玻璃色尾ひれ
유리색 꼬리지느러미
쌔그
물의 정령의 축복을 받았다는 청담국(淸潭國)에선 《인어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인어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있었다.
전설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마저 말라가지 않을까 싶었던 황무지와 사막뿐이었던 시절. 마지막 물의 정령은 소라고둥에 담긴 물을 주어 수많은 인간을 살리고 이슬방울로 돌아갔다.
그 인간 중, 현자라고 불렸던 한 사람이 물의 정령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우제에 빈 소라고둥을 올렸다. 현자의 마음이 하늘에 닿아 일주일간 비가 내렸다. 강이 생기고, 강이 흘러 수많은 샘과 못과 호수가 생겼다. 강줄기는 더 쭉쭉 뻗어 가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 갈라진 땅에 싹이 나고 평원과 숲이 생겼다.
물의 정령은 되살아나 물거품과 물결로 그를 닮은 분신을 만들었다. 물의 정령을 닮아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인간인 생명체에 인간들은 '인어(人魚)'라는 명칭을 붙였다. 물의 정령은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현자에게 《인어를 사랑하는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인어가 있는 한, 이 땅에 물이 마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 약속했다. 현자는 인간과 인어의 추대로 왕의 자리에 올랐다.
초대 왕의 자식이, 손주가, 증손주가. 그리고 왕가 내 반란으로 몇 번이고 왕좌에 앉은 이가 바뀌었다. 인간들의 피바람이 물에까지 닿는 것을 두려워한 인어들은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었다. 인어를 볼 수 없게 된 인간들은 인어의 존재를 의심했으나, 물가에 떨어진 그네들의 눈물이 굳어진 보석과 물빛과 닮은 비늘을 보고 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간은 인어들의 반짝임만을 사랑했다. 그들의 반짝임에 값어치를 매겼고, 그 가치를 사랑했다. 인어들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더 깊이, 깊이 숨었다.
「 ― 아이바. 이제 가자. 」
민물 인어 아이바가 열일곱이 되던 해,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수도에서 말을 타고 닷새가 걸리는 호수 마을 ― 채호군(彩湖郡)도 예외는 아니었다. 채호군 민물 인어들 사이에서 여름내 지냈던 호수를 떠나 산속 깊은 폭포에 새 여름철 보금자리를 마련하자는 이야기가 나와 실행에 착착 옮겨가던 중이었다. 민물 인어들은 여름에 호수에서 지내다가 봄가을이 되면 버드나무가 자라는 샘터로, 겨울이 되면 암벽으로 둘러싸인 따뜻한 못으로 주거지를 옮겨 다녔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채호군에 생긴 운하 때문이었다. 호수 위에 운하가 생겨 물건을 실은 나룻배들이 밤낮으로 오간 지 어언 일 년. 호수의 수질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밤이 되면 켜둔 등불의 빛, 물건값을 흥정하는 소리로 밤잠을 설치는 인어들이 늘어났다. 나룻배가 많이 오가는 거야,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않고 조심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 나룻배에 인어잡이 배가 섞여 들어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사흘 전에는 무리 중 하나가 인어잡이 그물에 걸려 지느러미를 심하게 다쳤다. 인어 사냥꾼은 그물이 찢어졌는데도 딸려온 비늘 몇 점과 눈물방울을 보고 아주 허탕은 아니라며 만족해했다.
「 응. 조금만. 」
아이바는 몇몇 인어들과 함께 후발대로 떠나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이바도 여느 채호군 인어들과 다름없이, 인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호수에 던진 돌이나 물을 휘젓는 노에 머리를 맞은 횟수를 셀 수가 없었다. 인간들이 호수에 버린 쓰레기들로 지느러미가 깔리거나 다친 적은 그보다 더했다.
"…그래도 불은 좋았는데."
밤잠을 못 이루는 일이 많아도, 밤하늘에 뜬 별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인간이 들고 다니는 불이라는 것들은 신기하고 좋았다. 인어로 태어났으니 절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것. 아이바에게는 막연한 동경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저물면 청록빛 호수도 주홍빛으로 물들었다. 등불은 그런 석양만큼이나 따스한 빛이었다.
달이 아이바의 머리 높이 위로 떠올랐다. 부엉이가 울었다. 나룻배를 나루터에 댄 인간들도 자러 갈 시간이 되었다. 일렁이던 거리의 등불들이 하나둘 꺼졌다. 민물 인어들은 그 고요한 틈을 타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했다. 아이바는 괜한 아쉬움에 꺼지는 등불 수를 세었다. 마지막 등불이 꺼지고, 아이바가 미련을 애써 털어버리려고 할 때.
풍덩.
낡은 배다리 밑에 파문이 넓게 일었다.
이 밤에 거대한 돌로 물수제비를 뜰 리가 없는데? 아니, 돌치고도 소리가 컸는데? 아이바가 놀라 물속으로 들어가 정체를 확인해보지도 못하고 굳은 찰나, 파문이 인 곳에서 동그란 머리가 올라왔다. 아이바 또래의 인간 소년이었다. 소년은 다시 숨을 흡 들이키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가 곧 나왔다. 물속에서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으니까 눈이 따가웠던 건지, 조그만 손으로 눈 밑을 계속 비벼댔다.
"…저기."
아이바는 저도 모르게, 이끌리듯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소년은 아이바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팔을 허우적댔다가, 등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얼굴에 또 놀라 뒤로 물러났다. 소년은 경계를 바짝 세운 눈으로 아이바를 노려보았다. 아이바는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인간에게 말을 걸다니. 인간이 싫진 않았지만, 말을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것치곤 무서웠던 건 또 아니었었는데. 저렇게 도끼눈을 뜨니 인간이 무섭다고 쏜살같이 도망 다니던 무리 인어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적일까? 인어 사냥꾼일까? 괜히 말을 걸었나? 비늘을 뜯어가면 어떡하지? 눈물을 흘리라고 때리면 어떡해?
"말을 걸었으면 끝까지 해."
인간 소년―니노미야는 이마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딱 봐도 이 마을 사람은 아닌 남자애가 말을 걸어놓고선 우물쭈물 댔다. 요즘 들어 나룻배로 장사한답시고 주막에 길게 묵고 가는 상인들이 많았는데, 니노미야 또래는 없었다. 아무리 늦여름 밤이래도 상반신을 까놓고. 운하가 생기기 전에야 참방참방 들어가는 겁 없는 애들이 있긴 했다만, 호수 하류로 갈수록 물이 깊어서 얕은 상류에서 발을 담그고 노는 선에서 끝났었다.
"…다 잠들 시간에, 뭐 하고 있나… 해서…."
낯선 소년의 목덜미와 어깨는 뭐가 묻었는지 반짝거렸다. 가까이서 보지 않아도 비늘이었다. 머리카락으로 다 가려지지 않는 귀는 물갈퀴 같기도, 물고기들의 앞지느러미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귀밑에는 붓으로 그은 듯한 틈이 보였다.
그제야 눈치를 과하게 보고. 입을 우물거렸다가 더듬더듬 말하는 행동이 이해가 갔다. 인어는 그들만의 파장으로 이야기하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성대로 소리를 내는 방법이 익숙할 리가 없지. 니노미야는 새끼손가락으로 귀 안을 긁어 고인 물을 빼냈다.
"뭐 좀 찾고 있었어. 중요한 거라."
"어떤 건데?"
"상자."
니노미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빼앗기는 바에 아무도 안 가져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 호수에 던졌다. 하지만 그 물건에 든 정이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호수에 뛰어들게끔 했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호수는 너무 깊고 넓었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호수 속은 깜깜했다. 새벽이라 춥기까지 했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버티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깎였다. 일단 체력을 회복해야 찾든 말든 하지. 니노미야는 가장 가까운 배다리 밑으로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쥐어짜내어 헤엄쳤다. 다리 밑에 도착했을 땐 거의 기어가듯 쌓아올린 흙 위로 올라갔다. 젖은 옷을 비틀어 짰다. 흘러내린 물이 흙을 적셨다.
인어는 따라오지 않았다. 설마 찾아주기라도 하는 건가. 설마. 뭘 기대하는 거야. 인간이랑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인어한테. 빈속에 호숫물만 넘겼더니 물배를 채우긴커녕 속이 쓰렸다. 니노미야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물을 게워냈다. 고개를 드니 인어의 꼬리지느러미가 언뜻 보였다. 니노미야는 흙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인어가 가슴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이거 맞아?"
설마가 진짜가 될 줄이야.
하지만 아이바가 찾은 상자는, 니노미야가 찾는 상자가 아니었다. 가로저어지는 고개를 보고, 인어가 풀이 잔뜩 죽은 것도 잠시. 아이바는 까만 눈을 빛냈다.
"잠시만 기다려!"
찾아주려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외치려는 사이. 인어 꼬리지느러미가 물을 튀겼음. 졸지에 호숫물을 뒤집어쓴 니노미야는 멍하니 서 있다가 머리에서 뚝뚝 흘러내리는 물로 세수했다. 수면 위로 바람이 일었다. 젖은 옷이 서늘한 바람에 말라갔다. 눈 깜짝할 새 아이바가 두 번째로 찾은 상자를 높이 들고 방실방실 웃었다. 이상한 인어네. 니노미야는 헤엄쳐오는 인어를 보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이 호수에 상자를 빠트리기도 참 많이 빠트렸는지, 주인 모를 함들이 쌓여갔다. 하지만 니노미야가 빠트린 상자는 없었다. 물이끼가 잔뜩 낀 상자를 들고 오길래 오늘 낮에 빠트렸다고 하자 가져오는 수가 확 줄었다. 자기 몸만 한 상자를 동동 띄우며 헤엄치는 모습에 기겁해 그 정도로 무겁지 않다고 손을 내젓자 상자가 풍덩 소리도 내지 않고 천천히 가라앉았다.
