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라껍데기 속에서는 파도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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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는 진짜 존재할까. 오늘 아침 시간의 화두는 그것이었다. 어젯밤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인어 미라 때문이었다. 아침 뉴스의 글로벌 소식란부터 실시간 검색어까지 떠들지 않는 곳이 없어서 그런 오컬트적인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학생들까지도 한 번씩은 인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먼저 인어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는 것은 니노미야와 아이바 뿐일 것 같았다. 니노미야는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반 라인 방의 알림을 꺼버리고 아이바에게 지난 일요일에 발매되었던 주간 어쩌구 하는 만화책의 이름을 읊었다.
"아이바씨가 보던 만화 또 재미없어졌어."
에~. 진짜? 아이바는 라임 맛 사탕을 물고 불만스럽게 말꼬리를 늘렸다. 진짜로. 못 믿겠으면 아이바씨가 직접 봐봐. 가져왔으니까. 니노미야는 들고 있던 가방을 아이바를 향해 들어 보였다. 지퍼에 달린 도라에몽 인형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랑달랑 흔들렸다. 나뭇잎 사이로 빠져나온 햇볕이 인형 위로 일렁인다. 아이바는 부루퉁하게 입꼬리를 늘어뜨린 채로 막대사탕을 입 안에서 데구르르 굴렸다.
아 맞다. 시무룩 해하던 것도 잠시, 아이바는 어제 있었던 아이바가(家)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니노미야의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어제 있잖아. 혼자 끝말잇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바가 말했다. 응? 핸드폰으로 새로 시작한 게임의 로그인 보상을 확인하던 니노미야가 의문스럽게 되물었다. 아이바는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니노미야를 내려다본다. 전제가 너무 이상한데. 응? 뭐가? 이번에는 아이바가 되묻는다. 보통 끝말잇기 같은 걸 혼자 해? 아이바씨. 이제는 거의 습관처럼 튀어나오는 딴죽을 걸며 니노미야가 아스팔트에 진 나뭇잎 모양의 그림자를 밟았다.
*
평범한 모양의 단화 한 켤레가 대리석 바닥에 놓인다. 벗어놓은 신발을 신발장 속에 가지런히 넣으며 니노미야는 앞코가 둥근 실내화에 발을 끼워 넣었다. 무심코 켠 SNS 화면 속, '실시간 트렌드'라는 제목 아래로 인어, 인어가 진짜, 조작 같은 단어가 늘어서 있어서 니노미야는 시큰둥하게 화면을 넘기고 아이바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바가 사용하는 신발장은 계단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서 신발을 다 갈아신고 기다리고 있던 아이바가 니노미야를 보고 몸을 돌렸다. 배고프다. 아이바가 중얼거리며 계단에 발을 올린다. 밥 안 먹었어? 묻는 목소리에 아이바는 고개를 저었다. 먹었는데. 대답하는 얼굴이 뻔뻔해서 니노미야가 헛웃음을 짓는다. 근데 왜 배가 고파. 아이바는 까만 티셔츠 위로 마른 배를 쓱 쓸어보더니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글쎄. 아무튼 배고파. 이따 빵이라도 사 먹든가 그러면. 별 영양가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걸음이 느리지만 꾸준히 계단을 올랐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복도에는 사람이 적었다. 덕분에 그렇게 크지 않은 소리도 복도를 울린다. 예를 들면 바닥을 딛는 발소리나 사탕이 굴러다니며 이에 부딪히는 소리, 저 멀리서 아니라니까! 하고 소리를 지르는 하이톤의 목소리 같은 게.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시 들어볼 것도 없이 사토였다. 또 시게아키 때문이겠지.
아침마다 벌어지는 사토와 시게아키의 설전은 이제 2학년들 사이에서는 일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둘 중 한쪽이 갑자기 소리를 높이기 시작해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 정도로. 사고방식이 전혀 다르면서도 붙어 다니는 탓이다. 정말 시답잖은 게 주제가 되곤 해서 이번엔 대체 무엇 때문인지 짐작도 가지 않을 때가 많았는데 적어도 오늘은 그럴 일은 없어 보였다.
아이바는 문을 잡고 오늘은 인언가? 하고 니노미야를 돌아보았다. 입꼬리에 웃음기가 섞여 둥글게 말려 올라가 있었다. 아 그니까 척추뼈가 연결이 되어있었다니까?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사토가 시게아키의 눈앞에 핸드폰 화면을 들이밀며 바득였다.
