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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미카즈키    twitter │ postype

愛より君

아이바, 나 또 여자친구랑 헤어졌어.

 

 

 

마치 어제저녁으로 카레 먹었어, 같은 이야기를

 

하는듯한 어투와 표정으로 애인과의 이별을

 

말하는 니노미야의 행동에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아이바의 젓가락질이 멈춰졌다.

 

또 해어졌다니, 그럴리가 없는데, 이번에 만난

 

아이는 그러니까……. 분명 니노랑,

 

 

 

"진짜야? 해어졌어? 니노, 걔랑은 뭔가가

 

통하는 것 같다며, 이십몆년 만에 만난 운명

 

뭐 그런 거라며, 대체 왜 해어진 건데?"

 

 

 

걔랑 너는 해어지려야 해어질 수가 없는데.

 

 

 

"그게 말이지, 같이 살아보니까 안 맞더라고."

 

 

 

풉, 아이바는 그만 물을 마시다 말고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너, 너 같이 살았어? 걔랑? 거짓말!

 

나한테는 본가로 갔다고 했잖아!"

 

 

 

"진짠데, 살다보니까 안 맞는 게 너무 많아서

 

해어졌어, 어제부로 짐도 뺐고, 본가간다고 한 건

 

여자 친구랑 산다고 하면 너 기겁할까 봐 그랬고.

 

나 다시 너랑 같이 살 건데, 너 내 방 안 치웠지?"

 

 

 

함바그를 잘라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눈은

 

휴대전화기에 고정한 체 말을 뱉어대는 니노미야의

 

태도에 아이바는 그냥,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너랑 걔를 이어줬는데.

 

어떤 마음으로 짐을 넘겨준 건데, 거짓말을

 

한 것도 모자라서 여자 친구와의 동거라니.

 

 

 

"역시 난 너랑 있어야 되나 봐, 혹시 내 운명이

 

너인 거 아닐까, 어떻게 생각해 마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제 애칭을 불러오며 웃는

 

얼굴이 괜스레 얄미워서, 아이바는 미간을 구긴

 

체로 제 앞에 놓인 음식으로 시선을 던졌다.

 

니노미야와 같이 시킨 함바그는 니노미야의

 

것과는 다르게 반도 넘게 남아있다, 입안이 괜히

 

씁쓸해져 죄 없는 입안의 살만 씹어댔다.

 

언제나 저런 식이다, 장난스럽고, 뻔뻔하고.

 

 

 

"마-군, 삐쳤어? 내가 너희 집 다시 들어가는 거

 

싫어? 아님 나랑 운명인 게 싫은 거야?"

 

 

 

어 삐쳤어, 달랑 네 마디만 뱉어내고서 아이바는

 

다시 입을 닫았다, 속이 쓰려 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네 운명은 내가 아니거든 이 바보야.

 

너랑 헤어진 걔가 네 운명이라고.

 

 

 

난 그냥, 너 짝사랑하다 끝낼 불쌍한 조연1이고.

 

 

 

뱉어내지도 못할 말이, 입안에서 맴돈다-.

 

아이바 마사키는 어릴 때부터 남의 눈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곧잘 보이고는 했다, 작게는 남의

 

기운이나 성질 같은 것부터 크게는 귀신까지.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운명도 아이바의 눈엔

 

보였다, 사실상 보였다기보단 느껴졌다, 지만.

 

그러니까 왜 그런 것이 있지 않은가, 서로 운명인

 

사람들은 붉은 실로 맺어져 있다는 그런 거.

 

아이바의 견해로 봤을 때, 그건 정설이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실을 가지고 있고,

 

그 실의 끝을 가진 사람도 정해져 있다.

 

다만 그 실이 하나인 사람, 여럿인 사람, 진탕

 

꼬여있는 사람, 제각각 실의 모양새가 다를 뿐.

 

 

 

그리고, 꼭 아이바가 좋아하는 사람은 아이바와

 

운명이 아니다 못해 상극을 달리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좋아했던 첫사랑의 여자애도,

 

중학교 시절 처음 사귀었던 여자친구도.

 

고등학교 때 만나 대학 생활 2년 내내, 장장 5년을

 

제게 빌붙어 사는 절친이자 짝사랑 상대마저도.

