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어와 소라고둥
노이
장난일 게 분명했다. 인어들은 서로 소라고둥으로 전화를 한다는 둥 그의 모든 말엔 장난이 가득했으니까 말이다.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란 말도 당연히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진짠가."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매일 밤 그를 만났던 바닷가에 나와 앉아있어 보아도, 담요 한 장을 두른 채 밤바다의 추위를 견뎌보아도 보이질 않았다. 수면 위를 둥둥 떠다니는 해초를 보고서 그의 머리칼인가 하고 들떴던 마음이 포말로 부서지기를 수백 번이었다. 아이바는 해변가 구석을 차지한 손바닥만한 소라고둥을 들었다.
"아아."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면. 아이바는 어디로든 이 불안한 감정을 쏟아내고만 싶었다. 바다처럼 흐르지 않으면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감정도 똑같다. 이대로 두면 더 불안해질 게 뻔했다.
"드, 들리나요?"
아이바는 낯선 첫마디를 남기고서 소라고둥을 귓가에 갖다 댔다. 전화기라더니 반대편에서는 우웅 바람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파도소린가?
"니노 나와라. 오버."
크큭. 아이바는 벗어둔 슬리퍼를 조금 밀어내고서 물기가 마른 모래사장에 등을 기댔다. 무전기도 아니면서 손에 딱 들어오는 사이즈가 괜히 웃긴 바람에 아이바는 코웃음을 냈다.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실이 끊긴 실 전화기처럼 이쪽의 이야기가 니노미야에게 닿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아이바는 머리밑에 팔을 끼워 넣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고 싶다, 엄청."
"바람 피우는 건 아니지? 걸리면 죽어. 내가 죽어."
"누가 듣고 있으면 좀 전해주세요. 제가 진짜 좋아한다고."
아이바는 답지 않게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는 사람처럼 그 작은 구멍 너머로 조잘거렸다. 진짜 좋아하니까. 인어 주제에 해초류 미끌거린다고 싫다고 하는 것도 귀여워. 귀여워. 보고 싶다. 언제 오려나. 나한테 당분간은 며칠인데 너한테 당분간은 몇 년일까 봐 무서워지네. 인어는 몇 년이나 살아? 아냐. 상관없어. 그냥 좋아할래. 내 마음대로 할래. 너도 네 마음대로 하는 애니까.
"보고 싶다.. 그 아래에도 게임기 같은 게 있나? 내 거 빌려주려고 충전도 해뒀는데."
밤은 길었고 아이바는 이런 밤이 하루 이틀이 아닌지 준비해온 두툼한 담요를 반바지 위로 두르며 소라고둥을 다른 손에 옮겨 들었다. 수면 위로 올라오는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에 사라지고 아이바는 눈꺼풀이 무거워 어쩔 수 없어지는 그 순간까지 도톰한 입술로 쫑알거렸다.
"어이. 마사키. 일어나."
아이바를 깨운 건 경찰인 사쿠라이였다. 새벽부터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닷가를 순찰하던 그는 모래 위에 쓰러진 사람을 봤다. 시체가 아니냐는 동료에게 아는 사람이니 안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갓길에 차를 대고 내려와 아이바를 깨웠다. 벌써 며칠째였다. 사실 밤마다 해변가에 나와 있는 것도 안 된다고 겁을 주곤 했지만, 이성으로 설득하는 쪽과 막무가내인 쪽이 붙어봐야 답은 뻔하니까. 아이바는 사쿠라이가 건네주는 이온 음료를 마셨다. 겨우 방금 해가 떠올라 밝아진 하늘이었지만 그 눈부심 자체로도 더위는 충분했다. 아이바는 팔뚝과 어깨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며 웃었다. 좋은 아침.
"바다 구경도 하루 이틀이지, 인마."
아이바는 사쿠라이에게 밤바다가 보고 싶다는 거짓말을 했었다. 잔잔한 파도를 가르고 걸어 나오는 니노미야가 보고 싶은 거지만 장황한 러브스토리를 들려주기에는 낯부끄러워서 그렇게 둘러댔다. 죽마고우의 앞에서 애인이 보고 싶어 죽을 것 같아 나와 있다는 말을 할 순 없었다. 하하, 아이바는 사쿠라이가 접어준 담요를 받아들고 슬리퍼를 신었다. 손에 들린 이온 음료는 그대로 받아 가기로 했다. 손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아이바는 소라고둥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안 올 거지? 응? 야."
