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어의 회귀
진미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거친 바닷바람이 고막을 괴롭힌다. 바다에서 오는 모든 소리들은 크지만 절대 거슬리지 않았다. 바닷가에 앉아있으면 신기하게도 집집마다 처마 밑에 매단 풍경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바다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가 바다와 가까운 이곳을 그의 여행의 마지막 종착역으로 결정한 이유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방파제에 파도가 끊임없이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모습을 바닷가에 서서 지켜보았다.
풍경 소리가 유난히 맑고 선명하게 들리는 날이면 나는 더 이상 이 섬에는 없는 니노미야 카즈나리를 떠올렸다. 바닷가에서 주운 소라고둥을 귀에 가져다 대보았다. 아무런 특별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니노가 바다로 떠났을 때 소라고동에서 들려오던 파도 소리도 함께 가져간 모양이었다.
이맘때쯤이었다. 벌써 6년 전 일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불현듯 정신을 차리면 시간은 어느새 한참 지나있었다. 허망하게 바다를 보던 나는 모래사장에 털썩 앉아 모래를 헤집었다. 예전 같으면 심란했을 마음이 그동안 해풍에 무뎌져서 서글픔은 좀 덜해졌다. 더불어 니노에 대한 기억도 풍화되어 바스러져 모래와 함께 섞여갔다. 다만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했다. 나뿐만 아니라, 마사키 오빠도.
어릴 적 열한 살의 나는 니노미야 카즈나리를 인어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렇게 항상 물기 있는 커다랗고 쓸쓸한 눈과 고운 얼굴의 마른 소년을 일전에 본 적이 없던 어린 나는 마음대로 그를 인어라고 단정 지었다. 그는 거의 매일 해질녘 때쯤에 우리 집 앞에 있는 해변가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린 나는 겁도 없이 초면인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함께 바다를 보았다. 그는 나를 흘끔 보고 난 뒤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소년이 계속해서 멍을 때리는 동안 나는 나대로 그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어쩌면 그는 인간 세상이 궁금해 올라온 인어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육지에 남게 된 걸지도 모른다고. 너무 오랫동안 뭍에 나와서 지느러미가 없어진 인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일 바닷가에 나와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뿐일 거라고 상상했다. 거기다 외모가 아름다우니 혹시 인어 왕자가 아닐까, 동화 속의 인어 공주처럼 사랑에 빠져 뭍으로 나오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도 그럴게 그의 눈은 눈물이 눈가에 괴어있는 것처럼 맑은 데다 어딘지 처연한 구석이 있어서 슬픈 사연이 한 개쯤이라도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인어왕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바다가 어울리는, 바다를 담은 눈을 가진 소년이 그였다.
여기까지 공상을 하자 나는 이제 내 가설을 확인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미리 언급했지만 어린 나는 겁이 없었다. 그의 곁에서 며칠 동안 공상만 하던 나는 어느 날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바다가 그리워?"
누가 잠에서 깨운 것처럼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말없이 내 쪽으로 돌아보았다. 그의 울망한 두 눈과 마주치자 나는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오빠 인어지. 아마 왕자일 거야."
"응?"
"사람들한테는 말 안 할 거야. 바다에 돌아가고 싶다면 내가 도와줄게."
"뭐?"
당황스러워하던 그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푸하하, 시원스레 웃던 그는 아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름이 뭐야?"
"미즈키."
"음, 미즈키. 일단 미안하지만 나는 인어가 아니야."
나는 내 추측이 틀려서 부끄럽기보다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 눈을, 그 얼굴을 가졌음에도 인어가 아니라고?
"그럼 사람이야?"
"응. 완전히 사람이야."
"인어였던 적도 없어?"
"날 때부터 사람이었어."
"잊어버린 걸 거야!"
"뭐, 내가 인어였다는 걸?"
"응!"
"아니야. 그건 절대 아냐."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믿을 수 없어 그가 앉아있던 계단 칸에 마주 앉았다.
"수영할 줄 알아?"
"응."
"그럼 인어였을 거야!"
"엥, 그럼 너는 수영할 줄 몰라?"
"알아."
"그럼 너는 인어야?"
"아니, 하지만 오빠가 바다에 돌아가게 도와줄 수는 있어."
"너 왜 자꾸 날 바다로 보내려 해!"
그는 깔깔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한편 나는 진지했었다. 나는 그가 여전히 날 믿지 못해서 경계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난 인어가 아니야. 그럼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들도 다 인어게?"
작은 섬에 사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수영을 할 줄 알았다. 듣고 보니 나도 더 이상 그가 인어라는 다른 근거를 댈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 상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시무룩해졌다. 그는 풀이 죽은 나의 머리를 슬슬 만져주며 날 달래주었다.
"인어가 아니라 미안하네."
"아냐. 그럼 이름이라도 알려줘! 인어가 아니라도 친구는 해줄 거지?"
내 말에 그는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난 니노미야 카즈나리야. 니노라고 불러."
"이름 예쁘다! 있지, 니노는 어른이야?"
"뭐, 그렇네. 나이로는 어른이야."
"육지에 있는 우리 사촌 오빠는 아직 고등학생인데 오빠보다 더 아저씨 같아."
"그런 말은 하는 거 아니야."