호수 청소 제대로 하네.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건져온 육면체들의 수를 세어보다가 그만두고,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자를 골라 딸각 열었다. 상자 안에는 은화가 가득 들어있었다. 니노미야는 상자 뚜껑을 닫고 품에 끌어안아 반사적으로 주변을 휙휙 살폈다. 군침이 꿀꺽꿀꺽 넘어갔다. 이 돈은 인어가 주워왔지만 발견한 사람은 나니까 내 거야. 누군진 몰라도 잘 쓰겠습니다. 잃어버린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삼백 배를 하고 돌아서니,
"정말 잃어버린 거 맞아?"
아이바가 가늘게 뜬 눈만 내놓고 니노미야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상자를 슬쩍하려던 니노미야의 어깨가 위로 크게 들썩거렸다. 니노미야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잃어버린 건 맞지만, 찾아달라곤 안 했어.“
"중요한 거라며."
"…그건 맞지만."
니노미야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호의를 무르기엔 너무 멀리까지 왔다. 아이바는 니노미야가 앉은 흙바닥까지 바로 앞까지 헤엄쳐왔다. 그러고 보니, 어떻게 생겼는지 안 물어봤어. 이제 낯은 덜 가리게 됐는지 제법 또박또박 말했다.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면 까만 눈을 또로로 굴리며 피하긴 했지만.
"…값나가는 건 아닌데."
아이바는 물에 잠긴 흙바닥에 앉아 니노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니노미야는 설명을 하면서도 이게 뭔 짓인가 싶었음. 크기는 내 손바닥 정도?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어서 내용물이 쏟아질 리는 없어. 동그란 원통 모양이고…. 인어에겐 생소하지 않을까 싶었다. 애당초 이걸 다 알아들을까? 니노미야가 인제 그만 관두는 게 어떠냐고 말을 고르려던 중에.
"혹시 이거야?"
인어가 두 손에 쥔 상자를 내밀었다. 니노미야는 상자를 가져가고 숨을 골랐다. 옷고름과 함께 매어 숨겨둔 열쇠를 꺼내고, 작은 홈에 열쇠를 꽂아 넣었다. 딸각 소리를 내며 열쇠가 가로로 누웠다. 무언가가 왼쪽으로 쏠린 채 상자 안에 들어 있었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어는 환하게 웃었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금방 찾았네. 휴우,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니노미야 쪽으로 고개를 쭉 빼었다.
"뭐가 들었어?"
그게 궁금해서 찾아주려고 했던 거냐. 슬쩍 보이는 꼬리지느러미가 양옆으로 흔들렸다. 보여주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상자에 든 것은 유리 장식이 달린 목걸이였다.
"소라고둥이네."
딱히 무슨 모양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물에 사는 인어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니노미야는 '고마워'가 입에 착 붙는 인간은 아니었다. 살면서 '고마워'라고 말할 기회가 적어서, 찾아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건네려고 해도 입이 떼어지질 않았다. 니노미야는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장식을 만지작거렸다.
"너는 나한테 부탁할 거 없어?“
인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니노미야는 장식을 만지작거리던 손으로 귀를 만졌다. 가장 차가워야 할 신체 부위에 열이 올랐다. 낮이라면 저 인어에게 '너 귀가 빨개!'라고 들었을 거다. 까맣고 맑은 눈에 니노미야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이야기 있잖아. 인어가 인간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인간은 보답으로 인어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니 뭐니…."
"아, 그 이야기…. 은혜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진짜였네. 뭐든은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선에선 힘내볼 테니까."
"음, 그러면…."
머리 위에서 다리를 저벅저벅 걸어가는 발소리가 무겁게 울렸다. 니노미야는 재빠르게 아이바의 입을 막았다. 그 위로 험악한 욕이 오갔다. 정확하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찾아내면 본때를 보여주겠다', '손버릇을 고쳐주겠다'는 말이 들렸다. 니노미야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저기. 괜찮아? 아이바가 니노미야의 어깨를 가볍에 도닥였다. 니노미야의 작은 손이 아이바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깨물던 니노미야가 다급하게 말문을 열었다.
"부탁 두 개 들어줄게."
"…어…?"
"급하니까 나 좀 숨겨줘."
니노미야는 눈을 질끈 감았다. 비늘이 눌릴 정도로 힘을 주어 팔뚝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아이바는 다리 위로 귀를 기울였다. 작살과 그물을 던지는 인어 사냥꾼의 숨소리와 살기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등에 돋은 비늘이 쭈뼛 섰다. 인어는 인간 소년의 두 손을 잡고 호수 안으로 이끌었다.
"나중에라도 화내지 마."
아이바는 인간 소년의 허리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머리끝까지 들어갔다. 청둥오리가 물고기를 부리 안으로 밀어 넣는 것보다 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니노미야는 살기 위해 본능적으로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적어도 하나, 둘 하고 신호를 주던가. 잠수할 준비는 줬어야지! 큰 물거품이 니노미야의 코에서 하나둘 방울방울 올라오다가 엉겨 붙은 물거품들이 치솟았다. 니노미야의 코와 귀 안으로 호숫물이 밀려 들어왔다. 숨이, 공기가 부족해. 눈이, 코가 매워. 귀가 먹먹해. 니노미야는 팔을 휘저어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을 인어를 주먹으로 퍽퍽 두드렸다. 나중에라도 화내지 말라니. 화를 안 내게 생겼느냐고.
손 같은 것이 니노미야의 뺨을 감쌌다. 무엇인지 잡아서 확인할 정신도 없이, 니노미야의 입술 위에 말캉한 무언가가 닿았다. 니노미야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물이 아닌 바람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턱턱 막혀오던 숨길이 트였다. 입술에 머물던 말캉한 감촉이 이번엔 감기는 눈꺼풀 위에 닿았다. 니노미야는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호수 속 풍경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보골보골 올라가거나 떠다니는 물거품, 입을 뻐끔거리는 물고기들, 흐물거리는 물풀. 고요하지만 나름대로 규칙적인 소음을 내는 물소리. 물결.
그리고 인어.
물속에서 보는 인어 전신은, 니노미야가 열여섯 평생 상상해오고 그림으로 보았던 인어의 편견을 깨부쉈다. 허리에서 비늘이 돋아난 골반까지 흐르는 선이 아름다웠다. 우아하고 유려한 곡선에, 하늘거리는 꼬리지느러미는 우연히 보았던 비단잉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인어가 자신의 입술 위에 검지를 댔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손을 잡아끌고 흘러오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쳤다. 물의 온도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허리에 단단하게 팔을 감았다. 니노미야가 잘 매달린 것을 확인한 아이바는 더욱 힘차게 물살을 갈랐다.
"아까 들었는데."
이 정도로 헤엄치면 못 따라오겠지 싶은 배다리까지 왔다. 니노미야는 물 밖으로 완전히 나와 마셨던 물을 게워내고 벌건 눈을 비비며, 조금 착잡한 얼굴빛의 인어를 마주 보았다.
"그거,"
"훔친 거 아냐."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말을 단칼에 자르고 눈을 부릅떴다.
"내 거 맞아."
늘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의 유품이었다. 소라고둥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일생에 단 한 번, 자신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어주는 인어를 만날 수 있다는, 철 지난 전설을 믿는 사람이었다. 호수의 물살에 깎이고 닳아 둥그러진 유리를 정(丁)으로 둘러 깎아내 굴곡을 만들고, 조금씩 다듬어가며 소라고둥 모양을 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인어를 만났는진 모르겠지만 역병의 마수를 피하지 못하고 이승과 하직했다.
나, 꽤 살고 싶었구나. 질기구나. 열 살도 안 된 니노미야는 장례를 치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살아야지. 인어를 만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 살아야겠지.
"…돈이 없어서 전당포에 맡겨놨었다고. 나 같은 평민이 갖고 다니기엔 유리는 비싸거든."
이 나라의 뒷골목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니노미야도 가난하게 태어났다. 거기에 부모를 일찍 여의어 갈 곳이 없었다. 니노미야는 양친이 숨을 거둔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골목을 떠돌다 거두어준 도적단에서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 말이 거두어주었지 부모가 지고 있던 빚더미를 갚으라는 되지도 않는 협박이 무서워 달아나지 못한 거였고, 발이 묶였던 것뿐이었다.
“아까 그 자식들이 내 걸 뺏어가려고 해서, 가져온 거야.”
다행이라면 니노미야는 손재주 하나는 타고난 데다가 똑똑한 아이였다. 니노미야는 손재주와 비상한 머리로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살았다. 불행이라면 그 손재주와 지혜가 장인의 손재주가 아닌 눈보다 손이 빠른, 속임수를 쓰는 재주를 부리는 손과 잔머리라는 데 있었다.
