞는 걸까. 오늘이 아니라, 내일도, 내일이 들어맞으면 그 모레도. 니노미야는 다음이 수학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바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번째.

< 8月 16日 >

 

아이바는 치즈함바그를 싸왔다. 꿈과 같았다. 헤어질 때는 꼭 별을 보러 가야한다고 당부를 남겼다. 이것도 꿈과 다르지 않았다. 니노미야는 서서히 불안해졌다.

 

 

두 번째.

< 8月 17日&18日 >

 

약속시간보다 먼저 아이바의 집으로 향했다. 아이바는 집에 없었다. 꼭 사야할 게 있다면서 밖으로 나갔다는 아이바는 또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의 어머니가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는 장면을, 니노미야는 직접 목격했다. 병원으로 가자 꿈에서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있었다. 이상하지, 전부 꿈일 텐데. 결국 현실이 되었다. 무력감을 느낀 작은 몸뚱아리는 또 다시 절망한 얼굴로 병원 복도의 의자에 앉아 시간을 축냈다.

 

 

째깍, 째깍, 째깍. 시간이 흐를수록 느껴지는 불안감을 니노미야는 결국 떨쳐내지 못한 채, 비탈길을 따라 뛰어 학교의 옥상으로 향했다. 주머니 속 폰을 확인하자 시간은 12시 48분이었다.

 

이게 만약, 꿈이 아니라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새벽 1시 2분. 별이 내리기 시작했다. 니노미야는 또 다시 빌었다. 아이바 마사키를 보고 싶다고, 이번에는 그를 살려달라고.

 

 

 

 

7번째.

< 8月 18日 >

 

흔해빠진 이야기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시간을 반복하는 이야기. 적게는 몇 번, 많게는 정말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은 후회를 반복한다. 그러나 무한대의 후회의 다리를 건너봤자 결론은 늘 같다. 그들은 결국 제 연인을, 제 친우를, 제 혈연을 구하지 못하고 그렇게 과거를 흘려보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앞을 향해야 한다. 그게 그들이 말하는 해피 엔딩이다.

 

세 번째에서 니노미야는 17일 내내 아이바의 곁에 있었다. 가게를 도와야 하는 아이바와 함께 니노미야는 그 날 하루, 중화 식당에서 온종일 일만 했다. 그러나 운명은 변하지 않았다. 잠시 눈을 떼는 사이 그 멍청이는 제 멋대로 밖으로 나가버린 것이다.

 

4번째, 5번째에서 니노미야는 아이바를 미행했다. 그러나 정말 거짓말처럼 아이바는 어느 순간 제 시야에서 사라져버린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는 어떤 사람의 말은 사실일 지도 모른다.

 

그렇게 니노미야는 점점 운명을 믿고 싶지 않아졌다.

 

6번째. 니노미야는 별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별을 보러 가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결국 그 예상도 틀렸기에 7번째까지 와버린 거지만.

 

 

니노미야는 옥상 난간에 기대앉은 채 우유에 빨대를 꽂아 넣었다.

 

 

"우리 매점 우유 말이야, 맛있어서 매일 먹고 싶다고 네가 자주 말했잖아."

"아이바, 거기서는 멍청한 짓 안 하고 잘 지내고 있는 거야?"

 

 

했던 말을 굳이 되풀이해본다. 어쩌면 7번째에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으니까. 놀이터 아이들의 숫자가 변하지 않았어도, 그가 여전히 빗자루 싸움에서 연전연패를 기록했어도 이번에는 3골이나 넣었으니까. 나비효과라고, 아이바는 알려나. 니노미야는 피식 웃었다.

 

불쾌하고 찐득한 이 굴레 속에서 니노미야는 문득,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가끔 생각해본다. 15일. 16일. 17일. 18일의 새벽. 이 모든 시간들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이 곳에서 괴로운 사람은 없다. 결국 아무도 기억하지 못 할 테니까.

 

자신을 제외한다면.

 

1시 2분이다. 니노미야는 턱을 위로 올린다. 새까만 하늘이 보인다. 내려야 할 별들이 내리지 않았다. 심장 소리에 억지로 집중하게 될 때 쯤 하늘의 별이 내리기 시작한다. 1시 3분. 7번째 유성우는 1시 3분에 내렸다.

 

 

 

 

 

 

26번째.

< 8月 15日>

-

방 안에 가두기 실패. 힘만 쓸데없이 세가지고는 자꾸 도망감

너 죽을 거니까 제발 방 안에 있으라고 해봄. 실패.