니노는 웃음을 꾹 참는 듯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나는 꽤 수다스러운 아이였다.
"그럼 마사키 오빠랑 나이 비슷하네! 마사키 오빠는 도시에 가서 공부하고 있대."
"그래?"
니노는 본인이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도 맞장구를 잘 쳐줬고 장난도 쳐 주고 당해주었다. 그는 아이를 잘 돌보는 편이었다. 친절한 그는 결국 나와 친구가 되어주었다.
니노는 소금기에 절은 축축한 바닷바람의 촉감과 냄새가 좋다고 했다. 그리고 혼자가 좋다고 했다.
"너는 괜찮아."
침울해진 내 표정을 본 그가 얼른 웃으며 덧붙였다.
"그냥, 보통은 다른 사람들이랑 있으면 좀 피곤해서…."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몇 없는 우리 마을로 온 것이고, 매일 그렇게 바닷가에 나와 바다를 보는 거라고 했다. 바다는 넓고, 새로 태어난 것이든, 죽어가는 것이든 뭐든지 품어줄 것 같아서 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수 있다고, 마음이 편해진다고.
"그럼 마사키 오빠도 싫어하려나?"
"사람이 싫다는 게 아니라…. 아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음, 잠깐 말을 고르던 니노는 이내 멋쩍게 웃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동네잔치랑 아무도 없는 바닷가 중에 고르라면 바닷가를 고르는 편이라는 거지."
근데 말이야.
바람에 날리는 내 머리를 정리하던 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마사키라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야?"
"이제야 물어보네."
"그걸 알긴 알고 있었나 보구나."
그도 그럴게 나는 니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꾸준히 마사키 오빠를 언급했었다. 한참 후에야 물어봤으니, 그전에는 아마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마사키 오빠를 계속 언급했던 것은 아무 의도 없이, 그저 마사키 오빠는 나와 가장 친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어른이었기 때문이었다. 작은 마을이라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사람은 위로는 육지 쪽에 가 있는 수험생이었고 아래로는 갓난 아기라 항상 심심했었다. 그런 차에 학교도 가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서 나와 놀아주는 니노는 나에게 소중한 친구였다. 그러던 차에 마사키 오빠 섬에 오고 난 뒤 니노하고 친해지면 놀기 더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렇게 매일, 반은 의식적으로 반은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잘생겼어."
"그것뿐이야?"
그것뿐이냐고 웃는 니노에게 나는 아직 안 끝났다고 손을 휘휘 저었다. 그것뿐만이 아냐!
"착하고, 회도 잘 뜨고, 요리도 잘하고, 제일 대단한 게 동물들이 마사키 오빠를 좋아해! 그리고 니노 오기 전에는 나랑 제일 잘 놀아줬어. 지금은 요리 공부한다고 도시에 올라갔대. 아냐, 이번 주에 온다고 했어! 지금 생각났다!"
그때 니노랑 인사하면 되겠네! 나는 혼자 들떠서 마사키 오빠에 대한 것을 더 떠들었지만 니노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저 평소처럼, 바닷바람에 날리는 내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웃으며 적당히 맞장구쳐주었을 뿐이었다.
마사키 오빠는 이틀 뒤에 마을에 왔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우리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음식점인 아이바 네로 뛰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마사키 오빠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그가 있던 지역에서 만든 특산품 과자를 주었다. 한참 동안 오빠를 안고, 매달리고, 도시는 어땠냐고 물어보다가 이내 나는 곧 니노가 바다로 나오는 해질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사키 오빠와 니노를 만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사키 오빠! 니노 만날래?"
"니노? 니노가 누구야?"
"따라와!"
나는 오빠의 손을 바닷가까지 잡아끌었다. 바닷가에 가까워지자 저 멀리서 앉아 있는 니노의 작은 등이 보였다.
"니노!"
그의 이름을 부르자 니노는 뒤를 돌아보았다. 해질녘이라 수평선에는 주황빛과 황금빛이 니노의 옆얼굴에 물들고 있었다. 눈은 언제나처럼 촉촉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내 손에 끌려오는 마사키 오빠를 가리켰다.
"마사키 오빠야!"
"아…."
상황 파악을 하는 듯 나와 마사키 오빠를 번갈아 보던 니노는 이내 유하게 웃었다.
"그 잘생기신 분이구나."
"잘생기고 요리도 잘하고 착하다니까! 그치 오빠?"
신나서 마사키 오빠 쪽을 돌아보니 오빠는 입을 반쯤 헤 벌린 채 니노를 보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다시 니노 쪽을 보니 니노도 말없이 마사키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마사키 오빠의 얼굴은 벌겠다. 나는 그게 해질녘 때문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있잖아, 니노미야 군이 이거 좋아할까?"
니노를 만나고 난 후, 한동안 마사키 오빠가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처음에는 오빠가 니노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 열심히 대답해주었지만, 곧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귀찮아서 언젠가는 이렇게 되물었었다.
"마사키 오빠는 왜 니노한테 직접 안 물어봐?"