도적들이 이제 다 컸다며 골목에 내던지기 훨씬 전부터, 소매치기로 슬쩍한 동전 한 닢, 주먹밥 한 알로 하루를 살았다. 야바위로 번 돈은 도적단에 전부 빼앗겼고, 니노미야는 그들이 주막에서 집어먹는 안주 하나를 슬쩍해 배를 채웠다. 야바위 장사가 영 시원찮은 날엔 도적단의 자금 창고에서 동전 몇 닢을 슬쩍했다. 니노미야는 주린 배를 움켜쥐며 다짐했다. 엄청난 보물을 훔쳐서, 몇 배고 비싸게 팔아넘겨서, 그 돈으로 부자가 될 거야. 도적단도, 채호현 제일 가는 부자도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도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부자.
"이게 필요해?"
아이바는 호수 바닥에서 동전을 주워와 니노미야의 손바닥 위에 얹어놓았다. 물에 젖은 금속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래, 아주 많이 필요해.”
귀한 보물들을 훔치려면, 일단은 도적들에게서 자유로워져야 했다. 썩어날 정도로 많은 돈이 필요했다. 결국 또 돈이야. 니노미야는 동전을 으깰 기세로 꾹 쥐었다. 아이바는 니노미야를 물끄러미 보다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오랫동안 쥐고 있으니 손이 아팠다.
흐흡. 끅. 크흑. 흐. 쿨쩍. 훌쩍.
맞은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인어가 아랫입술을 한껏 위로 당기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눈가와 콧망울이 붉었다. 아, 미안. 시끄럽지. 아이바는 눈 밑을 슥 비볐다.
"…뭐 해?"
"…슬픈, 끄흡, 생각…. 흑…."
아이바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얜 대체 무슨 슬픈 생각을 했길래 눈물을 닭똥처럼 흘려대. 어이없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목을 놓아 꺼이꺼이 울 것 같아 말을 붙이지도 못했다. 겨우 진정한 아이바는 세상 서럽게 울던 얼굴은 어디가고, 상쾌하게 웃으며.
“인간들은 이걸 좋아한다더라.”
손을 펴서 눈물방울을 톡, 톡, 톡, 니노미야의 손에 세 번 떨구었다. 니노미야는 보석상을 지나가다가 주워들은 단백석(蛋白石) 이야기를 떠올렸다.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과 무지개를 담은 듯한, 백옥보다 더 뽀얗고 맑은 광물이라 했다. 인어의 눈물은 그 단백석보다 좀 더 투명해서 정말 물방울 같았다. 아이바는 눈물을 손에 쥔 니노미야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눈물을 쥐게 했다. 눈물 세 개와 동전을 함께 쥐기에는 너무 작고 동그란 손이어서, 그 위에 다른 쪽 손을 끌고 와 덮었다.
"이거 줄게. 앞으로는 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겠다고 약속해."
"내가 왜? 아니, 훔친 거 아니라니까! 은화 상자도 두고 왔잖아!"
"응, 알아. 그러니까, 저 상자들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겠다고도 약속해."
"그러니까 내가 왜!"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찰박'이 아니라 '풍덩'에 가까운 소리가 들리고, 아이바의 등 뒤에서 물이 크게 튀었다. 인어는 니노미야의 손을 꼬옥 잡은 채로, 제법 단호한 눈을 했다. 전혀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거절할 수 없는, 식은땀을 흘리게 하는 신기한 까만 눈이었다. 아, 알았어, 하면 되잖아! 니노미야는 결국, 그 지긋한 시선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인어는 환하게 웃었다. 뭐 저런 인어가 다 있어.
"부탁 두 개를 다 썼네."
"아."
"하나로 쳐 줄게. 이걸 받았으니까."
니노미야는 손에 쥔 눈물 세 방울을 흔들어 보였다. 인어는 얼빠진 얼굴로 머리를 싸맸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물에 머리끝까지 머리를 담갔다가 빼고, 빙글빙글 돌고, 눈만 쏙 내놓고 보골보골 물거품을 만들었다. 얜 기회를 줘도 못 먹냐. 경탄에 가까운 감상이 들쯤.
"…불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부탁은 뜬금없었다. 불? 니노미야는 재차 확인했다. 그거면 돼? 아이바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녹을 것 같은데."
아이바의 꼬리는 유리 같았다. 잘 세공된 유리. 니노미야가 목에 건 유리조각처럼 우연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물의 정령이 직접 천 번씩 물질해서 잘 깎아낸 유리 같았다. 본 적도 없는 인어 비늘이 그렇게 비싸다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등불을 밤 내내 켜놓는 걸 보고 궁금했거든."
"…실망해도 난 몰라."
"괜찮아. 그냥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어. 인어는 불이랑 연이 없으니까."
유리색 꼬리지느러미가 살랑이며 비취색보다 더 엷은 청록빛을 흩뿌렸다. 니노미야의 눈에는 그 빛깔이 물총새의 깃을 닮기도 했고, 호수의 색 같기도 했다. 이상한 인어네. 니노미야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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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미야가 도적단을 나오는 덴 인어가 주었던 눈물 한 방울만으로 충분했다. 한 방울로 수도에서 왔다던 보석상에게 팔아 삼대가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었던 빚을 전부 갚았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먹고 싶었던 시장 고기 국수를 토할 때까지 먹고, 고서점에서 책을 하나 샀다. 염색 장인의 기록이었다.
“…유리색.”
책을 몇 번이고 뒤적였지만 '玻璃' 비슷한 글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한 방울로는 작은 집과 간단한 세간살이를 샀다. 도적단의 본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깨끗한 집이었다. 나머지 한 방울은 보석 냄새를 맡고 온 도적단에 던져주니 자기가 가지겠다고 치고받고 싸웠다. 그 꼴이 어찌나 추잡하던지, 니노미야는 슬쩍 잘 만든 모조품과 아이바의 눈물을 바꿔치기했다.
뜻밖에도, 도적단은 보석을 어디에서 났는지 캐묻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주웠다는 말로 초지일관 시치미를 떼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눈치가 이렇게 없는 놈들 밑에서 십여 년을 굴렀다니, 기가 찼다.
“…은 역시 무리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주인 잃은 물건들은 전부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호수에 잠기면 함께한 시간도 잠겨서 씻겨내려가, 의미를 잃어버린 물건이 대다수였던 탓이었다. 주인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은 늘 그래 왔듯 시침 뚝 떼고 꿀꺽하려고 하면, 목걸이에 달린 유리 장식에 눈이 갔다. 빨랫대에 넌 무명천들도 유리색 꼬리지느러미처럼 가볍게 나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애써 모른 척하려고 했었지만 까만 눈이 자꾸만 떠올랐다. 강이나 호수나 얼굴을 빼꼼 내밀고, 돌려주고 있느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내 손에 들어온 건 내 것, 남의 손에 들린 것도 (잠정적으로) 내 것으로 생각하며 십여 년을 골목에서 굴렀는데. 돌려주면서도 의문이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 인어가 뭐라고. 그 까만 눈이 뭐라고. 그 유리색 지느러미가 뭐라고.
니노미야는 책을 다섯 번 정독하고, 유리색에 가까운 빛깔을 내보려고 쪽과 푸른 꽃잎, 연둣빛을 낸다는 풀을 모아 천을 담갔다. 물이 든 옷감은 유리색과는 가장 조그만 인어 비늘만큼도 가깝지 않았다. 장인에게 머리 허리 무릎을 숙여가며 푸른색을 내는 법을 배웠지만, 배워도 배워도 그때 보았던 유리색에 가까워지진 않았다. 천에서는 물비린내는커녕 땅에서 자라는 풀들의 풋풋한 냄새만 날 뿐이었다. 물비린내가 맡고 싶다고 생각한 건 처음이었다.
니노미야는 거의 보름 만에, 인어를 만난 배다리 아래를 찾았다. 있을 거라곤 기대도 안 했는데. 인어 소년이 호수 위에 비친 달그림자를 구경하고 있었다. 니노미야의 기척을 느낀 인어는 호수 안으로 숨거나, 멀리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달빛을 등에 지고 니노미야의 발아래까지 다가왔다.
"안 다쳤네."
너무 안 보이길래 걱정했어. 유리색 꼬리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물 밑에서 주인 만난 충성스러운 강아지마냥 흔들기라도 하는지, 인어의 주변 물결 흐름이 달랐다.
"생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쓰레기를 가져왔다고 한소리 들었어."
니노미야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허리를 숙이는 인간도 있었지만, 정말 처치 곤란인 것들도 제법 많았다. 니노미야가 관아로 넘긴 물건 몇몇은 살벌한 사건의 중요 증거품이기도 해서, 며칠간은 관청 마루에 아주 살기도 했다. 번거로웠다. 뭐가 좋다고 이런 생고생을. 약속을 안 지킨다고 인어가 저주를 내리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답지 않게 너무 열심이었다. 인어는 동그란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가 니노미야의 오른쪽 뺨에 자신의 왼쪽 뺨을, 왼쪽 뺨에 오른쪽 뺨을 부빈 다음 이마를 맞대었다.
"착한 인간이구나."
인어 소년은 환하게 웃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과정이 ‘인어식 칭찬’으로, 인간들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열여섯 살 니노미야는 겨우 하룻밤 인어를 보았을 뿐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물에 불지 않은 딱딱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피부가 닿는 느낌이 낯설었다. 훅 다가오는 물비린내는 꿉꿉하지 않았다. 비늘이 닿은 부분은 느낌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했다.
"착하다는 소리 들으려고 한 거 아니거든? 네가 하라고 했잖아."
