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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물어온 꽃잎

리츠

소금기 어린 바람이 햇살과 함께 방파제 끝의 소년의 코를 스쳤다. 주변의 잔잔한 파도 소리만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가방을 옆에 내려놓으며 방파제 끝 쪽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양 손으로 두 귀를 살짝 덮었다. 소년의 얼굴에 살랑살랑 바람이 지나가자 기분이 좋은 지 입꼬리의 각도가 조금 올라갔다.

 

"뭐하는 거야?"

 

잠시 후 말소리가 들렸지만 소년은 무시했다. 관광객인가? 그냥 지나가겠지. 하지만 귀를 조금 가렸다고 해도 진짜 관광객이라면 소리가 뒤에서 들렸어야 했다. 이상함을 느낀 소년은 손을 떼고 눈을 떴다.

 

"안 들리나?"

"아, 깜짝이야!!!"

 

아까보다 조금 가까운 듯한 목소리가 들렸고 그 때 소년이 눈을 떴다. 소년은 자신의 발에 거의 닿을 듯한 거리의 인영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튀어나온 소리에 놀라며 소년의 발버둥을 피하던 인영은 수면 위에서 조금 거리를 벌렸다. 벌렁거리는 가슴께에 손을 얹은 채 소년은 눈을 깜빡거리다 방파제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갈색 머리의 앳된 얼굴의 소년이 물 밖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갑자기 소리지르면 무서워..."

"거기서 뭐하는 거야?"

"그거 내가 한 질문인데? 듣고 있었던 거야?"

"아니, 바다를 수영장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올라와 위험하니까."

"괜찮아! 왜냐면-"

 

물소리와 함께 소년의 눈동자에 푸른 에메랄드 빛의 꼬리 지느러미가 담겼다. 한참 그 형태를 바라보고 있자 인어는 더 이상은 쥐가 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물 속으로 지느러미를 내렸다. 그러고보니 눈동자의 색깔도 다른 것 같고, 목덜미 쪽에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그냥 물에 젖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인어니까?"

"응!! 나 이쪽에 있어도 괜찮은 거 알았으면 이제 좀 알려줄래?"

"....뭘?"

"이거 왜 하고 있는지!"

 

인어는 온 힘을 다 해 눈을 감고 두 귀를 눌러 소년의 행동을 따라했다. 난 입은 그렇게까지 안 내밀었어. 소년은 인어의 구겨진 눈가와 활짝 핀 손이 우스운지 작게 웃었다.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손 떼야 말해주지. 그 말에 인어는 바로 눈을 반짝이며 방파제 쪽으로 다가왔다. 소년은 한 손을 들고 손가락을 모아 살짝 둥근 모양새로 만들었다.

 

"조개를 못 찾는 날에만 하는 거야. 손을 고둥모양으로 만들어서 귀에 가까이 대면,"

 

소년은 눈을 살짝 감고 들어올린 손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인어의 고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다소리처럼 들리거든. 빈 소라껍데기에서 나는 파도소리처럼. 듣고 있으면 편안해."

"음...잘 모르겠는데... 근데 여기서도 들리잖아, 파도소리. 그냥 들으면 되지 않아?"

"주변 소리가 방해되니까."

"파도를 좋아하는 구나! 아 그럼 내가 방해한 건가? 미안해.."

 

미안함에 안절부절하는 인어를 향해 소년은 괜찮다며 양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진정한 듯 움직임이 줄어든 인어는 소년의 명찰에 시선을 길게 두었다. 근데 있잖아- 응?

 

"그거 이름이지? 어떻게 읽는 거야? 카즈야?"

"니노미야 카즈나리."

"난 아이바야!"

"그게 이름이야?"

"음..이름은 다음에 알려줄게."

"헤- 이름 참 기네, 아이바 다음에씨."

"그게 아니라-"

"알았어, 아이바군."

 

누가 보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대화하듯 방파제 쪽에서는 이야기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서로 처음 보는 종족이라 궁금했던 점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이 근방에도 또래의 인어가 있고, 인어의 눈물은 보석으로 변하지 않으며 인간은 커다란 새가 아니라 비행기라는 걸 탄다는 등 서로의 오해가 풀려나갔다. 어느새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어가자 니노미야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갈거야?"