그러면 언제나 오빠는 얼굴이 벌게져서 머리를 긁었다. 어린 나였어도 이상한 것은 느꼈다. 아무리 사람 없는 어촌 마을이어도 티비는 잘 나오는 편이었다. 엄마 옆에 붙어서 본 드라마에서 나오는 남자 주인공도 오빠랑 비슷한 반응을 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여자 주인공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던데. 혹시, 하는 마음에 곧 오빠에게 물었다.
"마사키 오빠, 니노 좋아해?"
열심히 식재료를 옮기던 오빠는 목각 인형처럼 굳어지더니 목부터 머리끝까지 벌게졌다. 내가 우왁, 마사키 오빠 얼굴 터지겠어,라고 실없는 소리나 하고 있을 때 오빠는 다급하게 물었다.
"니노는, 아니 니노미야 군은 모르지?"
"아니라고는 안 하네."
그것보다 오빠도 니노라고 불러? 내 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았는지, 오빠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사키 오빠, 저기 감자 굴러가."
"나 어떡해… 근데 어떡해… 니노, 아니 니노미야 군, 너무 귀여운 걸…."
정신을 못 차리는 오빠 대신 나는 굴러가는 감자 몇 알을 주워주었다. 일단은 마사키 오빠에게 큰일이 났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니노, 니노는 마사키 오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음, 잘생긴 사람?"
니노는 어딘가에서 게임기 하나를 받았는지 요즘은 게임에만 열중하고 있다. 처음엔 예전만큼 날 봐주지 않아 서운했지만, 여전히 대답도 해주고 가끔 나도 게임을 하게 해줘서 지금은 괜찮아졌다.
"그것뿐이야?"
"그도 그럴게 네가 매번 그렇게만 말했잖아. 잘생겼다는 말을 서두로 칭찬을 엄청 늘어놓았으니까.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네. 실제로 잘생기기도 했고."
"그럼 안 친해?"
"음, 만나면 인사하고 몇 마디 대화하는 정도?"
"몇 마디?"
"응. 네 말만 듣고 활달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대화하니까 말수가 되게 없으셔서."
그 말을 듣자 나는 자동적으로 아까 목각 인형이 된 오빠를 떠올렸다.
"불쌍한 마사키 오빠."
"응? 뭐라고?"
"아니야. 마사키 오빠도 니노를 니노라고 부르길래 친한 줄 알았지."
"…그래?"
열심히 십자 버튼과 a를 연타하던 니노는 내 말에 손가락을 잠깐 멈췄다.
"앗, 니노. 마리오 죽었어."
"니노라고 불러?"
"응."
그 말에 니노는 잠시 저 바다 끝을 보듯 시선을 먼 곳으로 던졌다. 잠시 침묵하던 니노는 이내 부활한 마리오를 열심히 조종했다. 왜 그러지?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다시 마사키 오빠를 대신하여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맞다. 니노는 음식 뭐 좋아해?"
"함바그랑 라멘. 갑자기 왜?"
"마사키 오빠가 물어봤어. 그리고 니노 귀엽대."
나는 자각 없이 들었던 말을 전해주었다. 좋은 말이었으니까, 나는 성실히 칭찬을 당사자에게 전해주었을 뿐이었다. 영특한 편이었어도 상황 판단을 하기에 나는 그때 너무 어렸었기 대문이었다.
다음 날 낮, 마사키 오빠의 집으로 가니 니노가 있었다. 해질녘이 아닌 시간에는 니노가 하숙하는 곳에 굳이 찾아가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대낮부터 나와 있어서 신기해 함성을 질렀다. 깜짝 놀란 니노가 뒤를 돌아보고 나인 것을 알고 표정을 풀었다.
"깜짝 놀랐네."
"니노가 낮에 어디 나온 거 처음이야!"
"처음은 아니야! 네가 못 본 것뿐이지."
니노는 톡 쏘는 말투로 내 말을 받아쳤다. 나는 니노가 앉아있는 자리의 반대편 의자에 앉았다.
"여기는 웬일이야?"
"그럼 너는?"
"난 마사키 오빠한테 놀아달라고 왔지!"
"유감이네, 아이바 씨는 나랑 먼저 놀기로 했거든."
"정말?"
"앗, 미즈키!"
니노랑 투닥거리는 사이 마사키 오빠가 앞치마 끈을 묶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나는 신나서 의자 위에 올라간 채 폴짝폴짝 뛰었다.
"오빠! 오빠 진짜 니노랑 놀자고 한 거야? 드디어 친구 된 거야?"
"음, 그게 그냥 오늘 내가 니노미야 군한테 점심 만들어주겠다고 해서…."
"그냥 편하게 니노라고 불러요. 한 살 차이 난다고 들었으니까."
마사키 오빠는 니노의 말에 또 얼굴이 붉어졌다. 먼저 마음대로 니노라고 부른 것이 찔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기뻐서 그런 건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럼 니노는 마사키 오빠 뭐라고 부를 거야?"
"아이바 씨?"
"뭐야, 딱딱해! 심지어 우리 마을에는 아이바 씨가 네 명이나 있는걸!"
"그럼 어떻게 불러? 저, 실례하지만 이름이?"
"아, 아니, 마사키인데요… 미즈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나는 쩔쩔매는 마사키 오빠를 곁눈으로 흘겨봤다. 빨리 친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오빠가 너무 망설이는 게 좀 답답했다. 와중에 니노는 만담 같아진 대화가 재밌어진 모양인지 히죽히죽 거리고 있었다. 방금도 일부러 장난치듯이 이름을 물어보고.