"그래도 약속을 지켜줬잖아."
아이바는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물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심장도 물살 따라 출렁거리는 착각이 들듯이. 심장이 어딘가 떠밀려가는 것 같았다.
"너, 불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고 했지?"
니노미야는 부싯돌을 꺼내 화제를 돌렸다. 부싯돌을 몇 번 요령 좋게 비비자 불씨가 금방 튀었다. 미리 챙겨온 마른 가지에 불씨를 붙였다. 금방 착 달라붙은 불씨는 호수 바람에 몸을 너울거리며 마른 가지를 태웠다. 아이바는 작은 불꽃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뜨거워."
"불이 뜨겁지, 그럼 차갑냐?"
"그치만, 등불은 따뜻해 보였는걸."
작은 불을 쬔 지 몇 분도 안 되어 아이바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어찌나 급하고 요란하게 온몸을 담갔는지, 니노미야가 홀딱 젖을 정도였다. 인어는 니노미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비늘이 다 투둑투둑 떨어질 것 같았는데. 물에 들어가니 이제 좀 살 것 같았다. 아이바는 물에 퐁 잠겼다가 머리를 쑥 올리며 불을 만난 소감을 전했다. 몸이 버석버석해져! 바싹바싹해! 이상해! 밤인데도 벌겋게 익은 얼굴이 불씨만큼 환했다.
아이바는 제자리에서 몇 바퀴를 돌다가 열기가 식을 즈음 니노미야 가까이 다가왔다. 턱선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수면 위로 톡, 톡, 떨어졌다.
"나, 이제 호수에서 안 살아."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인사하고 싶었어. 인간들은 그런다며."
"…모든 인간이 다 그렇진 않아."
내려오다가 잡히면 어쩌려고. 요즘은 인어 기름이 오래간다고 없는 비늘에서 짜내려고 하던데.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눈물을 팔러 갔던 수도 출신 보석상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인어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지근했다. 인어한테 기름 짜내려는 시간에 다른 기름진 걸 찾는 게 더 빠를걸.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니노미야도 뜨뜻미지근하게 대답했다. 인어는 그 반응이 뭐가 웃긴지 어깨를 떨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데? 질문을 입 밖으로 내기도 전에 인어가 대답을 내놓았다.
“나, 인간이랑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라서.”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데."
"그러게. 이상해."
아이바는 까르르 웃었다. 높게 들린 꼬리지느러미가 양옆으로 가볍게 흔들렸다. 인간인 나도 인어랑 이야기하는 건 처음인데, 인어들이 너처럼 다 그럴까 봐 걱정돼. 니노미야는 혀끝까지 나온 말을 간신히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아이바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동그랗고 까만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인간들이 잘 모르는 곳이라면…."
인어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두드렸다. 오늘은 숨 빨리 나눠줄게. 니노미야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보름 전, 호수 안에서처럼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색다른 바람이 한 줄기 들어올 것 같았다.
"혹시 연꽃 좋아해?"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내민 손을 잡았다. 연꽃은 관심 없었다. 그냥, 인어의 손을 잡고 싶었다. 인어의 손은 거친 물살도 버티기 위해서인지 인간보다 조금 더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단단한 느낌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불씨가 주춤하다가 검은 재에 파묻혀 숨을 죽이다, 그대로 깊은 잠에 들었다.
≡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낚을 수 있다면, 전당포에선 얼마만큼 쳐 줄까.
니노미야는 운하를 달음박질로 건너며 실없는 생각을 했다. 전당포는 맑은 달그림자의 값어치를 모를 게 분명하다. 그깟 투명한 조각이 뭐가 그리 돈이 되느냐며, 귀찮다는 듯 은화 몇 닢을 던져주고 말겠지. 차라리 보석상에 갈까? 그 할배는 만날 귀하고 빛나는 것들을 닦고 돋보기로 들여다보니, 달그림자의 은은한 빛깔에 눈이 돌아갈 거다. 제발 자신에게 팔아달라며 묵직한 금화 주머니를 들고 사정하겠지.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니야, 금화로는 부족해. 니노미야는 고개를 저어 머리숱이 적은 보석상의 얼굴을 지워냈다. 궁에 가야겠다. 궁에 달그림자를 바치면 귀한 것을 가져왔다고 상을 듬뿍 내리거나, 운이 좋으면 남아도는 자리 하나를 내어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운하가 길기도 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데 이제 겨우 반절 건넜다니, 믿기지 않았다. 호수에 뜬 하얀 조각달은 줄곧 니노미야의 왼편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호수 위로 부는 서늘한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었다.
“…역시 내가 가져야겠어.”
니노미야는 달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이 땅에서만큼은 내가 달그림자의 값어치를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다. 전당포 주인은 먼지가 쌓여가든 말든 놔두다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고, 보석상은 금고에 꼭꼭 숨겨두고 군침을 삼키기만 할 거다. 왕의 손에 들어가면 어디에 가도 빛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쓰임새가 없을 것이다. 나라면 저 달그림자를 떠서…. ‘그’에게 줄 텐데. 달빛 조각은 그의 손에서 가장 귀하게 대접받을 것이고, 가장 아름답게 빛날 거니까.
“거기 서라!”
뒤따라오는 묵직한 발소리에 고함이 겹쳐졌다. 젠장, 끈질기네! 아직도 쫓아오고 있냐고! 니노미야는 호수에 어른거리는 횃불을 보고 혀를 찼다. 고개를 드니 저만치서 횃불을 든 무리가 운하를 건너오고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니노미야는 멈추어 서서 등 뒤에서 덮쳐오는 웅성거림과 앞으로 밀려오는 횃불의 밝기를 가늠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는 상황. 속으로 얼마를 세어야 완전히 포위되어 새끼줄이나 오랏줄로 꽁꽁 묶일까. 열은 다 못 세겠지.
“의적(義賊)이니 뭐니 해도 도둑놈이다!”
아 좀, 그놈의 도둑놈 도둑놈. 니노미야는 미간을 확 찌푸렸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알아듣는 이가 있을까 아랫입술을 꾹 깨물어 참았다. 나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한 거라고! 진짜 도둑놈은 너희 주인님이라고! 아오! 원래 주인을 찾아줘서 고맙다고 하질 못할망정! 배은망덕한 인간 놈들!
“복면을 벗고 도둑질한 패물을 내놓아라! 태수(太守) 어르신이 아량을 베풀어 목숨만은 살려주신다 하였다!”
사병이고 경비고 모두 불러놓고선 아량 좋아하시네. 니노미야는 코웃음을 치고 운하 왼쪽 난간에 손을 짚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니노미야의 두 발이 사뿐히 다리 위를 떠나 난간에 착지했다. 어디 그 ‘아량을 베풀어 주실’ 태수님이 자비롭게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나는 갑니다. 니노미야는 공중으로 발을 내디뎠다. 밤하늘을 비춘 호수에 파문이 일었다. 달그림자가 일그러졌다.
귀가 먹먹해졌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니노미야는 얼굴에 달라붙는 복면을 거칠게 벗었다. 가벼운 검은 천이 둥실 떠올라 수면 위로 날아올랐다. 니노미야의 몸은 아래로 주욱 가라앉다 호수 수심 중간쯤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파바박 흩어질 즈음 멈추어 둥둥 떠다녔다. 팔다리를 움직였으나 물을 잔뜩 머금은 옷이 천근만근이라 어느 쪽으로도 제대로 나아가질 못했다. 별개로 몸은 물에 적응해 요동치던 심장은 안정을 되찾아서, 귀에서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호숫물이 흐르는 소리. 발장구를 치느라 물결이 퍼지고 밀려나는 소리. 물거품이 보골보골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니노미야는 몇 번 더 물살을 밀어보다가 포기하고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렇게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졌는데, 물건들은 다행히 제대로 있었다. 허리춤을 더듬던 손을 가슴께로 가져다 대니 무언가가 잡혔다. 소라 껍데기 모양으로 세공된 유리 재질 목걸이 장식이었다. 니노미야는 목걸이 장식을 쥐었다.
물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헤엄치는 방법은 여섯 살에 배워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잘 써먹고 있었다. 오랫동안 해왔으니, 잠수나 잠영은 나름 자신 있었다. 물 위로 뜨지도,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호수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편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귀와 코에 물이 들어오고, 공기가 모자라 머리가 몽롱하고 아찔해지는 감각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수경 없이 무작정 호수로 뛰어들었으니 눈을 뜨면 물살이 각막에 부딪혀 따가웠다. 이제 때가 됐는데. 니노미야는 눈을 깜빡였다. 작고 동그란 물거품이 보골보골 올라왔다. 수면에 뜬 달은 니노미야를 부드럽게 감싸듯이 비췄다.
달빛 위로 사람인지, 거대한 비단잉어인지 모를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그림자는 유려한 움직임으로 니노미야에게 다가왔다. 니노미야와 거리를 좁힐수록, 그림자는 명확한 형태를 갖추어갔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물고기. 물의 정령의 딸과 아들이라 불리는 생명체.
— 인어.