오컬트에 심취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어 미라 중에 척추뼈가 꼬리까지 이어져 있는 게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처음부터 이어져 있던 것으로 보이고 따로 떼어다 붙인 흔적은 없었다는. 시게아키는 듣는 척도 하질 않았지만 제법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이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도 지나치게 에너지 소모적인 풍경이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지칠 것 같아서 니노미야는 걸음을 옮긴다. 그때 사토가 고개를 홱 돌렸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아직 문 앞에 서 있던 아이바가 사토와 눈이 마주쳤다. 어느 쪽의 주장이 더 타당한지를 가르는 건 이렇게 언제나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증거도 이유도 없이 그냥 생각하는 바를 말하는 것뿐이라 전혀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은 방법이었지만 어차피 결론을 낼 수 없는 주제가 많아서 그게 최선이었다.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산 쪽이 이기는 것이다.
"글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토가 예! 하고 환호하며 바를 정 자의 첫 번째 획을 그었다. 니노미야는 소란스러운 풍경을 잠시 눈에 담았다가 책상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별로 들어있지 않은 가방이 네모 반듯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 찌그러진다. 바로 건너편에 아이바가 마찬가지로 가방을 내려놓았다.
"야 아이바!"
누군가 다다다 달려오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옆 반의 소우타가 소란을 가르고 열려있던 창문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사토와 시게아키가 다투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아이바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랑 시게아키, 쌤이 오늘 당번이니까 가지 말고 남으래."
사토에게 연신 미디어 조작에 대해 설파하던 시게아키가 아! 하고 싫은 소리를 냈다. 어 알았어! 아이바가 똑같이 큰 목소리로 답한다. 아이바는 가방에서 꺼내다 만 책을 마저 꺼내고 니노미야는 게임기 아래에 깔려있던 만화책을 꺼내 아이바에게 건넸다.
"끝나고 기다릴까?"
들어왔을 때보다 무게가 덜해진 가방이 책상 옆에 걸렸다. 아이바는 만화책을 받아들고 니노미야는 늘 가지고 다니던 게임기의 전원을 켠다. 색소가 옅은 눈이 아이바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아?"
아이바는 자리에 앉으며 넘겨받은 만화책을 팔랑팔랑 넘겨 니노미야가 미리 접어놓은 부분을 펼쳤다. 니노미야는 별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차피 오늘."
말이 끊긴다. 그러고 보니 보스전이 직전이었다. 니노미야는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려다가 삐끗하고는 파란 줄이 죽죽 그어진 것 같은 얼굴을 했다가 그대로 게임기를 내려놓고 여태 켜놓은 채 책상 위에 방치해두었던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자판을 두드린 손이 엔터 버튼을 누르면 아이바의 핸드폰도 액정이 환하게 반짝였다. 아이바는 손가락으로 슥슥 패턴을 그려 잠금을 풀고는 그제서야 알겠다는 얼굴을 했다.
"같이 달릴 사람 필요하거든."
요즘 니노미야가 하고 있는 게임의 초대 메시지였다. 자주 노가다성 이벤트를 푸는 바람에 이런 망겜 때려치우겠다고 노래를 부른 게 저번 달이었는데 아직까지 그만두질 못한 모양이었다. 메시지 아래에는 이미 만들어놓은 계정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혀있다. 설치 버튼을 누르자 바로 아래 오늘 날짜가 적힌 수집 이벤트의 홍보 이미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노가다구나. 아이바는 생각하며 잠자코 로그인 버튼을 누르고 만화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니노미야가 분명히 재미없어질 거라고 말하던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이 무언가 특수한 재료로 만들어진 사슬로 묶인 채 바닥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번 화에서는 풀고 나왔어야 했는데 전개가 늘어지는 걸 보니 정말 재미없어졌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아이바는 다음 이야기를 읽는 대신 책장을 팔락팔락 넘겨 가며 새로 연재되는 작품은 없는지 찾기 시작했다. 바로 옆 분단에 앉은 니노미야는 아직 깨지 못한 보스전의 기믹을 외우느라고 열중이고 사토와 시게아키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논쟁을 이어갔다. 등교 시간을 이십 분이나 남긴 시간,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 동그랗게 말린 종이뭉치로 괜히 벽을 탁탁 치고 나가신다. 달그락거리며 돌아가던 책상이 다시 무질서를 유지했다.