그냥 흘려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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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는 얇은 수첩을 대충 주머니에 쑤셔놓곤 아이바의 입에 우유를 물려준다. 딸기맛 우유가 빨대를 타고 올라간다. 25번째부터는 세세한 것에 변화를 줘보기로 했다. 바나나맛 우유는 실패했으니 이번에는 딸기맛 우유였다. 빨대를 문 채 니노미야의 어깨에 턱을 괸 아이바가 묻는다.

 

저기 니노, 아까 그 수첩 뭐야?

무슨 수첩?

아까 열심히 쓰던 거.

 

아, 그거. 니노미야가 건조하게 답한다. 소설이나 써보려고. 소설? 응. 소설. 헤에, 나도 보고 싶어. 완성되면 보여줄게. 언제 완성되는데? 18일 아침. 이번 달? 엄청 빨리 쓰네! 아이바가 인상을 찌푸리듯 크게 웃는다. 니노미야도 그의 얼굴을 보고선 웃음을 흘린다. 어차피 18일 아침은 한동안 오지도 않을 것이다.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입을 꾹 다문 니노미야의 얼굴을 살피던 아이바가 갑자기 자리에 벌떡 선다. 어차피 이유는 알고 있다. 아이바가 삼각형의 입을 신나게 벌린다.

 

"까먹고 있었어!"

"언제였지. 아, 18일! 18일 새벽에 하늘에서 별이 내린대! 으응, 어떻게 부르더라. 사람들이 뭔가 엄청난 이름으로 부르던데."

"유성우?"

 

26번째의 날이 시작된다. 니노미야의 목울대가 자이드롭이라도 타듯 위태롭게 위로 올라간다.

 

***

 

26번째.

< 8月 16日 >

 

니노미야는 운명을 믿는다. 아이바는 그것을 알고 있고 아이바도 어쩌면 운명은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은 모든 게 운명으로 이루어져있다. 우연도 운명이고, 필연도 결국 운명이다. 좋은 건 운명이라고 믿는 편이 멋지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아이바가 니노미야를 앉힌다. 오늘의 니노미야는 어쩐지 이상하다. 내가 여전히 빗자루 싸움에서 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또 뭔가를 실수해서 그런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때는 물어보는 게 답인데. 지하철 손잡이를 양 손으로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아이바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니노미야가 먼저 그에게 물어본다. 니노미야는 주인을 잃은 인형처럼 가방을 꾹 껴안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바. 내가 이상한 질문 하나 할지도 모르거든. 그냥, 뭐. 음. 놀라지 말고 들어.

응? 뭔데?

....만약에, 내가 죽으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그냥 늙어서 죽는 게 아니라, 뭔가 당장 내일 사고로 죽는다거나. 뭐, 그런, 거.

 

 

마지막 단어가 쪼개지며 니노미야의 목소리에 안개가 진다. 아이바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굴을 앞으로 내민다. 손잡이를 잡았던 양 손은 어느새 니노미야의 가지런한 직각 어깨를 붙들고 있다. 마디가 굵고 가느다란 손가락은 꽤나 힘이 좋다. 아이바의 목소리가 떨린다.

 

"니노 내일 죽어?! 왜? 어디 아파? 병원 가자!"

 

니노미야의 답이 한 박자 늦게 뱉어져 나온다.

 

"....야, 안 죽어! 너도, 나도 안 죽어! 만약이라고, 만약! 이 바보가, 질문 받았으면 대답부터 해!"

 

뭐야, 걱정시키지마. 그제야 아이바는 조금 안심하며 그의 어깨에서 제 손을 뗀다.

 

다리를 지나는 지하철의 창문에 얇은 햇빛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들어온 빛은 아이바의 흑발을 머리를 감싸 안듯 검은색으로 흡수된다. 아이바는 팔짱을 낀 채 으응, 소리를 내며 끙끙 앓고 있다.

 

죽으면? 니노가? 아이바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꾹 감은 두 눈 사이의 주름진 미간을 젓가락으로 쭉 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니노미야는 가만히 앉아 그의 대답을 기다린다. 26번째. 아이바는 내일 처음 죽겠지만 니노미야는 26번째로 맞는 이별이다. 운명을 거스를 수 없던 그 많은 영화들의 결말을 생각할수록 니노미야는 조금씩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이바였다면. 뭔가 달랐을까.

 

파하! 아이바가 숨을 크게 내쉬더니 눈을 번쩍 뜬다. 잠수라도 길게 하고 온 사람처럼 숨 찬 모습의 아이바를 니노미야가 한심하게 올려다보았다. 뭐하냐.

 

 

"니노! 생각해봤는데."

 

아이바가 자랑스럽게 제 모범답안을 늘여놓는다.