인어의 긴 손이 니노미야의 뺨을 감쌌다. 니노미야는 눈을 감았다. 이어서 눈꺼풀에 무언가가 닿아 눌리는 감각이 지나갔다. 부드러운 접촉이 멀어지면서, 니노미야는 아주 천천히 눈을 떴다. 아주 앏은 비취빛 창으로 둘러싸인 것 같던 시야가 개였다. 밤눈 밝은 고양이만큼은 볼 수 없었지만, 인어의 이목구비와 얼굴 윤곽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인어는, 어딘가 불만인 얼굴로 니노미야를 노려보고 있었다. 인어는 입꼬리를 각진 시옷 자 모양으로 내리고 아랫입술을 잔뜩 위로 당겨서 턱에 주름을 만들었다.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가 깨끗한 강바닥 아래에 비친 자갈만큼이나 반짝거렸다. 니노미야에겐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니노미야는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두드렸다. 숨을 참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였다. 니노미야의 손가락은 자신의 코에서 보골보골 올라오는 물거품을 가리켰다가, 작은 입술을 두어 번 두드렸다. 입술을 두드리는 박자가 미묘하게 빨라졌다. 인어가 삐쭉 내민 아랫입술이 니노미야를 나무라는 것 같았다. 니노미야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떴다. 호수 속에서 이는 물결이 출렁이며 니노미야의 등을 밀었다. 니노미야는 무거운 팔을 들어 인어의 목 뒤로 둘렀다. 인어의 귀 지느러미 밑으로 난 아가미가 열렸다 닫혔다.
인어는 눈썹을 팔 자로 휘고 자신의 얼굴을 니노미야에게로 가까이했다. 인어의 입술이 니노미야의 입술 위로 조심스럽게 포개어졌다. 니노미야의 입안으로 상쾌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두 입술 사이에서 작은 공기 방울이 알갱이를 흩뿌리듯 올라왔다. 니노미야가 고개를 틀어 좀 더 진하게 입술을 마주 대었다. 인어의 꼬리지느러미가 바짝 서고, 팔뚝에 돋은 비늘이 빳빳해졌다. 니노미야는 인어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눌렀다. 손가락 사이로 잔가지가 많은 물풀이 지나가는 듯한 촉감이 나쁘진 않았다.
이만하면 충분하려나. 호흡을 나눠 받는데 혀를 쓰면 놀라서 깨물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니노미야의 입술이 참아내는 아쉬움만큼 천천히 멀어졌다. 인어는 양 볼에 바람을 넣어 부풀렸다. 입맞춤을 갑자기 깊게 하려고 드니 많이 놀랄 법도 했네. 비단잉어를 닮은 꼬리지느러미가 고양이가 불만이 있을 때 꼬리로 바닥을 두드리듯 물을 거세게 쳐냈다. 니노미야는 입술을 두드리던 것처럼 제 이마를 가리키려다 손을 내렸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이면서, 꼬리만 보고 있으면 하는 행동이 꼭 개나 고양이 같단 말이지. 니노미야는 인어의 손을 잡아끌어 와 손바닥 위에 문장을 적었다.
「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
인어는 손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머리 위로 올라온 손에 어깨를 움츠렸다. 인어는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샐쭉 웃는 니노미야로 시선을 옮겼다. 니노미야의 작은 입술이 뻐끔거렸다.
빨리 와 주어서 살았어. 고마워.
인간의 목소리는 물속으로 전해지질 않았지만, 입술 모양으로 알아들은 모양인지 아가미가 여닫는 속도가 빨라졌다. 인어는 마디가 굵고 기다란 손으로 얼굴을 폭 가리고 누워 그대로 뒤로 헤엄쳤다. 인간식 칭찬을 한두 번 해준 게 아닌데, 계속 부끄러워하네. 니노미야는 키득키득 웃다가 물을 박차고 인어를 따라왔다. 인어는 손가락 사이로 빼꼼, 니노미야를 보았다가 손을 내밀었다. 니노미야는 인어의 손가락 사이로 자신의 손을 겹쳐 깍지를 단단하게 끼웠다. 인어는 니노미야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흘러들어오는 물을 거슬러 헤엄쳤다. 잡은 손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
뺨에 붙는 개구리밥이나 발목을 휘감는 물풀은 언제나 귀찮았다. 니노미야는 바위에 손을 짚고 올라와 마음껏 바깥 공기를 마시고 뱉었다. 잿빛 바위는 니노미야의 젖은 손자국이 닿아 먹색으로 물들었다. 물기를 타고 잎사귀가 흘러내렸다. 니노미야는 고개를 기울이고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낸 다음, 젖은 머리를 툴툴 털었다. 신발을 벗어 거꾸로 세우자, 신발이 주르륵 물을 뱉어냈다.
“― 아이바.”
인어가 물에 뜬 연잎들 사이로 까만 눈만 내놓았다. 니노미야는 피식 웃으며 젖은 옷을 한 꺼풀씩 벗었다. 마른 옷이나 천 같은 거 없어? 옷이 젖고 달라붙어서 좀 추운데. 젖은 옷들이 탁탁 소리를 내며 털어지고, 돌 위에 가지런하게 뉘어졌다. 니노미야의 머리 위로 옷가지 하나가 쓰개옷처럼 살포시 내려앉았다. 모닥불은? 니노미야는 옷소매에 팔을 꿰어 넣으며 뒤를 곁눈질했다. 등을 돌린 인어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가 다시 완전히 가렸다. 인어한테 너무 많이 바라는 거 아냐? 니노미야는 허리에 달린 끈을 묶으며 키득댔다. 그러네, 옷을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텐데.
“그러니까 빨래를 하면 가져가라구….”
아이바는 여전히 등을 돌리고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로 웅얼거렸다. 쌓인 니노 옷만 한 바구니야. 헤에, 그거 너나 다른 인어들이 입고 나들이 가라고 둔 건데. 그냥 니노가 귀찮았던 거잖아! 물에 잠긴 아이바의 꼬리가 연못 물을 휘적휘적 저었다. 니노미야는 어깨를 으쓱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만나자마자 표정 안 좋았던 거 의문이 풀렸네.”
민물 인어들이 사는 샘으로 가는 개울에서 빨래하는 인간은 니노미야밖에 없었다. 온갖 나무들이 장막을 치듯 꼭꼭 숨겨놓은 비취빛 샘과 장대한 폭포. 인간의 두 다리로 걸으면 쉽사리 길을 잃는 깊숙한 장소, 그렇다고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강물을 따라가도 쉽게 찾을 수 없는 은신처였다.
“니노가 쪽 염색한 옷감도 폭포까지 떠내려왔어. 그건 세 바구니째야.”
“그건 좀 미안. 그건 너랑 네 무리 식구들이랑 입어. 원하는 색이 영 안 나와서.”
“역시 가져가기 귀찮은 거지?”
아이바와 만난지 십 년이 되었다. 니노미야는 민물 인어들의 보금자리 위치를 알고 있긴 해도 가본 적이 없었다. 대신 이 연못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연못은 인간들이 찾아오기엔 갈대와 부들이 어지간한 어른들의 키만큼 높이 자라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여름이 되면 하얀 수련과 연잎으로 뒤덮여 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워낙 식물이 빽빽하다보니 으스스하기도 했고, 민물 인어들은 수중 식물의 뿌리에 꼬리가 걸린다며 불편해했다. 굳이 찾아와 연꽃을 감상하거나 연잎을 타고 노는 인어는 거의 없었다. 덕분에 연못은 본의 아니게 아이바와 니노미야 단둘이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단골 장소가 되었다.
"이제 돌아봐도 돼."
옷을 완전히 다 입은 니노미야가 아이바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오른쪽 어깨를 휘감은 반점이 물결 같다고 생각했다. 그 위로 돋은 비늘과 함께 보면 바위와 그 위 달라붙은 따개비 같기도 했다. 안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면서, 옷 갈아입을 때 내외하기야? 아이바가 연못 속으로 머리를 폭 담갔다. 니노미야는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자지러지게 웃어대는 니노미야의 얼굴로 물보라가 튀었다. 물 위로 가슴 위까지 내민 아이바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계속 놀리면 집에 안 데려다줄 거야.”
“알았어, 알았어. 안 놀릴게. 이리 와.”
“혀 넣으면 깨물 거야.”
“치사하게, 나이가 몇 살인데.”
“니노가 장난이 너무 심한 거야!”
아이바는 입술을 삐죽이다가도. 니노미야가 바위에 엎드려서 고개를 쭉 빼 입을 맞추면 행여나 니노미야가 빠지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며, 자신에게 점점 기대듯이 쏠려오는 니노미야를 팔로 단단히 지탱하곤 했다. 입맞춤 중간에 숨을 고르려고 잠깐 입술을 떼면 니노미야를 바로 앉히고, 바위 위로 올라와 짧은 입맞춤을 이어나갔다. 입을 맞추는 동안 아이바의 꼬리지느러미는 무언가를 지그시 눌렀다가 천천히 손을 떼듯이, 혹은 부채 짓을 하듯 아래위로 흔들렸다.
"이러다가 인간들이나 다른 인어들이 보면 어쩌려고?“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아이바의 눈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보고 올게. 아이바는 유연한 몸짓으로 연못에 몸을 던졌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말이 불안함에서 오는 말이 아닌, 둘만의 장소에서 정을 나누는 비밀스러운 상황을 즐기는 농담인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바가 인어로 태어난 데다가 니노미야가 몇 시각 전만 해도 쫓기던 입장인 이상, 몸에 피처럼 흐르는 본능보다 더 빠르게 경계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연못에 뜬 연잎이 물살에 밀려 자리가 바뀌었다.
"…어릴 땐 그렇게 무방비하더니."
니노미야는 혀를 한 번 찼다.