"그럼 마사키라고 부르면 되겠네! 결정!"
"미즈키, 형님은 안 되나, 형님?"
"니노미야 군까지…."
"어어, 오빠! 니노라니까!"
"미즈키!"
한창 마사키 오빠를 몰아가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더 놀고 싶은데. 우물쭈물거리느라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한 번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키지 않았지만 가야 했다.
"나 갈게. 다음에는 꼭 나도 불러줘! 나도 같이 놀고 싶어."
"응, 그럴게. 얼른 가, 미즈키. 할머니 기다리신다."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운했지만 니노가 자상하게 대답해줘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식당을 나왔다. 달려나가는 도중 살짝 뒤를 훔쳐보니 둘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사키 오빠가 나 없이도 잘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집으로 뛰어갔다.
저녁을 먹은 후에 엄마에게 해지기 전까지 잠깐 나가서 놀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집을 나섰다. 곧 니노가 언제나 앉아있는 그 시멘트 계단에 나올 시간이어서 나는 바닷가로 향했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예상대로 니노가 있는 게 보였다. 반가워서 니노를 부르려고 보니, 곁에 마사키 오빠도 있었다. 근데 분위기가 심각해 보였다. 중요한 얘기인가. 엄마 아빠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끼어들지 말고 잠깐 기다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둘의 시야 밖인 계단 옆 담장에 앉아서 둘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말하는 게 언뜻 들렸다.
"…그러니까 그냥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당신한테는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니노."
심각한 대화인 것 같았지만 상황을 모르는 나는 그저 잠자코 앉아 옆에 있는 민들레를 건드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반말하네. 다행이다, 친해졌나 보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 발밑에 개미가 줄줄이 지나가서 그것을 구경하느라 대화를 조금 놓쳤다. 다시 귀를 쫑긋 세우니 니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람인데?"
마지막? 개미 한 마리가 경로를 이탈하자 뒤에 있는 개미만이 그 개미를 따라갔다. 나는 개미들이 다시 행렬로 돌아가게끔 나뭇가지로 그 개미 두 마리 주위를 쿡쿡 찔렀다. 그러느라 또 몇 마디를 놓쳤다. 이번에는 마사키 오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명이라고 느꼈으니까. 사랑을 처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어."
사랑? 이건 또 무슨 말일까? 내가 나뭇가지로 땅을 콕콕 찔러도 두 개미는 행렬에 돌아가지 않았다. 결국 둘은 그 자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함께 있을게."
말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나는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았다. 니노와 마사키 오빠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그냥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서로를 보는 눈빛이 뭔가 달랐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두 사람 너머로 해질녘이 바다에 비쳐 예쁘게 빛났다. 그것 때문에 두 사람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평소처럼 둘 사이로 뛰어들어 장난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어서서 엉덩이에 묻은 모래를 털고 집으로 뛰어갔다.
뛰어가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둘 다 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착각이려나.
다음에 또 바닷가로 갔을 때도 니노와 마사키 오빠가 같이 있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심각한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았다. 마침 탐험을 하다가 멋진 소라고둥을 하나 주워서 자랑을 좀 해야 했다. 나는 계단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뒤에 섰다.
"뭐해?"
"아, 미즈키다. 우리 손금 보고 있었어."
"손금?"
그러고 보니 니노는 마사키 오빠의 손을 손바닥이 보이게 잡고 있었다. 흘긋 오빠의 귀를 보니 예상대로 조금 붉었다.
"마 군 손금 보고 있었는데, 미즈키 것도 봐줄까?"
"내 건 달라?"
"응. 사람마다 다 다르지."
"그럼 봐 줘!"
나는 니노에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역시 손이 조그마네, 하고 니노가 감탄을 하자 마사키 오빠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니노랑 별 차이 안 나는 것 같아."
"시끄러워, 마 군."
웃으며 마사키 오빠의 장난을 받아친 니노는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손금에 의미가 있는 거야?"
"응. 물론 무조건 맞는 건 아니지만."
니노는 내 손바닥에 그어져 있는 선명한 손금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을 했다.
"봐봐, 여기 있는 게 운명선이고, 이게 재산을 나타내는 거야. 오, 미즈키는 돈 많이 벌겠다.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돈을 쌓는 게 낫다는 말이 있지."
"그런 게 있어?"
"응, 우리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마사키 오빠는 그 말에 킥킥 웃으며 바람에 날린 니노의 머리를 조금 넘겨주었다. 그 눈빛과 손길은 평소의 오빠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것들은 뭔가, 더 달콤했다. 음, 잘 모르겠네.
"니노, 그럼 이 선은 뭐야?"
"생명선이야. 선이 긴 걸 보니 미즈키는 오래 살겠다. 미즈키 복이 많나 보네."
그러고 보니 엄지손가락 위에 시작된 굵은 손금은 내 손목 끝까지 뻗어 있었다. 사실 오래 사는 게 좋은 건지 잘 몰랐지만 복이 많다는 말은 칭찬이니까 기뻤다.
"그럼 마사키 오빠도 생명선 길어?"