 

그들의 붉은 실은 다른 이와 이어져 있었고

 

심지어 모두 아이바와는 상극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아이바의 사랑은 외사랑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었다, 아이바의 마지막

 

사랑은 니노미야였으니까, 그렇게 정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여자친구도 소개해주기

 

싫었다, 어느 짝사랑 남이 자기 짝사랑 상대가

 

자기 말고 딴 사람이랑 잘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아이바는 달랐다, 아이바 마사키는 세상

 

제일 착하고, 세상 제일 바보 같은 인간이니까.

 

니노미야는 여자를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바는

 

여자를 소개해 달라는 니노의 말에 일단 혼자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원하게 하루

 

종일 울고, 다음날부터 니노의 운명을 찾아줬다.

 

세상 가장 예쁘고, 반짝이고, 다정한 니노의

 

기운과 걸맞은 예쁘고 반짝이고 다정한 기운을

 

찾기 위해 대학교 곳곳을 돌아다니며 겨우 찾은

 

붉은 실의 주인을, 눈물을 머금고 맺어준 짝을.

 

 

 

"삐쳤다더니 집 열쇠는 주네, 비밀번호는?"

 

 

 

"안 바꿨어, 네 생일 그대로다, 됐지."

 

 

 

그렇게 쉽게, 때어내고 돌아 올 줄 몰랐다.

 

운명의 붉은 실은 이렇게나 약한 실인 걸까.

 

어쩐지 허탈한 기분마저 밀려오는 느낌이다.

 

 

 

니노미야는 너무도 태연했고 그게 아이바를 더

 

서글프게 만든다, 빈번한 짝사랑에 수도 없이

 

받은 상처들, 이것도 그 상처들과 다를 게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가슴이 말도 못하게 쓰리다.

 

아무래도 제가 니노미야를 많이 좋아하는

 

탓이겠지, 어쩐지 이번의 짝사랑은 퍽 지독하고

 

또 무척 오래 갈 것 같다고 아이바는 생각했다.

 

 

 

"역시 네 집이 제일 편하다, 아-큰일 났어.

 

나 네 집이 너무 익숙해, 결혼해서 다른 집 가선

 

못살 것 같아, 아. 너랑 결혼하면 여기서 살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

 

 

 

"끔찍한 농담 마라, 우리 친구잖아.

 

친구 사이에 결혼 하는 거 봤어 넌? 난 못 봤다."

 

 

 

"뭐 어때, 소꿉친구가 애인 되고 애인이 부부 되고

 

다 그런 거지, 우리라고 못할 거 없잖아?"

 

 

 

"니노, 넌 여자 좋아하잖아, 난 남자고."

 

 

 

"......그러고 보니 그러네, 그럼 말자, 결혼같은거."

 

 

 

신나서 말할 땐 언제고 평소의 뚱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며 대꾸하더니 그대로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눈을 감는다, 사람 속 다 흔들어놓고는

 

저러고 있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괜히 진정된

 

속이 다시 쓰려 오는 것만 같다, 아이바는 그대로

 

일어나 집을 나와버렸다,미칠 것 같았다.

 

이 짝사랑이 얼마나 오래갈지 이제는 겁이 난다.

 

흔들리는 건 아프고 끊어내는 건 고통스럽다.

 

떠나주면 좋겠지만 없으면 미칠 듯 공허했다.

 

니노미야에게 마음을 주면 줄수록 두려워진다.

 

나는 어디까지 더 떨어져야 널 놓을 수 있을까.

 

아이바는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다만.

 

전화기를 걸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만날

 

약속을 잡았을 뿐이었다, 아이바 마사키는.

 

니노미야 카즈나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

 

애쓸 예정이다, 사람은 결국 운명대로 살아야

 

가장 행복하고 안전할 수 있으니까-.

 

카페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니노미야는 느리게 눈을 굴리며 다 식은

 

커피잔 속 커피를 바라본다, 시나몬 가루가 둥둥

 

뜬 것이 영 식욕이 당기질 않았다, 아이바였다면

 

눈치껏 아메리카노를 시켜줬을 텐데 정말이지,

 

 

 

"....너 참, 한결같이 센스없다, 나 카푸치노

 

안 먹는데, 그것도 모르면 어떡하냐 전 애인이."