인간들이 인어를 설화 속 생명체 취급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어의 눈물과 비늘은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했다. 아이바와 니노미야가 아주 어릴 때는 인어를 고아 먹으면 모든 병이 씻은 듯이 낫는다며 호수에 그물을 치는 인간도 있었다. 이제껏 인어를 낚은 인간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민물 인어들은 종종 지느러미에 낚싯바늘이 스치고 지나가 상처를 입거나, 막 태어난 인어들은 그물에 걸려 허우적대거나 했었다. 인간들이 호수에 강에 버린 쓰레기가 떠내려와 꼬리를 다치는 인어는 둘이 성년이 된 후에도 제법 많았다.
안 잡힌 게 어디냐고 안심하기엔, 잊을 만하면 인적 드문 바닷가 마을에서 인어를 봤다거나, 인어의 눈물이나 비늘을 주웠다는 이야기가 멀리 떨어진 이 동네까지 들리곤 했었다. 수도에선 인어의 눈물과 비늘이 제법 수요가 있어서, 전문 감정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채호군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은 주기적으로 뜰채를 들고 물을 휘적휘적 저었다. 그 정성으로 좀 더 생산성 있는 행동을 하는 게 어때. 니노미야는 나루터에 배를 대는 이들의 머리통에 대고 참견을 하려다가 관두었다. 수염 허연 할아버지도 별말씀 안 하는데. 제일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사람한테 한마디 들으면 얼마나 짜증이 나겠어.
“…인간들은 욕심이 참 많지….”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서 달빛이 쏟아졌다. 니노미야가 앉아있는 바위로 연못 물이 출렁였다. 아이바의 꼬리지느러미가 연못 밖에서 빼꼼 나왔다가 다시 잠겼다. 안전하다는 신호였다. 달빛이 물방울에 반사되어 작은 무지갯빛을 뿌렸다. 유리색 비늘 하나하나가 이채롭고 은은한 광채를 냈다.
인어의 비늘 색은 태어난 물의 빛깔을 닮는 말대로, 아이바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어지간히 눈이 좋지 않거나 물이 맑거나, 날이 좋지 않은 이상 하늘하늘 나풀거리는 꼬리지느러미를 보긴 힘들었다. 아이바는 보호색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오른쪽 어깨를 덮은 큰 반점도 물속에서는 잉어나 수중식물 그림자로 보이기도 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니노미야는 물속에 두 손을 담갔다. 손가락 사이로 물풀이나 잔가지 같은 것이 만져지더니, 아이바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인어 귀는 살 대신 비늘과 지느러미가 달렸을 뿐 굴곡진 연골은 인간과 별다를 게 없었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귀를 만지작거리다가 매끈한 이마에 입술을 살포시 눌렀다. 그다음은 살며시 감은 눈꺼풀에. 입술에 차례로 입술을 짧게 붙였다가 떼었다.
“이번엔 뭐야?”
아이바가 니노미야가 옷 위에 모셔둔 주머니에 관심을 보였다. 주머니 끈을 풀자 온갖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 니노미야는 물건을 하나씩 집어 들며 설명했다. 이건 느티나무 오남매네가 첫째 딸 혼수품으로 쓰려고 했던 옥가락지. 열무밭 할아버지네 가보로 내려오는 은비녀. 찔레꽃밭 선비네 누님 유품이라는 뒤꽂이. 과거를 준비하는 아씨가 귀히 여기는 연적. 금화 몇 닢…. 몇몇 물건은 제대로 닦아주지 않아 빛을 잃어 패물이라고 부르기엔 뭐했지만, 어쨌든 하나같이 값나가는 물건이었다.
“돌려줄 거지?”
“당연한 걸 물어.”
니노미야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옥패에 입김을 불어가며 닦는 손이 꽤 정성스러웠다.
“지금 말고…. 분위기 잘 봐서. 그 꼬장꼬장한 어르신이 분 좀 삭이면?”
니노미야가 나고 자란 마을에 새 태수가 부임한 지 어느덧 여덟 해가 지났다. 전임 태수도 썩 좋은 관리는 아니었으나, 새 태수는 그야말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탐관오리였다. 진귀한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자신의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태수가 부임해올 적에는 인어를 잡아들여 매일 비늘을 하나씩 뽑고, 눈물을 온종일 흘리게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렇게 물거품으로도 죽지 못하고 말라 비틀어진 인어가 수십은 된다고 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람을 그렇게 부리는 자겠지—라고, 소문이 과장되었겠니, 하며 하여튼 무서운 사람일 거라고 수군댔다.
열여덟 살이었던 니노미야는 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배다리 밑에서 아이바에게 더 깊은 곳으로 숨으라고 충고했었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말대로 했다. 민물 인어들이 호수 가장 낮은 곳에서 버드나무 숲 샘으로 옮긴 지 겨우 두 해가 지난 여름이었다. 아이바와 인간들에게 그나마 호의적이었던 민물인어들은 모두 호수를 떠났고, 그중 겁이 많은 인어들은 폭포수로 거슬러 올라가 더 꼭꼭 숨었다. 인간들은 그렇잖아도 관심이 없던 인어를 서서히 기억 속에서 지워가, 건국제 때 가끔 떠올리고 말았다.
“그 어르신, 너도 알다시피 뒤끝 엄청나잖아.”
“저번엔 며칠 갔지?”
“거진 한 달. 인어 미끼를 아주 못 쓰게 만든 게 엄청 분했었나 봐.”
“으엑, 인어들도 성질 장난 아니지만 그 정도까진 아냐!”
인어를 잡아들인다는 소문이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도적 떼에 발이 묶여 있던 아이가 보석을 주워 배를 곯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새 태수의 귀에도 들어갔었다. 니노미야는 태수가 잡아온 인어를 보진 못했지만, 태수가 내놓은 자개와 영롱한 보석을 보고선 등골이 쭈뼛 설 수밖에 없었다. 태수는 잊을 만 하면 니노미야를 불러 인어의 비늘과 눈물을 꺼내 보여주며 집요하게 물었다. 정말 이것들을 다시 본 적이 없느냐고. 니노미야는 매번 고개를 젓고 입을 다물었다.
“이번엔 며칠 갈까?”
“글쎄. 이번에 쌔벼온 건 사원에 공양하니 뭐니 그런 턱도 없는 소리를 했으니.”
“음, 일주일? 저번에도 그랬었잖아.”
“일주일은 너무 짧고, 열흘? 새 물건이 들어오면 일주일 정도 미련 갖다 말겠지.”
“나이를 그렇게 먹고도 끈질길 수가 있구나, 인간은.”
부임하고 나서 석 달 정도는 미행도 붙였었다. 따돌리는 게 아주 쉬운 일은 아니어서, 민물 인어들이 자주 흐름을 타곤 했던 강을 지나칠 때면 작은 돌을 던져 일부러 인어들을 쫓아냈었다. 그간 아이바고 민물 인어고 비늘 끝도 보질 못했으니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던 거겠지. 그 석 달 동안 니노미야는 유리 소라고둥을 만지작대다 잠이 들곤 했다. 석 달만에 아이바를 연못에서 만났을 땐 너무 반가워서 다짜고짜 물에 들어갔던 것 같다.
아이바는 인어 꼬리로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다가 바위 위로 올라왔다. 마디가 굵고 긴 손이 덜 마른 머리 위에 올라왔다. 이 인어는 이제 ‘인어식 칭찬’보다 ‘인간식 칭찬’이 더 익숙하다. 니노미야는 시도 때도 없이 제 머리를 헝클어놓는 인어의 손길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니노는 역시 착해.”
“치, 칭찬받으려고 한 거 아니거든?
니노미야는 귀를 붉히고 다른 주머니를 아이바에게 건넸다. 아이바는 예의 그 강바닥 자갈 같은 동그란 눈을 끔뻑였다. 니노미야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빛으로 턱을 괴었다.
“너 가져.”
“주인 있는 거면 어떡하게?”
“또 그 소리. 주면 좀 가져.”
“그 태수 어르신 거 아냐?”
“야, 그 할배가 내 돈을 얼마나 등쳐먹었는데! 이건 그 할배가 내 피 같은 돈으로 산 거야. 내 거는 원래부터 내 거, 그 할배 거는 앞으로 내 거! 어찌 되었던 내 거니까 마음대로 해도 돼!”
니노미야가 벌떡 일어나 길길이 날뛰었다. 니노, 조심. 조심. 바위에 물기 남아있어. 미끄러져. 아이바가 두 팔과 꼬리지느러미를 퍼덕거리며 말리고 나서야 콧김을 흥 내뿜고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보면 분명히 좋아할 것 같아서, 너라면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서 일부러 가져왔다고―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저거 하나 더 챙겨오겠다고 손을 뻗었다가 딱 걸려서 도망치다가 호수로 풍덩 빠진 거라고 전후 사정을 설명하면 안 받는다고 고집을 부릴 게 분명하니까.
“고마워. 잘 받을게.”
아이바는 주머니 끈을 풀고 내용물을 꺼냈다. 백금으로 만든 소라고둥이었다. 장식품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역할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사치품. 연적이나 물그릇 정도로 쓸 수 있으려나, 궁에서도 물을 마시는 바가지로도 쓰진 않을 것이다. 그거랑은 별개로 섬세하게 만들어진 건 인정해야 했다. 아이바도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느 도공이 만들었는진 몰라도 물에 사는 인어가 입을 벌리고 감탄하기 바쁜 걸 보면…. 값을 잘 받았어야만 한다.