*
뚜벅뚜벅. 발을 옮기는 효과음이 겹친다. 니노미야는 푹신한 베개에 뺨을 푹 파묻고 엎드린 채 벌써 서른 번은 보는 것 같은 화면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니노미야의 발 언저리에는 마찬가지로 푹신한 쿠션을 끌어안고 앉은 아이바가 있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 화면에 니노미야와 같은 풀숲이 그려져있다. 톡. 두드리면 뚜벅뚜벅 걷는 효과음이 다시금 겹쳐졌다.
지나치게 편해서 말조차 없어진 사이였다. 불편하지 않은 정적이 방을 감싸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간간이 화면을 두드리는 터치음이나 아이템을 획득했음을 알리는 발랄한 알림음뿐이었다. 다들 게임에 영혼을 팔았는지 실시간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랭킹이 아슬아슬한 위치에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고 있어서 니노미야는 조금 전부터 두 시간 째 쉬지도 않고 화면을 터치하는 중이었다. 다 마신 주스 팩이나 벌어진 과자봉지 같은 게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
띠링. 정적을 깬 건 기다리고 있던 클리어음 대신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경고음이었다. 아이바는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된 핸드폰을 툭 떨어뜨리고 뒤로 풀썩 몸을 뉘었다. 까맣게 길어진 머리칼이 포근한 이불 위로 물결처럼 흩어진다.
"뭐해 더 달려."
"에너지 없는데?"
"여기 있잖아."
니노미야가 담담한 얼굴로 쌓여있던 기프트 카드를 밀어준다. 개중에는 이미 포장이 뜯어진 것도 있었다. 어쩐지 끊기지도 않고 계속하더라니. 아이바가 생각했다. 싫어. 좀만 쉴래. 어차피 지금 해주는 것도 순전히 호의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위치여서 니노미야는 아이바를 힐끔 돌아보더니 순순히 내밀었던 기프트 카드를 다시 제 옆으로 끌어왔다.
뚜벅뚜벅 다시 걷는 소리가 고요함을 채운다. 포근해서 잠이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에어컨 바람이 상쾌하게 몸을 감싸고 다 마신 주스 팩에서 나는 은은한 사과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아이바는 배 위에 양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빠람빰빠밤. 드디어 스테이지 클리어를 축하하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니노미야는 쓰러지듯 몸을 옆으로 뉘이고 발랄하게도 적힌 다음 스테이지의 Go! 버튼을 눌렀다
"있잖아. 니노."
"왜."
톡 톡 핸드폰을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조금 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임을 안 도와준다고 심통이 난 건 아니고 원래 말투가 조금 그랬다. 아이바는 감았던 눈을 뜨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렸을 적에 붙였던 야광별들이 연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할 때는 자그맣게 들어간 반짝이 가루의 힘을 빌려 빛을 내는 야광별 사이에는 의미 모를 물고기 스티커가 함께 붙어있었다. 하얀 조명에 눈이 아파온다. 아이바는 잔상이 남은 눈을 깜빡이다가 입을 열고 뜸을 들이던 질문을 내어놓았다.
"니노는 인어가 진짜로 있다고 생각해?"
톡 톡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소리가 잠시 멎는다. 꼬리가 둥근 눈이 화면에서 떨어져 달력에 입혀진 푸른 바다 사진을 향했다. 톡. 다시 발소리가 이어진다.
"글쎄."
니노미야는 말꼬리를 흘렸다. 이도 저도 아닌 답이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든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완전히 토론의 선 밖을 벗어난. 아이바는 그 대답을 곱씹다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사실 난 본 적 있다?"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꼭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처럼.
"뭘."
니노미야는 반사적으로 되물었다가. 구석으로 시선을 내리고는 물음을 정정했다.
"인어를?"
아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까맣게 물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머리카락이 침대에 문질러졌다.
"어렸을 적에.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본 적 있어."
휴대폰을 두드리는 소리는 있었는데도 따라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듣고 있다는 건 알아서 이야기가 이어진다.
"지금은 잘 안 가는데 좀 더 어렸을 때는 바다에 자주 놀러 가고 그랬거든."