"응. 꽤 길더라. 거북이만큼은 아니지만 오래 살 거야."
"니노는?"
마지막 물음에 니노는 입을 다물었다. 왜, 나도 보자! 재촉하며 니노의 오른손을 빼앗고 보니 생명선이 손바닥의 중간도 가지 않아 끊어져 있었다. 마사키 오빠는 옆에서 슬픈 눈으로 그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워서 니노를 올려다보았다.
"니노는 왜 이렇게 짧아?"
"…뭐가 짧아? 나 완전 긴데?"
"뭐야, 니노 속임수 쓰지 마!"
잠시 얼어있던 니노의 표정이 다시 밝아지며 손을 오므려 주름으로 생명선을 길게 만들었다. 니노의 장난에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말했지만, 무조건 맞는 게 아니니까. 생명선 짧다고 오래 못 사는 건 아니지."
"그렇지?"
"근데 미즈키, 그건 뭐야?"
마사키 오빠가 밝은 목소리로 내 곁에 놓아두었던 소라고둥을 가리켰다. 맞다, 내 주 목적을 잊어버릴 뻔했다.
"오늘 바닷가 탐험을 하다가 발견했어. 이렇게 큰 소라고둥은 처음 봐! 자랑하려고 가져왔어."
"그러게, 나도 이렇게 큰 거는 본 적 없어."
만져봐도 돼?
마사키 오빠가 묻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크고 예쁜 조개껍데기였다. 전체적으로 희고 조개에서 볼 수 있는 줄무늬가 예쁘게 그어져 있었고 만화에서 나온 전화기 같은 모양이었다.
"소라고둥에서는 바다 소리가 들린댔는데."
"정말?"
"응. 한 번 귀에 대봐."
니노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소라고둥을 귀에 대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소라고둥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맑은 날, 파도가 모래사장까지 올라왔다가 물러서는 소리가 조개껍데기의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신기하다! 들려!"
"그래?"
"마사키 오빠도 들어봐! 파도 소리가 들려!"
마사키 오빠도 받아서 귀에 대보더니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니노도 들어보라면서 니노의 귀에 대주니 니노도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소라 안에 바다가 들어있는 것만 같았다.
"니노는 이걸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알고 있었는데. 마 군도 알고 있었을걸."
"알고는 있었는데 이렇게 제대로 들린 적은 없었어."
"역시 니노가 인어여서 그런 걸 거야! 인어가 곁에서 있어서 더 잘 들리는 거지."
"그럴 리가. 그것보다 너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인어?"
마사키 오빠가 인어라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어서 나는 내가 니노를 처음 봤을 때 인어인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빠는 곁의 니노를 조용히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알 것 같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바다랑 어울리지 않아?
마사키 오빠의 말에 니노는 귀를 붉히며 말없이 소라를 들어서 괜히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나는 그 상황이 웃겨 웃음이 나왔다.
"그치? 금방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어."
그래서 더 인어 같았을지도.
그러자 소라를 만지작거리던 니노는 내 말에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것처럼 눈을 내리깔더니 이내 뭔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미즈키."
"왜, 니노?"
내 대답에 니노는 입술을 달싹이며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있지.
"사실 인어야, 나."
곁의 마사키 오빠가 화들짝 놀라 니노를 보더니 뭐라고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니노는 그런 오빠를 슬쩍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엄청나게 들뜬 상태였다. 처음의 내 생각이 맞았던 것이었다.
"그럴 것 같았어! 왜 처음엔 아니라고 한 거야?"
"그야 난 미즈키를 몰랐으니까."
"하긴, 그럴 수 있지."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니노는 역시 인어였다. 니노가 인어라니. 그리고 인어가 내 친구라는 게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아 들떴다.
그런데 문득, 나는 그가 바다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지 궁금해졌다.
"그럼, 니노는 언젠가 바다로 돌아가야겠네. 아니면 이제 사람이 되어서 땅에서 계속 사는 거야? 인어공주처럼?"
"…아니, 언젠가는 바다로 돌아가야 해."
니노의 말에 옆에서 마사키 오빠가 몸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오빠도 서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놓아서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였었다. 더욱이 니노가 바다로 갈 때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준다고 했었고.
"그럼 언제 갈 거야?"
"그건, 나도 잘 몰라. 너무 먼 미래의 얘기는 아닐 거야, 아마."
"그렇구나…."
있지. 니노가 운을 떼며 말하자 나는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니노는 웃고 있었지만 슬퍼 보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멍 때리던 얼굴에서 입꼬리만 올린 표정 같았다. 어딘지 슬퍼 보이던 그 얼굴.
"나 갈 때, 미련 없이 보내줬으면 좋겠어. 미안해. 근데 나는 여기서 오래 못 사는 몸이라..."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는 니노의 눈이 평소보다 좀 더 물기 있었다. 그 눈에 나는 일부러 좀 더 믿음직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서운하지만 보내줄 거야. 바다가 오빠 집이니까."
"고마워."
"대신 자주 와야 해. 보고 싶을 거야."
"…응."
대답하는 니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니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우느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마른 시멘트 계단 위에 물방울이 떨어져 동그란 모양으로 자국이 남았다.
그날 니노는 내 앞에서 조금 울었다.