"응. 너도 집에 가."

"니노랑 더 있고 싶은데..."

"피곤해. 여기 있는 만큼 게임도 못 했어."

 

피곤하다면서 게임은 어떻게 하는데..하며 꿍얼거리던 아이바가 잠깐 진정하더니 바지를 털고 있는 니노미야를 바라봤다.

 

"....그렇게 봐도 돌아갈거야."

"니노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이면 되니까! 아직 가면 안돼!"

"잠깐, 무슨.."

 

니노미야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아이바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냥 갈까 싶었지만 다급하게 잡아 세우기도 했고 아이바는 왠지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것 같은 성격일 것 같기에 니노미야는 가방을 멘 채 다시 방파제에 앉았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이제는 배가 고파서 기다리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아이바가 무언가를 들고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어! 역시 기다려줬구나 니노!"

"이제 가려던 참이었어."

"자. 이거 빌려줄게."

 

아이바의 손에는 자기 손바닥만 한 소라고둥이 들려 있었다. 물기 때문에 흰 껍데기가 빛나 보였다. 손을 뻗어 고둥을 받아 든 니노미야는 자기 손바닥보다 넘치는 크기에 당황스러웠다. 아이바는 한 손에 쥐고 있었는데.

 

"니노 손은 작으니까 나름 골라왔는데도 크네. 아무튼! 그거면 더 잘 들릴 거야"

"어..음...고마워?"

"주는 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니까 다시 와야 해!"

"안 팔리면 생각해볼게"

 

아이바는 기분이 좋은 지 몇 바퀴를 수면위에서 돌더니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건넨 두 손바닥에 들어차는 소라고둥을 소중히 들고 집으로 향했다. 인어는 소문만큼 위협적이지 않고 우호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

 

집으로 돌아온 니노미야는 여느 때처럼 게임기를 두드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덮어두고 책상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인어를 만나고 대화했던 게 꿈이 아니라는 걸 달빛 아래의 소라 껍데기가 증명하고 있었다. 평소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어도 이정도였을 줄이야. 낯설었던 자신의 모습과 아이바를 회상하며 귀에 고둥을 가져갔다. 양손에 들리는 만큼 귀를 다 덮는 크기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 차분한 밤과 어울리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렸다. 밝은 갈색에 깊은 녹색의 눈동자. 왼쪽 어깨의 반점 위에 별가루처럼 반짝이는 비늘. 수면 아래에서 살랑이는 에메랄드 빛 꼬리 지느러미. 소리만 듣고 있을 뿐인데 밤바다의 아이바가 그려지는 듯 했다. 편한 자세로 고쳐 누운 니노미야는 조금 더 소리에 집중하다 숨을 고르게 쉬었다.

 

 

 

 

 

시간이 지나 방학 기간임에도 니노미야는 방과 후 시간쯤 바다로 향했다. 지나간 시간과는 반대로 서로의 거리는 가까워져 방파제에서 얘기하던 게 해안가 바위로 바뀌었다. (전에 아이바가 빌려줬던 소라고둥은 간판처럼 바로 옆 바위에 장식되어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바는 꼬리만 바닷물에 담근 채 바위에 앉아 니노미야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니노미야의 게임 화면을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바가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조금 벌렸다.

 

"있잖아 니노. 가끔 저기서 인간 둘이서 얼굴을 비비는 데 그건 왜 하는 거야?"

"얼굴을 비빈다고?"

 

순간 아이바의 손이 니노미야의 얼굴을 감싸고 아이바가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 와중에 니노미야는 놓칠 뻔한 게임기를 가방 속으로 대충 던졌다. 코 끝이 겨우 닿을 정도에서 멈춘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눈동자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깊은 색의 눈동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살짝 닿은 코 끝은 이 더운 날씨에도 니노미야의 체온보다 약간 낮았다. 도로록 눈동자를 굴리며 상황파악을 하던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어깨를 밀쳐냈다. 밀려난 아이바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 니노미야를 살폈다. 갑자기 잡아서 놀랐어? 하고 순진하게 물어오는 모습에 니노미야는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아니 알고 저러는 거야? 괜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니노미야가 대답했다.