"알아. 밑에 사진 엄청 걸려있잖아."
거실에 걸려있던 수많은 바다 사진을 니노미야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바가 갓난아기나 다름없었을 때부터 동생이 태어나서 클 때까지. 해마다 가는지 성장일기나 다름없이 붙어있어서 거실에 들어갈 때마다 니노미야는 그 사진의 일련에 시선이 붙잡히곤 했다. 아이바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네. 그럼 알겠다.
"엄청 어렸을 때부터 갔으니까 그렇게 크지 않았을 때도 바다에 그냥 들어가고 그랬는데. 튜브도 있고. 알잖아. 우리 집은 방임주의라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Warning. Warning. 화면 속에 빨갛고 노란 테이프가 가득 둘러지고 있었는데 니노미야는 그냥 기계적으로 카드를 배열하고 자동 전투 버튼을 눌렀다. 턴에 따라 상대방과 자신의 체력 게이지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멀리 떠밀려가서 돌아올 수가 없게 된 거야."
조용해진 니노미야의 몫까지 아이바의 목소리가 흘러가고 있었다. 엄청 무서웠는데. 옅게 흐른 웃음소리가 거품 같다고 니노미야는 생각했다. 아이바는 눈을 감았다. 꼭 그때를 되돌아보는 것처럼. 하얀 조명이 눈앞을 비추는 게 전혀 달랐지만 몸에 힘을 푸는 것만으로도 떠 있는 기분이 들어서 그럭저럭 비슷한 느낌이었다. 니노미야는 어느새 전투가 끝나버린 화면을 옆으로 밀었다. 보상으로 주는 카드들이 화면에 하나씩 펼쳐졌다.
아이바는 이대로 못 돌아가게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아무도 못 보는 곳까지 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그냥 울어버렸다고. 우는 동안에도 물결은 쳐서 튜브는 점점 더 멀어지는데 가족들은 파라솔을 세우고 짐을 꺼내는데 바빠서 멀어지는 아이바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대여섯살 터울이 진 동생이 막 태어난 참이기도 했고. 그건 누군가를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바가 스스로 해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밀려오던 졸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깔끔하게 정신이 들었다. 니노미야는 잔잔한 파도처럼 조근조근 밀려오는 아이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에너지가 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는데 기프트카드를 꺼내는 대신 니노미야는 손을 멈추고 팔 아래에 깔린 이불을 쥐었다. 은은하게 깔린 배경음악 속에서 희미하게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로필 옆에 달려있던 랭킹이 순식간에 한 자리 밀려난다.
"손을 저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어서 그냥 울고 있었는데. 누가 말을 거는 거야."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래서 나는 날 잡아가러 온 귀신인 줄 알고 굳었다가 누가 톡 톡 치는 바람에 그대로 빠질 뻔해서. 그때 물속에서 본 게 인어 지느러미였어. 아이바의 입가에 미미하게 웃음이 감돌았다.
"그 때까지 내가 아는 인어는 인어공주밖에 없어서 공주님이냐고 했더니 이상하게 쳐다보더라고."
"지금은 아는 인어가 인어공주 말고도 더 있어?"
니노미야가 담담하게 딴죽을 걸었다. 니노미야는 아예 몸을 뉘이며 핸드폰을 들었다. 랭크는 이미 몇 단계나 밀려난 후였다. 지금 와서 되돌리려한대도 방법이 없는데다가 그냥, 상관이 없는 것도 같아서 니노미야는 게임을 꺼버리고 배경화면 속에서 인터넷 어플을 찾아 눌렀다. 검색창에 '인어공주'하는 단어가 꾹꾹 눌린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울던 아이바를 발견한 게 인어였다는 이야기였다. 인언데 자기 또래의 인어라서 아이바는 자기 또래의 인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고. 왜 우느냐고 묻는 인어에게 아이바는 너무 멀리 와서 그랬다는 답을 했다. 어린 인어는 너무 멀리 왔다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길을 잃었느냐고 되물었지만. 아마 인간과 인어의 차이를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을지도 몰랐다. 그래도 인어는 길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인어는 해변에서 왔다는 아이바의 말을 듣고는 튜브에 달린 끈을 손으로 쥐고 해변이 있는 곳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옅은 푸른빛의 비늘이 바닷속으로 스며들어 간 햇빛에 은은하게 반짝였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비늘은 수산시장에 있는 생선에나 붙어있는 줄로 알았는데 그런 색은 본 적이 없어서. 아이바는 넋을 놓고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울음이 멎은 줄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망망대해 같던 바다는 금세 해변에 가까워졌다. 물이 점점 옅어질수록 아이바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때 인어는 헤엄을 멈추었다.