 

 

 

"네가 나랑 같이 커피 마실 시간은 냈고?

 

연애 시작부터 지금까지 너, 내 얼굴 이렇게

 

마주 보고 이야기한 거 오늘까지 포함해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 무슨 뜻인지 알지."

 

 

 

"알아, 그래서 해어져 줬잖아."

 

 

 

"해어져 준 게 아니라 네가 차인 거지.

 

난 아직도 이해 못 해, 넌 누굴 좋아했던 건지

 

모르겠어, 날 좋아하긴 했어 너? 아니면.

 

네 친구인 아이바란 아이를 좋아했던 거야."

 

 

 

무심히 테이블을 훑던 눈이 크게 떠져선 맞은편

 

여자에게로 향했다, 여기서 왜 아이바의 이름이.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아이바를 어떻게,"

 

 

 

"걔가 나 찾아왔었어,키 크고, 웃는게 예쁘더라.

 

듣자하니 중화요릿집 아들이라던데.

 

니노미야, 너 혹시 걔 좋아해? 아니지?"

 

 

 

왜, 아니라고 생각해?

 

 

 

니노미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그라니 뜬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뭐가 문제인 거냐고.

 

 

 

"걔, 너랑 같은 남자야-남자가 남자를 좋아해?

 

그게 가능해? 너 진짜,"

 

 

 

"가능해, 나 보면서도 모르겠어? 미안한데.

 

나 네 말대로 걔 좋아해, 근데 있지."

 

 

 

걔가 너를 왜 만나? 언제? 뭐라고 했는데?

 

 

 

".....나보고 너 좋은 애라더라."

 

 

 

좋은 애라고? 니노미야는 헛웃음을 치고 말았다.

 

보나 마나 그 바보는 내가 남들한테도 자기를

 

대할 때처럼 치대고 정을 주는 줄 알고 있는 거다,

 

어쩐지 부글부글 속이 끓어 오르긴커녕 차갑게

 

식어만 간다, 보이지않게 테이블 밑으로 내린

 

주먹을 꽉 쥐며 애써 태연한 얼굴을 유지했다.

 

 

 

"너 속정 많고, 애교도 많고, 착한 아이라고.

 

내가 네 운명이니까 내가 너 좀 잡아달라더라.

 

애가 좀 투덜대는 게 있긴 한데 그거 본심 아니고

 

그냥 말버릇이니까 너무 상처받지 마시라고."

 

 

 

대체 누굴 걱정하는 거야 그 바보는, 상처받은건

 

오히려 이쪽인데 왜 쟤가 상처받는 걸 걱정해.

 

 

 

니노미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제 앞에 놓인

 

얼음물을 들이키곤 느리게 눈을 한번 슴벅였다.

그래, 이 여자애가 내 운명이라고.

 

 

 

"있지, 우리 다시 만나볼래, 우리가 진짜 그 사람

 

말대로 운명이라면 나 만나면서,"

 

 

 

"너 만나도 난 걔 못 잊어, 장담할 수 있어.

 

그리고 너 내 운명 아니야 절대, 왠지 알아?"

 

 

 

강한 사랑도 있는 법이거든.

 

어쩌지 마군, 나-운명대로 살고 싶지가 않아-.

 

니노미야는 아이바 마사키를 사랑한다.

 

언제부터라고 특정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래도록 간직해 온 마음이었다.

 

너무 소중하고 너무 여리고, 너무 특별한 마음.

 

그런 마음이라 꺼내는 것조차 도 조심스럽던

 

그 마음을 꺼내놓고 싶었다, 당장 만나서 그

 

너른 어깨를 붙잡고 애걸하고 싶었다, 나를 놓지

 

말아 달라고, 운명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그냥.

 

그냥 지금처럼만 내 곁에 있어달라고.

 

 

 

`가더라도 이 말은 듣고 가, 너 나랑 안 만나면

 

위험해진대, 운명을 거스르는 건 불행과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큰일이라고 했어, 그래도 돼?

 

너, 그걸 다 감안하고도 걔가 좋을 것 같아?"

 

 

 

그거면 더 바랄 것도 원할 것도 없었다.