 

"얼굴을 비비는 게 아니라 입을 맞추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애정 표현인데 인어들은 그런 거 없어?"

"음- 꼬리를 이렇게 걸어."

 

아이바는 본인의 양 새끼손가락을 엮으며 니노미야에게 들어 보였다. 결속의 의미이기도 하니까.

 

"근데 니노는 꼬리 지느러미가 없으니까"

 

아이바가 다시 니노미야 쪽으로 몸을 틀고 상체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빠르게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니 아니 잠깐만!! 왜 또 가까이 오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한테 하는 거라며- 니노한테 하고 싶어!"

"그 좋다는 게 친구끼리 그런 그게 아니라..아 힘으로 밀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봐!"

"니노는 내가 싫어?"

"제발 말 좀 들어줄래? 싫은 건 아니니까,"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

"키스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하지, 친구랑 안 해."

"한 번만 해보면 안돼? 다시는 닌텐도 안 건드릴게, 물에 들어오라고도 안할테니까-"

"알았으니까 일단 잠깐 나와봐."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얼굴을 잡고 뒤로 힘을 주던 손에 힘을 뺐다. 정확히는 자신의 손에 눌린 아이바의 얼굴이 우스워 힘이 빠져버린 것이지만. 니노미야가 거리를 벌리고 찬찬히 아이바의 얼굴을 훑었다. 멀끔하게 잘생기긴 했지. 장난 좀 쳐볼까.

 

"-!!!"

 

아이바의 고개가 뒤로 물러나자 니노미야가 그대로 다가가 입술을 댔다. 한 번 해주면 안 하겠지. 예상과는 다르게 적잖이 당황한 듯 아이바는 크게 어깨를 튀었다. 기세 좋게 요구했으면서 막상 굳어 있는 아이바에 니노미야가 킥킥 웃으며 손을 놓고 멀어졌다.

 

"키스할 때는 눈을 감는 거야, 아이바."

"...."

 

얼어 있는 아이바를 놀리는 건 오래가지 못했다, 눈빛이 금방 바뀐 아이바가 부드럽게 허리에 팔을 감으며 니노미야에게 입을 맞췄기 때문에. 그 와중에 들었는지 눈까지 꼭 감고 있는 아이바를 보며 팔을 버둥거렸다. 그럼에도 꿈쩍 않는 그에 포기하는 니노미야였다. 얼마 안가 아이바가 팔에 힘을 풀고 물러났다.

 

"니노, 키스할 때는 눈 감는 거야-"

 

뿌듯한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는 아이바를 보고 결국 니노미야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커플이 하는 걸 보고 따라한 듯 했다. 아이바는 정말 입술을 대고 누르기만 하고 있었다. 이름만 키스인 뽀뽀마저 아이바다웠다. 아이바는 배를 부여잡고 끅끅대는 니노미야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웃어?"

"아흐- 배 아파. 좋아서 그래."

 

좋다는 말에 더 화색이 되어서는 인어가 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니노미야가 아까 끊겼던 말을 다시 꺼냈다.

 

"사실 너 알고도 모르는 척했지."

"으응? 뭐가?"

"아주 자연스럽던데~ 팔로 막 안고~"

 

부끄럽다는 듯 니노미야가 아이바를 재현하며 말했다. 그에 아이바는 얼굴을 가린 채 바위로 올라왔다. 미처 가리지 못한 귀는 분홍빛이었다. 그러면서도 힐끗 니노미야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는 것 같아 보여서... 인간 둘이서는... "

"그걸 몰래 보고 있었고? 취미 나쁘네~"

"뭐하는 지 궁금했단 말이야!"

"뭐 진짜 몰랐다면 그랬을 수도 있지. 아이바, 이제 이쪽 봐줄래? 내가 덮친 것 같잖아."

"아, 입술에 심장이 있는 것 같아."

"그러게 입술 엄청 빨갛다. 터지는 거 아냐?"

"ㄱ, 괜찮아. 내일 봐, 니노!!"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비눗방울을 건드리듯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입술에 손가락을 가까이 댔다. 아이바가 불에 데인 것처럼 몸을 크게 튀었다. 안절부절하던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시선을 피한 채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돌아갔다.