그 이후로 아무런 큰일도 없이 평화롭게 하루하루가 지났다. 여름의 시간은 낮에만 늘어지는 모양이었다. 벌써 이렇게 되었나, 싶을 정도로 밤들은 꽤 빨리 지나갔지만 더위는 좀처럼 지나가지 않았다. 니노와 마사키 오빠는 여전히 붙어 다녔고, 그동안 나는 글자 공부를 시작했다. 글씨 쓰는 연습을 하느라 전보다 나가 노는 일이 조금 덜해졌다. 공부는 지루했다. 게다가 장마가 시작되어서 나가 놀 수가 없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어린이들은 바다로 나갈 수가 없었다.
장마가 지나 매미가 다시 울기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나가 놀 수 있었다. 장마가 지나고 이제 막 여름의 마지막에 접어든 탓에 매미들은 더 맹렬하게 울었다. 그 소리에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더해져 밖에 나가면 묘하게 소란스러웠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랜만에 니노를 보러 그의 집에 놀러 갔다. 니노의 집은 원래 우에하라라는 할머니가 사시던 데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비었던 집에 어느 날 니노 혼자 이사 왔던 것이다. 엄마가 그 집 청년이 몸이 약해서 요양 차 온 것 같더라고 아빠랑 얘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 같다.
니노네 집에 가까이 가면 풍경 소리가 고요히 들려왔다. 풍경은 마사키 오빠가 달아준 거였다. 장마가 끝난 뒤 부는 잔잔한 바람이 예쁜 풍경 소리를 만들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왠지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즐거운 소식이 아니었다.
니노의 집에 들어섰을 때 니노는 대청마루에서 언제 온 지 모르는 마사키 오빠의 허벅지에 머리를 베고 누워있었다. 나를 보자 니노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작은 움직임이었는데도 온 힘을 다하는 것 같은 몸짓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평소처럼 까불댈 수가 없었다. 그저 조용히 두 사람 곁에 앉자, 니노가 사실 말해줄 게 있다고 했다.
니노는 이제 곧 바다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벌써?"
"그렇게 됐네. 나도 아쉬워."
못 본 사이 파리해진 니노가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나는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려고 애썼다. 미련 없이 보내기로 약속을 했으니까.
게다가 니노는, 분명 안색은 창백했지만 행복해 보였다. 그게 계속 느껴지던 마음 한 켠의 이상한 느낌을 잠재워주었다.
"그럼 바다로 나갈 때 배웅해줘도 돼?"
"미안해. 그건 안 될 것 같아."
"그렇구나…."
바닥을 내려다보던 나는 니노에게 다가가 안겼다. 니노도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니노는 손에 꽃반지를 하고 있었다. 잘 보니 마사키 오빠도 다른 꽃으로 만든 반지를 끼고 있었다. 넷째 손가락에.
그제야 나는 두 사람의 관계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그 묘한 분위기가 모두 설명이 되었다. 나는 적어도 니노가 이 섬에 살면서 외롭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평소와 같이 떠들려고 노력했고 니노와 마사키 오빠는 내 장단에 맞춰 놀아주었다. 마지막이었지만 평소처럼 즐거웠다. 헤어지기 싫었지만, 어쩌겠어. 그는 인어인걸. 그래도 니노가 인어인 것이 그 순간만큼은 싫었다. 니노를 보내주기 싫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나는 니노의 집을 나섰다. 이미 꽤 걸어갔을 때 저 멀리 뒤에서 니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얼른 멈춰 섰다. 니노는 문 앞까지 와 나에게 또 배웅을 하고 있었다.
"잘 가, 미즈키!"
"응, 바이바이!"
대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니노의 모습이 아지랑이에 아른거려 곧 사라질 것 같았다. 마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기분이 묘했다. 무엇인가가 불안했다. 서운해서 그런 걸지도. 나는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게 나와 니노의 마지막 인사였다.
다음 날 아침 뭔가 낯선 느낌에 눈이 떠졌다. 아직 깨지 않은 정신으로 엄마가 있던 자리를 더듬어보니 엄마가 있을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불안해 주위를 둘러보자 침대 옆에 누가 고개를 무릎에 묻고 앉아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사키 오빠였다. 이 시간에 우리 집에는 웬일이지?
"오빠..."
내가 부르자 오빠는 고개를 들었다. 놀랍게도 마사키 오빠는 울고 있었다. 어른인 오빠가, 항상 웃는 얼굴이던 아이바 마사키가 엉엉 울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잠이 다 달아나버렸다.
"왜 울어?"
마사키 오빠는 대답 대신 날 안았다. 아무리 다시 물어봐도 답을 해주지 않자 나도 슬슬 눈물이 나려고 했다. 왈칵, 눈물이 솟아올랐다.
"왜 우는데!"
빼액 소리를 지르면서 울음을 터뜨리니 마사키 오빠는 날 더 단단히 끌어안고 겨우 말했다.
"니노가, 갔어. 니노는 바다로 돌아갔어."
말이 끝나자 오빠는 딸꾹질을 했다. 그러면서도 우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더 큰 소리로 울었다. 곁에 울보가 두 명이나 있다면서 웃으며 달래줄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인어는 여름의 끝자락에 결국 바다로 돌아갔다.