 

아이바 마사키가 니노미야의 행복이니까.

 

불행해져도 좋다, 위험해져도 좋다, 이 사랑의

 

대가로 죽어서 가야 할 곳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뀐다고 해도, 아이바를 사랑하다 죽을 수 있는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뭐라도 좋다.

 

 

 

당장 보고 싶어, 아이바.

 

 

 

달랑 아홉 글자 짜리 메일만 보내놓고서 뛰었다,

 

카페에서 집까지 정신없이 뛰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렸지만 아이바가 당장

 

보고 싶단 이유만으로 쉬지 않고 뛰었다.

 

멀찍이 횡단보도에서 네가 보인다, 니노미야는

 

웃었다, 아이바는 잔뜩 질린 얼굴로 니노미야를

 

바라봤고 니노미야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였나.

 

그때 걸음을 멈췄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건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었다, 초록불이 들어

 

오자마자 횡단보도를 뛰어오던 니노미야를

 

맞은 편에서 뛰어온 아이바의 손이 밀쳐낸다.

 

어째서? 아이바, 네가 왜 날 밀어내? 이게 무슨,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 둔탁한 충돌음, 비명소리.

 

모든 소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니노미야의

 

귀에 밀려들어 온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피다, 붉은 피가 아스팔트 위로 번진다, 저건

 

누구의 피지, 내껀가, 아닌데 난 아프지 않은데.

 

왜, 왜 네가 거기 누워있어 아이바, 대체 왜.

 

운명을 거스른 건 난데 죽는 건 너여야 하는 거야.

 

 

 

이건 너무, 크고 잔혹한 대가잖아요, 신님-.

 

니노미야는 그날부터 꼬박 이틀 밤을 잤다.

 

끝없는 어둠 속을 홀로 헤매는 시간의 반복.

 

끝내 니노미야는 그 어둠 속에서 울었다.

 

아이바가 없이 혼자 이 어둠 속에 남아있는

 

것도 현실로 돌아가 아이바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도 선택할 자신이 없다, 자신은 겁쟁이니까.

 

니노미야는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감고

 

그저 아이바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늘 그랬듯

 

내가 기다리는 걸 알면 올 거라고 믿었다.

 

 

 

`......니노?니노, 여기서 뭐 해.`

 

 

 

 

 

믿음이 확신이 되는 순간, 눈물이 그득 고인

 

눈으로 니노미야는 아이바를 올려다본다.

 

 

 

`나랑 가자, 여긴 너무 어둡고 외롭잖아. 니노.`

 

 

 

평소처럼 웃으며 제게 손을 건네오는 아이바의

 

행동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마주잡은 손이 진짜

 

아이바의 것 마냥 크고 따스하고 부드럽다.

 

 

 

사랑이란 건 교통사고처럼 오는 건 줄만 알았다.

 

아니었다, 니노미야의 첫사랑은 가을비였다.

 

조금씩 조금씩 젖어드는 줄도 모르고 섰다가

 

흠뻑 물들어버리고 마는 그런 사랑이었다.

 

 

 

거창한 운명 같은 게 아니라 그저 물드는 것.

 

손을 잡고 같이 걷는 길 마다마다 아이바와의

 

기억들이 피어난다, 첫만남부터 눈이 부시던

 

아이, 아이바 마시키는 그런 아이였다.

 

 

 

남들과 눈 색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리

 

저리 치이며 인류애 같은 건 애초에 버려버린

 

니노미야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며 웃던.

 

 

 

`안녕, 네가 전학생 맞지? 너 눈이 엄청 예쁘네!

 

난 아이바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할게!"

 

 

 

그 얼굴은 그 순간 창가에 쏟아져 내리던 햇살

 

보다도 따스하고 눈부셨었다, 눈이 엄청 예쁘네.

 

그 작은 한 마디에 니노미야의 작은 심장이

 

콩콩댔다, 그날부터 자신의 눈이 좋아졌다.

 

 

 

다음으로 피어나는 기억은 아이바를 좋아하게

 

됐다는 걸 자각한 날의 기억이었다, 사람이라곤

 

없는 학교 구관의 음악실을 발견하고 둘만의

 

아지트라고 멋대로 명명하며 같이 피아노를

 

쳤던 그 날, 낡은 피아노 앞에 앉은 아이바의

 

옆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도 당연하단 듯이.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각해버렸다.