방 안의 거울은 니노미야의 귀 끝이 좀 전의 아이바의 귀와 같은 색을 띄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괜히 귀를 만지작거리던 니노미야의 손이 입술로 옮겨갔다. 그러자 아까 전의 아이바가 닿았던 허리와 뒷목, 입술의 감각이 살아나는 듯 했다. 갑자기 오르는 열감에 니노미야는 당황스러웠다. 혹시 내가 아이바를?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원래 게임하는 시간을 대신 아이바와 대화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가끔 아이바가 없는 날 아쉬운 기분으로 돌아갔으며, 손고둥 버릇 대신 직접 아이바와 파도소리를 들어야 안정을 찾게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특히 불쑥 들어오는 아이바의 얼굴 때문에 소란스러워진 심장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안겼을 때 버둥댔던 자신의 행동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날 밤 니노미야는 눈을 감아도 선명해지는 인어의 모습 때문에 진정시키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 * *

 

 

퀭한 눈을 비비며 니노미야가 바닷가로 나왔다. 사실 얼굴 보기 부끄럽지만 아이바가 내일 보자고 했는데 니노미야가 피하면 티 내지 않아도 실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언제나의 그 바위에서 아이바를 기다렸다. 대부분 아이바가 일찍 와있었지만 아닐 때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기다림 끝에 만난 인어는 에메랄드가 아니라 사파이어 비늘을 수면 아래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에 니노미야의 동공이 흔들렸다. 푸른 인어는 자신을 오노라고 소개했다.

 

"네가 니노미야?"

"누구..세요?"

"아이바는 당분간 못 올 거야. 아프거든."

"왜?? 많이 심각한 거야?"

"음- 너 때문에? 이해하려면 얘기가 좀 길어. 그래도 들을래?"

 

세차게 끄덕이는 니노미야에 오노는 인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간과 다르게 인어는 하나의 반려와 살아가. 끝까지 함께할 반려를 선택할 때 각인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그러기 위해서는 인어의 특별한 비늘이 필요해. 바로 역린이야. 용도 아니면서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그럼 아이바 목 쪽에 있던 게-"

"맞아. 아이바의 약점이지. 원래 역린은 안 보이는 비늘인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구애의 표시로 드러나거든. 그래서 짝사랑하는 인어가 가장 위험해. 그것도 그렇지만 더 심각한 상태인 게 지금의 아이바야. 네 온기를 받았거든."

"내 온기?"

"아무래도 우리는 인어니까 인간보다 체온이 낮아. 사람의 체온만으로 물고기는 화상입을 수도 있는 거 알아? 인어도 어느 한 부위가 온도에 민감하거든. 그래서-"

 

오노는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의 입술도 붉은 빛을 띄었다.

 

"화상입은 것처럼 빨갛게 변해, 막 욱신거리고 아프진 않고 색깔만. 그렇다고 무조건 변하는 건 아니고, 역린이 나타나서 약해진 상태일 때. 어제 아이바가 그렇게 돌아왔더라고. 인어들 사이에서는 꽃을 물어왔다고 해. 인간의 영역인 바깥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을 입으로 따온 것 같다나 뭐라나. 인간을 반려로 둔 인어의 특징이야. 아무튼 찬 성질의 인어가 연약한 상태에서 온기를 받으면 체온이 올라서 병이 들어. 각인통이라고 하지. 인간이 걸리는 감기같은 거라고 보면 돼."

"그럼 온기를 준 인간은?"

"역린을 먹어야지. 인어끼리는 서로의 역린을 바꿔 끼우는데 인간은 그럴 수 없으니까. 직접 몸 안에 넣어서 품는 거지. 인간 입장에서는 냉기를 받았다고 보면 돼. 그 증거로 인간은 표식이 생겨. 그 후에는 반대로 체온이 떨어져서 힘들거야."

"난 뭘 먹은 적이 없는데? 뭐 생긴 것도 없고."