"여기서부터 혼자 갈 수 있겠냐더라고."
아이바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라서 그렇게 멀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제 더 무섭지가 않아서. 인어는 그제서야 잡고 있던 끈을 놓았다. 그리고는 해초 따위를 엮어 만든 것 같은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아이바에게 건네주었다. 그게 저건데. 손끝이 책상 위를 가리켰다.
흰색에 호박색 같은 게 섞인 소라껍데기가 책상 한 구석에 고이 놓여있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을 텐데도 어젯밤에 주워온 것처럼 껍데기는 깨끗하기만 했다. 침대에 누워있던 니노미야의 시선이 책상 위를 향했다.
또 길 잃어버리면 이걸로 불러. 인어는 소라껍데기를 눈앞에 두고 영문을 몰라하는 아이바를 보며 그걸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네.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작은 입술이 달싹일 때마다 쏴아.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나선형의 껍데기 속을 울렸다. 이렇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인간 문명에 빗대면 핸드폰 같은 거였겠지. 아이바는 나중에서야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보다 키는 작은 것 같았는데.”
나보다 훨씬 멋있고 듬직해서. 아이바가 중얼거렸다. 꼭 멋진 영웅을 보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거야?"
내내 조용하기만 하던 니노미야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이바는 웃음을 터뜨린다. 망작만 좋아하는 건 그래서 그런 게 아닐걸. 아이바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책상 위에 놓인 소라껍데기를 집어 들었다. 처음 건네받았을 때는 손에 가득 찼는데 이제는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파도 소리는 원래 들리는 거 아니야?"
왜 다들 그러잖아. 소라껍데기를 귀에 대면 파도소리가 들린다고. 니노미야가 물었다. 그렇긴 한데. 아이바는 귀에 소라껍데기를 붙여보았다가 금방 떨어뜨린다. 달랐거든 이거랑은.
"어떻게?"
어떻게.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아이바는 고개를 들고 표현을 고르느라 머릿속에 든 사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음. 하는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글쎄. 결국 내어진 답은 그렇게 떨어진다. ‘잘모르겠’다고.
"파도 소리를 녹음해서 듣는 거랑 직접 가서 듣는 거랑은 다르잖아."
니노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느낌. 아이바가 말했다. 더 자세히는 설명을 못 하겠다면서. 그리고는 아쉬운 얼굴로 니노미야를 바라보았다.
"니노도 들어보면 알 텐데."
"그러려면 먼저 인어부터 만나야 하잖아."
"그러네. 어려우려나?"
"쉬웠으면 겨우 미라가지고 저렇게 난리가 나진 않았겠지."
가만히 누워서 돌아오는 말을 받아치던 니노미야가 한숨을 쉬듯 깊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응? 니노 어디가? 핸드폰은 그대로 놓아두고는, 침대 옆에 놓아둔 가방을 주워들자 아이바가 놀란 듯 걸음 뒤를 따라붙었다. 니노미야가 답을 툭 던진다.
"자고 가려고."
그제서야 아이바가 걸음을 물렸다. 뭘 하러 가는지 알고 있었다. 자고 가려면 챙겨와야 할 게 많다. 사는 집이 아니니까 당연한 거지만. 원래대로라면 아까 놓아버린 핸드폰 게임을 밤새 할 계획이었는데 그건 이미 글렀으니까. 니노미야는 돌아가서 가져올 것들을 꼽아본다. 칫솔은 있으니까 괜찮고 옷은 빌리면 되고 게임기랑. 블록을 쌓듯이 생각이 착착 쌓여 올라간다. 어느새 문 앞이었다. 니노미야는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다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그대로 아이바에게 던졌다.
"보고 싶어?"
몇 남지 않은 감자 칩을 입안에 털어 넣던 아이바가 뭉개지는 발음으로 응? 물었다. 보고 싶냐고. 그 인어. 아이바는 볼에 한가득 들어찬 감자 칩을 우물거리며 까만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글쎄. 말의 뒤로 찍히는 점의 개수가 점점 많아진다.