“진짜 소라는 좀 더 삐죽삐죽하고, 울퉁불퉁하고, 새하얗기보단…. 고운 모래색이지만.”
니노미야는 백금 소라고둥을 슬 쓰다듬었다. 예쁘니까. 진짜 소라는 이렇게 반질반질하질 않잖아. 다슬기도 빤딱빤딱하지만 인간이 만든 소라고둥은 손이 미끄러질 정도로 매끄러웠다. 아이바는 소라고둥에 귀를 대었다. 눈을 감고, 백금 소라고둥이 담아온 소리를 들었다.
"소라고둥에 귀를 대면 파도 소리가 들린댔는데."
"파도 소리보단…. 바람 소리 같아. 우웅, 우우웅― 같은."
"역시 인간이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좋아. 인간들에게 인어 말은 이렇게 들리겠지?"
배시시 짓는 미소는 열여섯에 처음으로 만난 앳된 인어 그대로였다. 한참 동안 백금 소라고둥에 귀를 대고 있던 민물 인어는 니노미야의 귀에도 소라고둥을 대어주었다.
바다는 말로만 듣고 한 번도 가지 못했다. 니노미야가 본 바다는 시장에서 파는 소금과 등 푸른 생선, 계곡 바위 밑에 따닥따닥 붙어있는 엄지손톱만 한 따개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하얀, 혹은 잘 닦은 흑옥 같은 조개와 니노미야의 두 손보다 한참 큰 소라가 전부였다.
호수마을 채호군에서 나고 자랐고, 철 들 때부터 인어와 제법 어울렸지만 호수도, 물고기도 바다 냄새를 싣고 온 것 중에선 썩 마음에 드는 건 없었다. 물비린내가 싫어서였다. 그렇게 따지면 물비린내를 달고 사는 인어도 싫어해야 하는데. 아이바를 끌어안으면 훅 밀려오는 체향은 뭔가가 달랐다. 어떤 조향사도 이 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유리색 지느러미를 보며 확신했다. 염색을 배운 지 꽤 오래되었는데, 비슷하게나마도 만들어내지 못한 색이었다. 땅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을 쏟아부어도 완전히 똑같은 색을 낼 수가 없었다.
“역시 진짜 바다 소라가 더 좋았으려나.”
니노미야는 슬 웃고 연못에 발을 담갔다. 민물 소라는 아무래도 좀 작으니까. 바다 소라라면 네가 좋아할 것 같았는데. 니노미야의 작고 동그란 발이 물 안에서 참방참방 물장구를 쳤다.
“니노가 그렇게 말하면 별님도 달님도 따줄 것 같아.”
아이바는 소라고둥이 니노미야의 귓가라도 되는 양 입에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소라껍데기 하나 구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시장에도 있고, 바다에 가면 널려있는데.”
“인간의 발걸음으론 바다까지 한—참 걸린다며. 니노가 바다에 가고 싶으면, 바다까지 태워줄게.”
아이바의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물방울이 똑, 오른쪽 어깨 위로 떨어져 반점을 타고 흘렀다.
“바다로 가는 물길도 모르면서.”
“가본 적 있어. 물속에서만 살던 새끼 인어 떼. 바다 인어가 여긴 어린 민물 인어 영역이 아니라서 오면 안 된다고 쫓아냈긴 했지만.”
아이바가 푸스스 웃었다. 호수로 흘러드는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동쪽으로 쭉쭉 헤엄치면 물살의 빠르기도, 물의 색도, 지느러미와 비늘을 스치는 감각도 달라졌었다. 물속에 녹아든 공기가 조금 짠 것 같다고 느낄 때쯤. 비늘 색이 다른 인어들이 앞을 막았다. 쬐끄만 인어를 생선으로 착각하고 한입에 삼켜버리는 무시무시한 물고기가 있다고 겁을 줬었다. 아이바는 돌아가서 호수 바닥에 드러누웠다. 얼른 커야지. 얼른 커서 바다를 전부 누비는 민물 인어가 되어야지. 아이바는 두 주먹을 쥐고 결심했다. 성년이 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결심을 이루지 못했다.
성년 인어가 되고 나니 인어를 잡아먹는 물고기 이야기보다 더 무서웠던 건, 새끼 인어들의 꼬리에 작살을 꽂으려고 했던 인간이었다. 아직 먼 세계인 바다보다 가까운 무리의 이야기가 생생히 다가왔던 점도 컸지만.
"그게 가본 거야?"
제발 더 깊은 곳으로 가라고, 애원했던 이가 있었다. 그 절박함이, 제 삶이 달린 양 두려워하며 손을 둥그렇게 그러쥐었던 손이 아이바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이바는 덜덜 떠는 소년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호수를 떠났어야 했다. 응. 니노 말대로 할게. 인간의 눈물은 인어처럼 굳질 않고, 짠맛이 날 뿐이었다. 호수엔 안 올게. 소년은 아이바에게 안겨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배다리 밑에서 몰래 이야기를 할 수 없겠네. 아이바가 아쉬워하자 소년은 눈물을 쏙 삼키고 기막혀했다.
“바닷물에 발가락도 안 담가본 니노보단 다르다. 뭐?”
“넌 인어잖아. 바다 인어가 아닌 민물 인어지만.”
니노미야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바닷물은 어떨지 궁금하긴 해."
아이바는 밤바람에 몸을 맡기고 몸을 흔들었다가 연못 속으로 몸을 담갔다. 강과 연못과 호수와 폭포만이 아닌 다른 물. 색다른 파랑. 공기의 냄새. 나룻배와는 비교도 안 될 큰 배들의 그림자 위로 손을 뻗어보고 싶었다. 바닷물로 스며드는 햇빛과 달빛은 어떻게 빛날까. 그런 게 궁금해. 아이바는 니노미야가 앉은 바위에 등을 기댔다. 백금 소라고둥에 연못 물이 가득 담겼다.
"궁금한 게 있는데."
아이바는 한참 동안 입술을 우물거렸다. 니노 얼굴 그림. 생각보다 여기저기 붙어있어서. 저잣거리고 골목길이고 붙은 벽보를 말하는 것이다. 다섯 해 전부터였지? 니노미야는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릴만한 것을 찾다가, 인어의 시선을 느끼고 픽 웃었다.
"…약속, 계속 기억하고 있어서 그래?"
"무슨 약속?"
"…음, 전부?"
"약속이 한두 가지여야지."
벌써 다섯 해나 됐나. 니노미야는 바위에 벌렁 드러누워 달을 올려다보았다.
채호군 태수는 니노미야에게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더니, 기어코 사람을 시켜 집을 뒤졌다. 목적이었던 아이바의 눈물과 비늘이 든 함은 워낙 꼭꼭 숨겨두어 찾지 못했지만. 집을 쑥대밭으로 만든 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니노미야가 도적단에서 지낸 시절, 가장 뼈가 되고 살이 되었던 격언은 「당하고는 못 산다」 였었다. 처음에는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골려줄 생각이었다. 가장 값이 나갈 법한 물건을 슬쩍할까, 아니면 금화가 가득 든 상자를 가져갈까. 어느 쪽이어도 화를 낼 테니 두 개 다 눈 뜨고 코 베여서 화병이라도 나버리라지 —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철없고 맹랑했는지.
"약속도 약속이지만…."
발소리를 죽이고, 기척을 숨기고, 원하는 것은 단 한 번에. 정확하게. 실수하면 손목이 바로 잘린다는 긴장감은 놓치지 말고. 아이바를 만난 이후로 소매치기 짓은 그만두었는데, 실력은 전혀 녹슬질 않았다. 니노미야 스스로도 자신의 재능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순조로웠다. 눈치 없는 사병 하나가 검은색으로 몸을 꽁꽁 감싼 저를 귀신이라 부르지 않았더라면 더 완벽했을 것이다.
옆구리가 끊어질 듯, 목구멍이 따가워서 피를 뱉을 것 같을 정도로 달려본 게 얼마 만이었더라. 니노미야는 낡은 배다리와 튼튼한 운하를 가로지르며 뛰고 또 뛰었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쫓아오는 사병들이 들고 오는 횃불도, 발소리도, 외침도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도망치기만 할 수 없었다. 사병들을 따돌리고 숨고, 처음부터 집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고민을 해결해준 것은 목울대 아래쪽, 빗장뼈 사이 움푹 들어간 곳을 간지럽히는 유리 목걸이였다. 자주 만나는 비밀 장소가 따로 있으니, 호수에까지 오지 말라고 그렇게 돌려보냈는데. 와 줄까? 기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아니야. 오지 말라고 그렇게 으름장을 놨는데. 오면 안 돼. 니노미야는 숨을 들이쉬었다. 체력이 되면, 헤엄치다가 쉬고, 헤엄치다가 쉬면서. 인간의 몸으로는 호수로 들어오는 거칠고 빠른 물살을 감당하지 못하겠지만. 집 앞의 강까지는 흘러갈 수 있겠지.
니노미야는 유리 목걸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절대로 호수에 오지 마.
쫓아오던 사병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무리 진한 염료를 쓴다고 해서 검은 천을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순 없더라고."
니노미야는 호수 바닥으로 잠기며 그의 인어 친구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깊은 호수는 여름이 되면 물이 맑아져. 그래야 인어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맑아지거든. 호수를 떠난 그 인어는 비단잉어를 닮은 꼬리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말했었다.