"끝까지 들어봐. 보통은 청혼을 응한 당일에 각인되기 때문에 온기를 받든 꼬리를 엮든 상대의 마음을 확인받으면 역린이 밖으로 빠져나와. 그걸 바로 반려가 취해서 품어줘야 서로 체온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어. 근데 아이바는 뽑힌 역린을 손에 쥔 채 혼자 끙끙 앓고 있어."

"도대체 왜...?"

"서로 각인이 되면 너도 아플 테니까 그게 싫었겠지. 자기 아픈 거 숨기려고 여행 갔다 거짓말까지 부탁해가면서 참고 있는 거고."

"...아이바를 만나야겠어."

"네 마음은 알겠는데, 깊은 곳이라 각인도 안 된 상태로는 힘들어. 아이바가 너를 만나러 와야 해."

 

오노의 말을 듣고 니노미야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갔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아 눈에 힘을 주고 오노에게 부탁했다. 제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결국 흐르는 니노미야의 눈물을 못 본 척하던 오노는 자신이 설득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의 반응에 니노미야는 얼굴에 아까보다 더 굵은 눈물길을 내었다. 울음이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려던 순간, 오노의 입이 다시 열렸다.

 

"하지만 네가 부르면 올 수도 있어."

"부른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노미야의 목소리니까. 그리고 내가 다 너한테 알려줬으니 숨길 이유도 없잖아?"

 

* * *

 

오노를 만나고 돌아온 니노미야가 돌아오자마자 물기 어린 눈을 비비며 고둥부터 찾았다. 니노미야는 뾰족하게 돋아난 가시 없이 맨들맨들한 게 새삼 아이바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한 번 심호흡을 한 니노미야는 오노의 말을 떠올렸다.

 

'전화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음성메세지 남기듯이. 고둥이 전달해줄거야.'

 

매번 귀에 가져가던 고둥의 입구를 니노미야가 입가에 가져갔다. 오노는 사실 니노미야가 이 방법을 통해 아이바를 부른다고 해도 그가 육지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니노미야였다. 큼큼 목소리를 다듬은 니노미야가 고둥에 대고 소리를 내었다.

 

"여보세요? 나야, 니노."

 

진짜 전화기처럼 여보세요가 습관적으로 나오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다시 목을 고르고 아이바를 그리며 말했다.

 

"내일 보자 해놓고 왜 안 왔어, 기다렸잖아.. 너한테 할 말도 있었단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여행 간다는 거짓말은 너무 티났어.. 약속 잡아놓고 여행가는 사람이 어딨냐?"

"어떤 변명이든 화 안 내고 들어줄 테니까 돌아와."

"....보고싶어, 마사키."

 

마지막 말은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똑바로 말하려 했지만 실제로 나온 건 울음이 섞여 힘을 잃은 목소리였다. 이제서야 조각을 맞춰본 자신의 감정이 애정의 모양이었음을 깨달았는데 이런식으로 아이바의 마음을 전해 듣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자신 때문에 지금도 힘들어하는 아이바를 혼자 둘 수밖에 없다는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무력한 자신에 대한 짜증은 니노미야의 얼굴에서 방울져 떨어졌다. 흐르는 눈물에 눈 앞이 안 보여도 담아둔 소리가 새어나갈까 소중히 고둥을 꼭 안은 채 밤을 보냈다.

 

* * *

 

그 후에도 니노미야는 바다를 찾았다. 찾아간 바다에는 오노도 없이 니노미야 혼자였다. 며칠 전과 다른 게 있다면 손에 상아색 고둥이 있다는 것과 둘이 아닌 하나의 목소리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리움과 걱정에 눈물로 지새우며 니노미야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시선은 아이바가 앉던 자리에 고정된 채 힘 없는 목소리가 고둥에 담기기 시작했다.

 

"오늘도 왔어요. 참 징하죠? 다른 인어를 만나기라도 하면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아무도 안 와서 답답해서 그래요. 여기로 전해준다고 해도 전 파도소리로 밖에 안 들려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본인이 들었으면 좋겠지만, 누구라도 듣는다면 아이바 마사키한테 전해주세요."