엄마는 니노가 두고 간 자리를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러 가서, 엄마의 부탁으로 내가 깨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고 나중에 조금 진정한 마사키 오빠가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니노가 신세 졌던 사람들이 곧 육지에서 올 거라고 했다. 니노의 물건들을 가져가기 위해서 올 거라고.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키 오빠가 너무도 아파 보였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엄마는 나에게 검은색 옷을 입히고 이제 바다로 갈 거라고 했다. 왜 가는 거냐고 물어보니 니노를 보내주는 행사를 참여하는 거라고 했다. 육지에서는 한 사람밖에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 행사에 참여하기로 한 거였다. 할머니랑 엄마의 대화를 엿들으니 유언이 이 섬 앞바다에서 잠들고 싶었더라나 뭐라나, 가엽다면서 뭐라고 하던데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유언이라니? 가엽다니? 니노는 고향인 바다로 돌아간 걸 텐데. 나는 나가는 길에 전에 주웠던 소라고둥을 챙겼다.
바닷가로 가니 마사키 오빠도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오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오빠의 손을 잡았다. 오빠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마사키 오빠가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들고 있는 소라를 꼭 쥐었다. 저 멀리서 니노의 집 풍경 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윽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신없이 일어났고, 곧 니노미야 카즈나리라고 불리는 재가 바다로 뿌려졌다. 나는 그게 니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니노라고 믿을 수 없었다. 니노는, 다시 지느러미가 생겨서 바다 속 인어 왕국으로 간 것일 테니까. 저 재가 니노일 리가 없었다.
엄마를 찾으러 오빠의 손을 잠깐 놓고 돌아본 사이 오빠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엄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어른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행사에서 빠져나와서 나는 니노가 묵던 집을 찾아갔다. 마지막으로 그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니노의 집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떡하지. 예상과는 다른 상황에 니노네 집의 담장을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모르는 할아버지가 니노의 집에서 나왔다.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나는 깜짝 놀라 바짝 얼어서 그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자 내게 다가왔다. 무서워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니 할아버지는 두 손을 보이고 걸음을 멈췄다. 할아버지는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혹시 마사키라는 사람을 아느냐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천천히 다가와 편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분에게 주는 편지 같구나."
나는 잠자코 할아버지가 주는 편지를 받았다. 하얀 편지 봉투였다.
"꼭 전해주렴. 마사키라는 분이 카즈에게 소중했던 사람인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자 할아버지는 인자하지만 어딘가 슬픈 웃음을 짓고 뒤돌아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편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편지를 봉하지 않았고 겉봉에 누구에게 주는 것인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이게 할아버지 말대로 정말 마사키 오빠 것인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편지를 열어보았다.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태어났을 때부터 오른손에 그어진 내 생명선은 정말 짧았습니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당신을 만난 뒤로는 그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밤낮으로 손톱으로 손금을 더 깊게, 길게 파봐도 다음날 아침에 보면 그대로였습니다. 마치 이게 내 운명이라는 듯이.
처음에 이 마을에서 생을 마감할 계획은 아니었어요. 바다가 가까운 이곳에서 요양을 하다가 도쿄로 올라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즈키를 만나고, 마을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결국 당신을 만나게 되었을 때쯤에는 우려하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보다 더 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버렸던 거죠. 가슴에 병을 품은 사람의 분수에 맞지 않은 바람이었어요.
모두가 죽어가는 처지긴 하지만 나는 그 끝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가까이 있잖아요. 당신과 함께한 후로 많은 것이 아름다워 보였지만 동시에 그것을 느낄 수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도 나에게 점점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갈 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아름다운 하늘은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나서 집에 돌아갈 때, 하늘이 외로워 보였어요. 동시에 내일은 내가 또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과연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두려운 것도 처음이었어요. 모두 당신을 사랑하고 나서부터 알게 된 거였습니다.
당신은 말했죠. 날 처음 봤을 때 운명을 느꼈다고. 그러니까 당신은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을 거라고. 나는 그 말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고 있었어요. 이미 당신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린 거죠.
우리는 왜 운명이었을까요. 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손을 잡고 죽을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요, 우리는. 왜 사랑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에 후회는 하지 않지만, 계속 가정을 하게 되더라고요. 바꿀 수 없는 일들을, '만약에'라는 말을 되뇌고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당신과 더 있고 싶어서.
기대되는 내일을 만들어 준 당신을 사랑합니다. 거짓말이 서툰 것도, 바보같이 로맨티스트인 것도, 그 미소도, 큰 손도, 당신이 만든 음식들도, 그리고 이 짧은 편지에 담을 수 없는 당신의 모든 부분들 전부 다. 사랑합니다.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차라리 꿈이었다면 좋았을 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당신을 혼자 두고 떠나는 것도, 결국 꿈이었을 텐데.
당신이 나중에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당신보다 더 오래 살길 바랄게요.
아이바 마사키, 당신을 사랑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행복하게, 오래 살아줘.
잘 있어.
사랑하는 나의 마사키에게.
너의 니노가.
*
편지는 마사키 오빠 것이 맞았다. 나는 얌전히 편지를 도로 접어 봉투에 넣었다.