인어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맨몸을 그대로 내놓고 자유롭게 헤엄을 쳤었는데. 미안, 여름인데 맑은 건 잘 모르겠다. 물 속인데도 웃음이 피식 나오는 것 같았다. 인간에겐 새벽 호수는 그냥 추운 물웅덩이야. 인간이 맨날 따뜻해서 신기하긴 무슨. 인간은 물에 빠지면 쉽게 체온이 떨어지는 귀찮은 생물이야. 그래. 좀 춥네. 네가 그렇게 바싹바싹 말라가면서 불을 좋아하는 거 좀 알 것 같긴 해.
아득해지는 시야에서 마지막으로 언뜻 비친 건, 꼬리지느러미였다. 하늘하늘하네. 색은 잘 모르겠지만, 유리색이었으면 반가울 거라고 생각하며, 니노미야는 지느러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정신이 들었을 땐 숲이었다. 폐부로 흘러들어오는 공기의 밀도 자체가 달랐다. 익숙한 물비린내, 익숙한 풀 향기. 아, 여긴 연못이 있는 숲이구나. 니노미야는 흐릿한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연거푸 눈을 깜빡였다. 아이바의 얼굴이 선명히 보였다.
「 …오지 말라고 했는데. 」
니노미야는 허리춤으로 손을 내렸다. 검은색 무명 주머니 아래, 금화에 새겨진 글자 윤곽이 느껴졌다.
「 니노 목소리가 물 속에서 들렸어. 」
아이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안 웃는 날이 없던 인어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피곤함이 얼굴에 드문드문 보이는 비늘 하나하나에 깃들었다. 아이바는 심호흡을 했다. 검은 복면이나 장갑이나 옷이나. 오해받기 딱 좋았다. 아니,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지. 도둑이 맞지. 그것도 태수 어르신이 마을 업무를 보는데도 당당히 금화를 몇 주먹이나 가져왔는데. 니노미야는 곧 쏟아질 아이바의 잔소리를 기다렸다.
「 …많이 늦었지. 」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인어로 살면서 인간 이상으로 윤리 의식이 단단히 박혀 있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도 유리 소라 목걸이를 훔친 것으로 알고 오해하고 나쁜 인간이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자신의 눈물방울을 쥐여주며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겠다고. 호수 바닥에 잠겨 있던 물건들을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말했던 인어였다. 그런 인어인데, 아이바는.
「 입술이 너무 많이 파래져서. 니노가 물거품이 되는 줄 알았어. 」
아이바의 뺨에는 반짝이는 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다. 니노미야의 검은 옷엔 모래 알갱이처럼 눈물방울이 달라붙었다. 무언가가 가슴팍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굴러가다 풀밭에 풀썩, 눕는 소리가 들렸다. 손 까딱할 힘 정도는 남아 있는 게 다행이었다. 니노미야는 손을 뻗어 보석을 방울방울 떨구어내는 아이바의 머리를 슬 쓰다듬었다. 그랬구나. 인간은 죽으면 썩어서 흙이 된다고 그렇게 얘기해줬는데…. 니노미야는 일부러 짓궂은 투로 말했다. 열여섯에서 자란 니노미야는, 고맙다는 말이 여전히 입에 붙진 않아도 어색하게나마 말할 수 있었다. 고마워.
「 생명의 은인이신 인어 나리는, 나한테 뭐 부탁할 거 없어? 」
「 …니노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죽으면 흙이 된다느니, 은혜를 입었으니까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
「 빚지고는 못 사니까. 」
아이바는 아랫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게 무슨 빚이야. 열일곱 살에서 자란 아이바는 니노미야 앞에서만큼은 꽤 표정이 풍부해졌다. 처음 만났을 때 낯을 가리면서도 신기해하느라 드러나지 않았던 얼굴들이 마구마구 샘솟는 것 같았다. 의외로 어리광쟁이야. 아이바는 손등으로 눈물을 스윽 닦았다. 풀밭 위로 보석 알갱이가 흩어졌다.
「 …다음에 내가 와줬으면 할 때, <절대 호수에 오지 마> 처럼 이야기하면…. 」
울컥한 아이바가 니노미야의 옷가락을 잡아당겼다. 그래, 그래, 안 할게. 그러니까 그만 울어. 니노미야는 겨우 몸을 일으켜 제 머리 반 개는 더 키가 큰 인어를 도닥였다.
“…그냥. 인어한테 미움받는 건 싫어.”
속은 시원해도 떳떳한 일이 아니니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온갖 귀한 물건을 만져볼 수 있지만 본래 주인에게 되찾아주는 것이 목적이며, 설사 그 꼬장꼬장한 태수 어르신의 것이었어도 사치품을 바로 장터에 내놓을 수 없으니 돈을 바로 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탐관오리를 골탕먹였다고 나라에서 잘했다고 상을 주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복면을 쓴 얼굴 그림이 그려진 벽보가 오만 데 다 내붙는데, 뭐가 좋다고.
“나는 니노를 좋아하는데.”
채호군 인간들은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니노미야를 의로운(義) 도둑(賊)이라 불렀다.
의롭기는 무슨.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성격 나쁜 인간 하나의 오 년짜리 화풀이인데. 니노미야는 저잣거리에 떠도는 의적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의'자만 들어도 귓바퀴에서 튕겨 나갔다. 그저 패물을 잔뜩 훔쳐 달아나다가 길이 막혀 호수에 몸을 던지면, 반드시 아이바가 와주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바가 와서 안아주니까, 입을 맞추어 주니까. 길고 단단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 한참 동안 둘만의 장소에서 속닥속닥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도둑은 다 이기적인 놈들인데, 니노미야는 엉성하게 그려진 자신의 초상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알아."
니노미야가 세간 인간들에게 의적이라 불리는 '아슬아슬한 화풀이'를 하지 않아도, 아이바는 니노미야를 안아주고, 입을 맞추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니노미야가 멋대로 내리는 확신이 아니라 저명한 사실이었다.
“그냥, 몇 년간 관뒀던 연습을 하는 것뿐이야."
"연습?"
"응. 언젠가는 세상에서 제일 큰 보물을 손에 넣을 거니까.”
인어의 눈물이나 비늘보다 더 반짝이고, 누구도 값어치를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보물. 니노미야는 호수에 비친 달그림자를 떠올렸다. 그걸 가져가는 연습을 하는 거야. 달빛이 녹아든 연못의 수면이 니노미야의 발 끝 아래에서 흔들렸다. 예―전에 말했던 보물을 몇 배고 비싸게 팔아넘긴 돈으로 부자가 된다는 계획은 사기꾼 짓이야. 못하는 말이 없어. 안 팔아. 니노미야의 발이 연못 물을 흩뿌렸다. 아이바의 머리가 물 속으로 퐁 잠겼다가, 연꽃을 이고 떠올랐다.
“니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뭐라고 생각해?”
아이바는 손을 뻗어 니노미야의 뺨을 만졌다. 물 속에 있다면 같이 찾아줄게.
"…자꾸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게 해, 너는."
그런가? 아이바는 푸슬푸슬 웃다가 꼬리를 휘적휘적 저었다. 인어는 물의 정령의 딸과 아들이자 보물이라 했다. 어느날, 아이바를 닮은 물의 정령이 나타나 물거품과 물결로 만들어진 자신의 분신을 보내달라고 하면. 니노미야는 아이바를 끌어안고 그의 손이 뻗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는 상상을 자주 했다. 인어도, 인간도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아이바만큼은, 이 보물만큼은 아무리 당신이라도 못 돌려줘요. 정령 앞에서 그런 대사라니, 굉장히 불량하고, 간지러워지는 상상이었다.
"난 이거면 돼."
아이바는 까만 눈으로 니노미야를 가득 담으며,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이바의 귀 지느러미 밑에서 아가미가 빠르게 열리고 닫혔다. 자기가 해달라면서, 부끄러워하는 건 언제쯤 나아지려나.
"내가 하고 싶은 거 말고.”
니노미야의 옷자락 끝이 젖어들어 갔다. 발장구를 치던 발이 발목까지 잠기고, 이어서 무릎이. 팔꿈치가 물에 잠겼다. 니노, 기껏 갈아입은 옷이 젖었는데. 상관없어.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어깨 위로 팔을 둘렀다. 니노미야의 윗입술이 아이바의 아랫입술에 부드럽게 닿았다가 멀어졌다.
"그럼, 같이 바다에 갈까?"
"내가 하고 싶은 거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말하라니깐."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니노미야의 코와 뺨에, 그리고 입술에 아주 짧게 아이바의 입술이 지나갔다.
"조금 더 생각할래."
니노미야의 옅은 갈색 눈이 깜빡였다. 아이바가 니노미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댔다. 니노미야의 둥그런 이마에 유리색 비늘이 스치고, 물방울이 맺힌 아이바의 이마엔 니노미야의 체온이 전해졌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보물은 내 품 안에 있어서."
니노미야는 웃음을 터트렸다. 못하는 말이 없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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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여름이 세 번 지나갔다.
유리색을 천에 물들여보려 했던 염색장이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호수 마을 채호군에서 검은 복면을 쓴 의로운 도둑의 활약이 끊긴 때도 그쯤이었다.
인간들은, 유리색 꼬리지느러미 인어 하나가 함께 채호군을 떠났다는 사실까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