"카즈가 보고 싶어하니까 돌아오라고-"

 

힘없이 고둥을 내려놓고 수평선 멀리 시선을 두었다.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피로감에 잠시 눈을 감았다. 살랑이는 바람이 니노미야를 위로하는 듯 살살 지나갔다. 유독 편안한 파도소리에 집중하다 느껴지는 물기에 눈을 떴다. 니노미야는 어느새 똑바로 누운 채 진한 녹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큰 손의 감각도 느껴졌다.

 

"...꿈인가?"

"왜 이렇게 많이 말랐어, 니노-"

"그냥 조금 아팠어, 너 걱정하느라."

 

아이바의 눈동자가 니노미야를 살피느라 바쁘게 움직일 때, 아이바의 볼에 니노미야의 손이 닿았다.

 

"...따뜻하네, 전에는 시원해서 좋았는데.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그거 나 줘."

"니노- 그게 무슨 뜻인지,"

"오노상한테 다 들었어. 각인해서 너 낫게 할 거니까 내놔. 그리고 진짜 싫었으면 그 때 머리채를 쥐어 잡고 난리쳤겠지."

"각인통은 한 번 아프고 끝나는 게 아니야. 발정기 때마다 힘들 거라고."

 

니노미야의 얼굴에 토도독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더 말을 이어가던 아이바가 잠시 말을 멈추고 눈가를 세게 문지르자 니노미야가 저지했다. 꾹꾹 쓰리지 않게 눈물을 닦아주자 다시 아이바가 입을 열었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빛에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손을 꼭 잡은 채 경청했다.

 

"니노가 나랑 한 각인 때문에 얽매여 살지 않았으면 했어. 어느새 커져버린 마음에 멋대로 꽃을 물어와버렸어. 처음에는 설렜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어. 니노는 나랑 다른 마음일 수도 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할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역린이 빠져도 니노한테 청혼하러 가지 않았어. 나 혼자 앓다가 사라지면 니노가 날 잊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테니까."

"오노상한테 부탁하고 나서 끙끙 거릴 때 내가 보고싶다는 니노 목소리를 들었어. 죽기 전에 주마등 스치듯 들리는 환청인 줄 알았지. 그리고 돌아온 오노상이 또 니노한테 가보라고 하더라? 혹시나 싶어 가는 길에 또 들리는 니노 목소리에 확신이 들었어. 다 들었구나. 그래서 더 안심하고 올라온거야. 니노가 신중히 선택할 수 있을테니까."

 

아이바는 잡혀 있던 왼손을 빼서 니노미야의 앞에 펴 보였다. 약간 빛이 바랜 진주같이 닳고 닳은 비늘이었다.

 

"던져버려도 돼."

 

아이바의 얼굴과 그의 손 크기 때문에 더 작아보이는 역린을 번갈아 보던 니노미야가 역린을 집어 손에 쥐었다. 아이바는 쥐어지는 니노미야의 주먹을 보고는 눈을 감았다. 잠깐 있다가 톡톡 느껴지는 감각에 눈을 뜨니 혀 위에 역린을 올린 니노미야의 얼굴이 보였다.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눈을 뜨자 조그만 비늘을 삼켰다. 그리고는 아이바를 향해 웃어보였다.

 

"괜찮겠어? 많이 힘들거야."

"너 못 보는 게 더 힘들었어. 괜찮아."

"분명 후회할 거야."

"안 해. 너니까."

 

니노미야가 미안해하는 아이바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가두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둘은 동시에 입을 맞췄다.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입술을 살살 깨물었다. 자극에 놀란 아이바에게 작은 틈이 생기자 니노미야가 바로 부드럽게 입 속을 쓸어내렸다. 이에 아이바도 니노미야의 혀를 받아주었다. 잠시 후 둘의 입술이 떨어지고 먼저 입을 연 건 니노미야였다.

 

"역시 모르는 척하는 거였어- 아 속았네-"

"..들켰어? 그래서 싫어?"

"음- 싫진 않아. 한 번 더 하고 싶어."

"잠깐만."

"응?"

"마지막까지 함께 하기로 해줘서 고마워. 사랑해, 카즈."

"나도 사랑해, 마사키."

 

수줍은 고백에 귀 끝이 달아오른 둘이지만 서로의 입술에서는 같은 온도의 열꽃이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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