 

"니노는 안 죽어!"

"...아니, 그래 나 안 죽는데. 만약에 그럴 운명이면 어쩔 거냐고 했잖아."

"그러니까!"

 

아이바의 눈이 밤도 아닌데 별처럼 빛이 난다. 저 눈이다. 여태까지 이 모든 후회들을 반복할 수 있게 해준 건. 자신을 바라봐준 저 눈 덕분이었다.

 

"니노는 내 옆에서 오래 오래 같이 있을 운명이니까, 죽는 건 이상하잖아."

"아니, 그러니까 죽는 게 운명-"

"같이 있을 운명이 더 세니까! 둘이 붙으면 이기지 않을까? 필살기가 있을 거야. ...음, 발차기 같은 거?"

 

억지논리였다.

 

"그리고 니노가 죽지 않게 내가 옆에 있어줄게. 같이 매일 등교하고 하교하고 집에 가잖아."

 

거짓말이다. 나보다 먼저 죽는 건 너다.

 

"그럼 우린 운명에 이기는 거네! 완전 멋지잖아?"

"...무슨 운명끼리 동네 싸움이라도 하냐."

"이상해?"

 

니노미야의 텅 비어있던 눈이 눈물로 가득 찬다. 원래 운명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들 하잖아, 라며 다시 곰곰이 고민하던 아이바가 니노미야의 눈을 바라본다.

 

그리고 말없이 니노미야의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는다. 내가 개냐. 라며 니노미야는 볼멘소리를 내뱉고 아이바는 쓰게 웃는다. 그가 울고 있다는 건 누군가 잘못했다는 뜻이다. 니노미야는 자신의 일로 울지 않으니까. 분명 내가 또 뭔가 멍청한 짓을 했겠지. 아이바는 이유를 묻는 것 대신, 사과를 건넨다.

 

"뭔가, 미안."

"....뭐가."

"뭐가 미안한 진 모르겠지만. 니노가 울면 내 잘못이잖아."

 

미안해. 아이바가 애교 섞인 비음으로 사과한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니노미야도 어이가 없다는 듯 눈물을 닦는다. 지하철의 문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향에서 열린다. 이제 내려야 할 시간이다.

 

 

 

43번째

< 8月 17日>

 

니노미야는 오늘 처음으로 아이바의 뒤를 밟는데 성공했다. 아이바는 가게에서 약간 떨어진 문구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래된 동네의 문구점은 골목 귀퉁이에 작게 있었기에 니노미야는 여태까지 그를 중간쯤 되는 지점에서 놓친 것이다. 어쩌면 42번의 반복된 시간 중, 15번에 걸친 미행에서 니노미야의 운동 실력이 조금은 향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곧 4시로 넘어가는 시간이다. 늘 이 시간대에 아이바가 사고를 당했고 4시 32분에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간다. 물론 사고가 나는 시간대는 미묘하게 변했기에 정확하진 않았다. 아이바는 문구점에서 편지지와 풍선을 샀다. 니노미야는 저런 걸 대체 왜, 라는 얼굴로 아이바의 뒤를 밟는다. 신호등이 빨간 남자를 그린다. 아이바는 신호를 잘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횡단보도 앞에 선 채, 편지를 바라보며 싱글 벙글 웃고 있다. 신호가 초록으로 바뀐다. 아이바가 한 걸음을 내딛고 뒤를 밟던 니노미야도 그를 쫓기 위해 골목 뒤에서 앞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빠앙- 소리가 나고 눈앞에 번개가 지나간다. 바로 앞에서 아이바의 몸이 한 번 튕겨져 나가는 걸 목격한다. 니노미야는 온 몸이 느려지는 감각을 느끼며 제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바에게로 뛰어간다. 퍽,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도로를 두어 번 나뒹군 아이바의 몸을 니노미야가 껴안는다. 트럭의 기사가 운전석에서 다급히 내려와 떨고 있다. 니노미야는 병원에 연락부터 하라며 소리를 지른다. 주변 사람들은 남 일 바라보듯 그들을 둘러싸거나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난다. 뭐, 남 일은 맞지만. 니노미야는 숨을 몰아쉬는 아이바의 목을 받치고 제 다리에 몸을 기대게 한다. 아이바는 여전히 편지지를 손에 꼭 쥐고 있다. 하, 하. 니노다. 새빨갛게 물든 치아를 바라보며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손을 꽉 잡는다.

 

곧 구급차 와. 괜찮아.