 

그 사실이 너무도 위화감이 없어서, 이 사랑이

 

너무도 당연하게만 느껴져서 꽤 놀랐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네가 내 운명인 줄 알았는데.

 

 

 

같이 스쳐 지나는 기억들이 이제는 눈부시지

 

않다, 니노미야는 어느새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운명도 아닌 사랑에 운명처럼 빠져버리게 한

 

신이 원망스러웠고, 모든것이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은 바늘이 되어 니노미야의 가슴을

 

아프게 찔러온다, 피어나던 기억들이 하나둘

 

스러져간다, 길의 끝에는 꽃으로 장식된 문이

 

있다, 저 문을 열면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니노,나를 믿지? 같이 가자, 원래 있던 곳으로.`

 

 

 

천천히 문이 열리고 강한 빛이 눈을 찌른다.

 

어지럽다, 시야가 흐려지고 다시금 암전-.

 

니노미야는 멍하니 눈을 떴다, 모든 기억을 지나

 

어둠뿐이던 시야 가득 흰 천장이 들어찬다.

 

습한 공기, 뿌연 시야, 특유의 소독약 냄새.

 

모든 것이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이라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와락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제 손을 잡고 있는 손이 너무도 크고 따뜻해서.

 

침대에서 꾸물꾸물 고개를 드는 둥근 머리통이

 

너무도 보고 싶던 그 아이의 것이라서.

 

 

 

"....니노?니노 언제 일어났어, 왜 울어, 어디

 

불편해? 그, 간호사님이나 의사 선생님 불러…."

 

 

 

재잘거리던 말소리가 갑작스레 부딪혀오는

 

입술 속으로 먹혀들어간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귓가엔 멍멍하게 종소리가 울려온다.

 

몇 시간 같은 몇분이 흐르고, 먼저 입술을 뗀

 

니노미야의 입술 새로 옅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좋아해, 좋아해 마군, 운명 같이 거창한 것 보다

 

네가 더 좋아, 너는 어때, 운명이야-나야?"

 

 

 

아이바의 시선이 니노미야의 새끼손가락으로

 

향한다, 끊어져버려 달랑거리는 붉은 실의 잔상.

 

끊어져버린 붉은 실은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앞으로도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운명일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바는.

 

 

 

"....운명보다는, 당연히 니노, 너지-."

 

 

 

다시금 니노미야와 아이바의 입술이 부딪힌다.

 

어차피 네 운명이 될 수 없다면 그래.

 

 

 

운명보다 별 볼일 없지만 강한 사랑이 되련다-.

 

`있지 아이바, 너 니노랑 사귀는…. 거지?`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뱉어내는 말이

 

저거다,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건 왜? 되묻는

 

아이바의 말에 사쿠라이는 우물우물 입술을

 

달싹이다 천천히 다시 입을 땐다.

 

 

 

"그럼, 카즈가 네 운명인 거야? 너 입버릇처럼

 

말했었잖아, 운명은 필연적이라 거스를 수 없다고."

 

 

 

"....아, 그거-"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 이제 운명

 

이런 거 안 믿어 쇼쨩, 뭐 여전히 보이긴 하지만.

 

 

 

"운명이 가장 강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야,아이바아-! 빨리 와, 나 다리에 쥐나겠다-!

 

 

 

"운명보다 강한 게 있었어, 쇼쨩."

 

 

 

`운명보다 강한 거? 진짜? 아이바 네가 웬일이냐.

 

그게 뭔데, 필연보다 강한 게 뭔데?`

 

 

 

".....사랑, 운명보다, 사랑이 강해, 쇼쨩-."

 

 

 

대답을 뱉어내는 아이바의 시선 끝에 니노가

 

있다, 희고마른 새끼손가락 위로 붉게 묶인 실.

 

그 끝은 여전히 이어진 이 없이 달랑거린다.

 

니노미야 카즈나리에겐 운명이 없다, 다만,

 

 

 

사랑만이 있을 뿐이었다-.

 

 

 

 

 

THE END.

미카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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