편지를 읽고 나니 차마 니노의 집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서 있다가 손에 쥐고 있던 소라고둥을 니노의 집 앞에 놓고 갔다. 직접 주지는 못했지만, 니노에게 주는 내 마지막 선물이었다. 친구해줘서 고마웠다고, 이 여름 동안 참 즐거웠다고.
나는 마사키 오빠에게 편지를 전해주었다. 편지를 다 읽은 오빠는 편지를 손에 쥐고 한참을 또 울었다. 그 모습을 보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서 오빠와 같이 울었다. 니노가 보고 싶었다.
우린 니노를 바다로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줄곧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은 아니었는데.
마사키 오빠는 요리 공부를 마저 끝내러 다시 육지로 갔다. 나 역시 엄마에게 이끌려 육지의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이 섬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니노가 언젠가 이 섬에 돌아오면 맞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럴 일은 없을 걸, 내심 알면서도.
바다에서 멀어지자 니노에 대한 생각도 적어졌다. 어느 순간 마사키 오빠와 연락도 끊겼다. 니노는 정말 인어처럼 전설로 내 기억 속에서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 후인 지금,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러 부모님과 함께 섬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섬은 이촌향도 현상으로 마을 주민이 열 손가락에 꼽을 만큼만 남아있었다. 다행히도 개발은 아직 안 되어 옛 모습이 거의 남아있었다. 아이바네 식당은 오래전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재작년인가, 마사키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육지로 갔다는 소문을 이웃집 할머니가 얘기해주셨다.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나는 오랜만에 동네를 돌았다. 지나가다 마주친 식당은 내 기억보다 훨씬 작았다. 어느새 이렇게 훌쩍 커버린 걸까. 손을 내려다보다 문득 생명선이 눈에 띄어 잠시 바라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니노네 집에 가 볼까.
니노네 집은 거의 무너질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래도 남아있는 집들은 조금씩 관리를 한다고 들었지만 역시 사람이 살지 않아서 폐가의 느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니노네도 역시 내 기억보단 작았다. 마사키 오빠가 달아줬던 금속 풍경은 아직도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을 보니 마음이 아파왔다. 차마 죽을 거라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어린 친구에게 자신이 인어라고 속였던 이 다정한 어른과 그의 도톰한 손바닥의 반절도 안 되는 생명선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괜히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아 나가려고 뒤를 돌았다. 그때였다. 니노네 집의 우체통을 지나치려다, 우체통 안에 무엇인가 있는 게 보였다. 들여다보니 편지 한 통이 있었다. 편지는 조금 바래 있었다. 봉투를 뒤집으니 이름 두 개가 적혀 있었다.
아이바 마사키가.
니노미야 카즈나리에게.
편지는 봉해져 있지 않았다. 나는 망설이다 편지를 열어 읽어보았다.
*
당신이 떠난 이후로 벌써 4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아직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당신이 떠나기 전날, 나는 아침 일찍 당신의 집에 가서 당신에게 청혼을 했죠. 당신은 내 말을 듣자마자 미쳤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 울었었죠. 어차피 곧 죽을 사람한테 뭐 하러, 하는 마음이었겠죠.
하지만 그때 바닷가에서 내가 말했잖아요. 당신을 만났을 때, 운명을 느꼈다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함께 하겠다고. 나는 당신을 너무도 사랑했고, 당신이 내 마지막 사랑일 거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청혼했던 거예요.
하나 아쉬웠던 건 그 달에는 계속 날씨가 안 좋아 배를 띄워 육지로 갈 기회가 없어 반지를 주지 못 했던 거였습니다. 당신이 내 청혼과 함께 서툴게 만든 꽃반지를 받아주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웠어요. 마지막인데 제대로 된 반지 하나 없다는 게. 우리의 결혼 생활은 하루 만에 끝나게 되었죠. 나는 당신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었는데도 많이 힘들었어요. 결국 4년이 지나서야 당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 섬에 올 수 있게 되었어요. 그 김에 제대로 된 반지도 한 쌍 맞춰왔어요. 당신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보고 싶어요. 당신의 마지막 편지는 아직도 잘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이따금 꺼내서 읽어봐요.
이렇게 된 우리의 운명이 조금은 야속하긴 하지만 나도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당신이 내 운명이었다는 게, 감사합니다.
저도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짓궂은 태도도, 시도 때도 없는 장난과 허풍, W 모양의 입술, 구부정해 고양이 같은 등, 바닷바람에 날리는 머리와 작은 손, 그리고 당신이 불러주던 노래와 그 목소리까지 전부.
니노미야 카즈나리, 당신을 사랑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해줘서 감사했습니다.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해, 니노.
*
나는 편지를 다시 우체통에 되돌려 놓으려 했더니 뭔가가 걸렸다. 우체통을 들여다보니 반지 케이스가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반지 하나가 있었다. 원래 두 개가 꽂혀 있는 케이스인데 한자리가 비어있는 걸 보니 그 반지는 마사키 오빠의 손가락에 있는 듯했다.
눈이 자꾸 뜨끈해지길래 손을 눈 쪽으로 가져다 댔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나는 그 낡은 우체통 앞에 한참을 서서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눈물로 씻었다.
니노네 집에 달려있는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울렸다.
어릴 적, 나의 인어가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