"응."
아이바는 아직 시원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새 주스 팩에 빨대를 폭 꽂아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은 것 같아. 가느다란 빨대를 타고 연노랑 빛의 사과주스가 빨려 올라갔다.
"첫사랑이거든. 아마도."
‘아마도’가 붙으면서도 명확한 답이었다. 문장의 끝에서 달콤한 사과향이 났다. 그렇구나. 먼저 물어본 것치고는 감흥 없는 답이 내려앉았다. 니노미야는 다시 문고리를 돌리고 이번에는 정말 문을 연다. 그럼 갔다 올게. 손이 흔들리고 다시 문이 닫혔다. 달칵. 반 바퀴쯤 돌아갔던 문고리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소리가 들려오자 아이바는 주스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닫혀있던 문이 스르르 열린다. 불이 꺼진 방 안, 니노미야는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 위로 가방을 내려놓고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몽땅 꺼내기 시작했다. 이왕 온 김에 옷까지 갈아입고 갈 요량으로 손이 행거를 향한다. 적당히 걸려있던 티셔츠와 반바지가 침대 위에 넓게 펼쳐졌다. 교과서는 필요 없을 테니까 책상 위에 쌓아놓고 혹시 모르는 노트를 한 권 챙긴다. 월요일까지 해야 하는 수학 숙제가 있었다. 노트를 챙겼으니까 필통도 챙겨 넣고. 아침에 건네서 하교할 때 돌려받은 만화책은 책장에 꽂힌다.
결국 가방에 담기는 것은 가지고 가지 않았던 게임팩 몇 개와 모니터에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기들이었다. 아차차. 손이 모니터 옆을 더듬거린다. 매끈한 플라스틱제의 표면이 손끝에 닿자 니노미야는 그걸 집어 들었다.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북 모양의 게임기였다. 결국 전부 게임기다. 가방이 가득 차려고 해서 니노미야는 본의 아니게 가방 안을 깔끔히 정돈한 다음 지퍼를 잘 닫고 그것을 어깨에 멨다.
하루를 자고 오는 거라는 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챙길 게 적었다. 너무 많이 가서 그런 거겠지. 놓고 와서 가지고 갈 필요가 없게 된 것만 해도 꽤 많았다. 다시 오기는 귀찮으니까 니노미야는 방을 한 번 더 훑어본다. 나가기 직전, 둥그렇게 방안을 돌던 시선 끝에 조그만 유리병이 걸렸다.
코르크 마개로 막힌 병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 백엔 샵에서 샀던가. 바닥에 붙은 100円 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아직도 떼어지지 않은 채였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였다. 니노미야는 메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유리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작은 손이 유리병을 들어올린다.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건 손바닥만 한 석회질의 물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소라껍데기였다. 니노미야는 단단히 닫힌 코르크 마개를 쥐고 힘을 주어 당긴다. 역시 백엔 샵에서 파는 물건이라 그런지 완전히 밀봉이 되어있지는 못해서 마개가 쉽게 병을 빠져나왔다. 새어 나온 공기에 얼핏 바다 향이 묻어있는 듯했다. 병 입구에 손바닥을 대고 그대로 뒤집으면 소라껍데기가 쉽게 병을 빠져나온다.
흰색과 옅은 호박색 같은 게 줄무늬처럼 둘린 것이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니노미야가 소라를 손에 쥐었다. 딱딱한 겉면은 의외로 연약해서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았다. 때문에 손끝으로 가볍게 받쳐 들고 니노미야는 나팔을 불듯 비어있는 공간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머뭇거리던 입술이 곧 조그맣게 달싹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세기보다는 잔잔한 파도다. 부드럽게 반짝이는 모래사장까지 밀려와서는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쏴아. 해변을 쓸고 나가는 물결이 내리쬐는 햇볕에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간간이 치는 얕은 파도에 수면이 일렁였다.
그런 소리였다. 니노미야는 소라껍데기를 내려놓고 가방을 챙겨 멨다. 바깥에서 새어들어오는 불빛이 점차 좁은 각을 그리고 마침내 선이 되었다가 사라진다. 달칵. 문고리가 제 자리를 찾았다. 유리병 속 홀로 남겨진 소라껍데기 속에서 파도 소리가 일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