헤헤- 니노한테, 들켜, 버렸네

말하지 마. 피 토하면 내 옷에 묻잖아

 

니노미야의 작은 손이 어쩔 수 없이 떨린다. 억지로 참아보려 해도 멈출 수 없다. 막을 수 있었는데 막지 못했다. 이번 죽음은 순전히 제 탓이다. 얇은 입술을 꽉 깨무는 니노미야를 바라보던 아이바의 눈이 천천히 감긴다. 그가 힘없이 웃는다. 카즈, 카아즈. 부드러운 목소리가 자신을 부른다. 언제나의 이름이다. 정신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니노미야는 심연에서 빠져나온다.

 

"나, 해야 할 말, 있는데."

"...병원 가서 해. 치료 다 받고 그 때 해."

"...별, 혼자, 보러 가게 해서 미안."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멍청아."

 

별 대신 눈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이렇게, 고백하기, 싫었는데."

"나 말이야."

"카즈를-"

 

좋아해.

 

 

 

48번째

< 8月 18日, 12시 38분 >

 

 

운명은 존재한다. 니노미야는 여전히 운명을 믿고 있다. 하지만 운명은 우연의 산물이기도 하다. 갖가지 우연이 쌓이고 쌓여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톱니바퀴 하나가 무너지면 그것은 운명에서 다시 우연으로 바뀐다. 니노미야는 '그' 톱니바퀴를 이제야 발견했다. 확신은 없다. 그러나 믿고 있다. 왜냐하면 아이바가 그랬으니까.

 

 

-

"니노미야는 내 옆에서 오래 오래 같이 있을 운명이니까, 죽는 건 이상하잖아."

"아니, 그러니까 죽는 게 운명-"

"같이 있을 운명이 더 세니까! 둘이 붙으면 이기지 않을까? 니노 안 죽어."

-

 

 

니노미야는 학교 옥상에 미리 도착해있었다. 별이 내릴 시간이 앞당겨졌다고 아이바에게 미리 문자를 보내두었다. 오싹할 정도로 어두운 옥상의 바닥에 널브러져 누운 니노미야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은 무섭다. 그래서 눈을 감고, 억지로 이 어둠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으며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새긴다.

 

니노미야는 16일의 하굣길에 아이바에게 고백했다. 오늘의 아이바는 자신의 우유를 뺏어먹지 못했고, 빗자루 싸움에선 다른 아이의 도움으로 결국 이겼으며, 치즈 함바그를 싸오지도 못했다. 그리고 노을 지는 놀이터 아이들의 숫자는 평소보다 한 명 줄어있었다. 모든 우연이 완벽한 날, 니노미야는 집으로 걸어가는 길목에 아이바의 그림자를 밟으며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용기다. 마사키. 잘 부르지 않던 이름에 아이바가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렸다. 멈춰있는 니노미야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니노, 왜 멈춰 있어?"

"별. 보러 가기 전에 말이야. 할 말 있어."

"뭔데? 아, 혹시 손전등-"

"좋아해."

 

감색의 햇빛이 니노미야의 하복을 장식했다. 걸어가던 아이바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이바는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벌렸다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성큼 성큼 니노미야에게로 뛰어와 그를 제 품 안에 감싸 안았다. 흑발 머리는 햇빛에 닿아봤자 뜨겁기만 해서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머리를 잡아당기곤 뜨겁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아이바는 역시나, 듣지 못했다.

 

"카즈, 카즈으-"

"야, 더워! 너 운동도 해서 땀도 났잖아."

"진짜! 어떡하지!"

"뭐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아이바가 급하게 제 얼굴을 뗐다. 니노미야와 아이바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바는 여태까지 봤던 표정 중에 가장 주름지고 못생기고 멍청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너무 좋아!"

 

 

***

 

옥상에 누운 니노미야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인기척에 눈을 뜨자 캄캄한 어둠 속에 손전등을 든 아이바가 보인다. 턱 밑에 손전등을 받친 채, 귀신 흉내를 낸 아이바의 모습에 니노미야는 놀랐지만 굳이 과장하진 않는다. 야, 뭐해! 아이바의 손에서 손전등을 뺏은 니노미야가 허리를 일으킨다. 아이바의 손 한 가득 간식들이 보인다. 요즘 초콜릿을 좋아하더니 사온 것도 키노코노야마 뿐이다.

 

"너 말이야, 과자 사올 거면 종류별로 좀 사와."

"이거 맛있어!"

"그건 알아."

 

간식 비닐봉지를 자리에 내려놓으며 아이바가 니노미야의 옆에 앉는다. 근데 니노는 별이 일찍 내리는 거 어떻게 알았어? 뉴스에도 그런 소식은 없던데. 아이바의 말에 니노미야는 담담히 답한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에엑- 그게 뭐야. 아, 맞아. 나 오늘 하루 종일 식당에서 일만 했거든. 진짜 무슨 일이 있었냐면-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이야기에 온 힘을 다해 집중한다. 처음이다. 18일의 새벽, 아이바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전부 처음이라. 니노미야는 어쩐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눈동자 속 유성우들을 억지로 속에 집어넣는다. 시시콜콜한 잡담 속에 시간은 1시 2분을 가리킨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별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처음으로 유성우를 본 아이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니노미야의 팔을 잡아당긴다.

 

"니노! 별이야! 유성우! 니노가 맞았어!"

"...응. 그러네."

"대박이야! 니노! 별이 이렇게 많이 쏟아질 줄은 몰랐어! 폰에 찍힐까? 아, 근데 사진을 제대로 안 나오네. 으악, 그럼 얼른 소원부터 빌까?"

 

난간에 몸을 바싹 붙인 아이바가 별 속에서 환하게 빛난다. 소원을 빌자며 두 손을 겹친 아이바는 슬쩍 곁눈질로 그를 훔쳐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니노미야는 작은 손으로 난간을 꼭 쥔 채 그런 아이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귓불이 바싹 달아오른 아이바가 잽싸게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니노는, 소원 안 빌어?

 

아이바의 질문에 니노미야는 소원? 하는 얼굴을 짓더니 여전히 아이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소원이라. 짧게 답한 니노미야의 시선이 천천히 별로 향한다.

 

“별, 예쁘네.”

 

 

 

 

***

 

 

1번째. 공란

2번째. 꿈인 줄 알았다

3번째. 아이바와 쭉 함께 있었다. 바보같은 아이바. 혼자 나가지 말라니까

4, 5번째. 미행했다. 실패했다

6번째. 별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

7번째. 변화한 상황에 맡겼다 *3골

8번째. 아이바에게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9번째. 아이바를 가뒀다. 뭐야, 원숭이야? 창문을 어떻게 타고 나간거야

10번째. 아이바가 부모님께 외출금지를 받도록 했다. 미안, 에로비디오 훔친 거 나야. 근데도 얘는 탈출을 성공했다

11번째. 별을 보러 가면 죽으니 보러 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12번째. 너 따위 싫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바는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13번째. 별 내리는 거 사실 다 뻥이라고 했다. 아이바는 믿지 않았다

14번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또 반복될 것이다.

15번째. 사람은 무력하다

16번째. 아이바에게 새벽에 같이 나가자고, 집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했는데. 바보 아이바. *놀이터의 아이들 수가 변했다

17번째. 17일에 아프다고 학교에 결석해보았다. 아이바가 병문안을 와줬지만 실패했다

18번째. 별을 다른 곳에서 보자고 제안했다

19번째. 아이바를 친 트럭 운전수를 미리 음주 운전으로 신고했다. 다른 차가 사고를 냈다

20번째. 하루만 쉬었다. 미안

21번째. 다른 친구들과 함께 별을 보러가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바가 빗자루싸움에서 이겼다. 22번째. 아이바와 나누는 대화를 조금 바꿔보았다

23번째. 빵과 우유를 주지 않았다

24번째. 같이 하교하지 않았다

25번째. 우유 맛을 바꾸어보았다

26번째. 25번째와 동일. 아이바가 바보 같은 소리를 했다.

27번째. 아이바와 빗자루 싸움을 하는 사와다의 빗자루를 손질해두었다. 사와다의 빗자루가 먼저 부러졌다. 그래도 변하는 건 없었다

28번째. 치즈함바그 대신 그냥 함바그가 나왔다

29번째. 변화없음

30번째. 변화없음

31번째, 32번째, 33번째. 변화없음

34번째. 미행에 실패

35번째. 골목 근처에서 아이바를 놓쳤다. 늘 이 주변에서 놓친다. 어디로 가는 거지

36번째. 이번에도 미행 실패

37번째. 아이바의 말이 진짜이길 바란다

38번째. 무섭다. 이 곳에 혼자 남겨질 것 같다

39번째. 아이바의 폰을 고장 냈다. 별이 내리는 시간 같은 거, 학교에서 알지도 못하게

40번째. 미행 실패

41번째. 미행 실패

42번째. 미행 실패

43번째. (공란)

44번째. 빗자루 싸움에서 아이바가 이겼다. 치즈 함바그도 나오지 않았다

45번째. 아이바가 그 날 왜 밖을 나가려고 했을까. 편지지에 뭘 적으려고 했을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이유가 뭐였을까

46번째. (공란)

47번째. (공란)

48번째. 이제 그만 써도 될 것 같다. 곧, 18일의 아침이 밝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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