아이바는 사쿠라이의 어깨에 살짝 몸을 부딪치며 눈을 휘었다. 그을린 피부와,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반점 위로 수백 개의 모래알이 붙어있었다. 사쿠라이는 바닷바람 탓에 끈적일 몸을 하고서 해사하게 웃는 제 친구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아이바의 등이 조금 처진 거 같아 마음이 안쓰러웠다. 밤바다 같은 소릴 하기는... 차인거야, 뭐야. 차인 주제에 너무 해맑고, 아니라고 하기엔 하는 짓이 미련하기 그지없네. 사쿠라이는 아이바에게 시장까지 태워다주겠다며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 - -
"누, 누구.."
아이바는 아버지가 바다에 나가신 동안 잠시 가게를 보고 있었던 참이었다. 생선을 노리는 길고양이들에게 그보다 두 배는 비싼 고양이 전용 사료를 주고서 그 보답으로 고롱고롱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문득 가게 앞으로 어떤 그림자가 나타났다. 니노가 주래.
"네? 니노요?"
아이바는 장화 주변을 서성이는 고양이들을 피해 가게 밖으로 나왔다. 니노를 아세요? 아이바보다 조금 어두운 피부를 가진 남자는 대답 대신 작은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아이바는 손에 들린 주머니에서 구슬 같은 것이 만져지기에 주둥이를 묶은 끈을 풀어보았더니.
"지, 진.. 진주.."
"응. 진주래."
"아니, 것보다 니노를 어떻게 아세요?"
혹시 정말 바람.. 바람이라도.. 아이바는 괜히 가늘어지는 눈가를 부러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하품하는 남자는 머리 위로 덮인 후드를 더욱 당겨 얼굴을 가리려 들었고 아이바는 고개를 기울여 남자의 얼굴을 다시금 확인했다. 가까워지는 거리에 남자의 슬리퍼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나도 그거야."
그거? 아이바는 남자의 크게 떠지는 두 눈을 바라봤다. 과장되게 눈을 감았다 뜨는 그 눈꺼풀 아래, 짙은 검은색의 홍채와 흰자 위로 얇은 막이 덮였다. 아.
"그거, 그거네요."
아이바는 남자의 눈을 보려 숙였던 허리를 곧게 세웠다. 이름은 모르는데, 아무튼 그거 인어들이 가진 그거잖아. 어쩐지 반말이더라. 니노도 그러더니. 아이바는 받아든 진주 꾸러미를 주머니에 넣고서 잠시 들어오겠냐는 말을 꺼냈다. 여름의 햇살은 수중생물에게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아냐, 습한 게 좋아."
"아."
아이바는 붕붕 돌아가는 선풍기를 뒤늦게 끄고서 아이스박스에 담긴 얼음 아래에서 생수병을 꺼내 건넸다. 아이바는 하품으로 벌어지는 입을 팔등으로 가리며 웃었고 생수병을 받아든 남자는 몇 모금으로 목을 축이더니 후드 주머니에 생수병을 꽂아 넣었다. 소금 있어?
"니노는 어디 있어요? 같이 오셨어요?"
아이바는 소금에 대한 대답 대신 생선을 담으려고 닦아두었던 대야에 해수를 담았다. 바다에서 바로 끌어온 해수라는 말에 남자는 슬리퍼를 벗을 듯이 달려들었고 아이바는 덜걱 놀랐다가도 의자를 내주었다.
"혼자 올라오신 거예요? 니노는요?"
"말해주지 말래."
"하?"
손바닥 가득 해수를 퍼 올린 남자는 그 짠물로 얼굴을 몇 번이고 닦았다. 아, 살 것 같다. 겨우 궁둥이를 붙인 남자 옆으로 아이바는 의자를 하나 더 꺼내 앉으며 물었다. 왜 말해주지 말래요? 왜?
"그건 모르겠는데. 아, 전화 좀 하지 말래. 창피하다고."
"전화요?"
저거. 바닷물에 절어있는 손가락을 꺼내든 남자가 가리킨 끝에는 허름한 가게 안쪽자리를 차지한 소라고둥이 있었다. 하얗긴 하지만 빛이 난다기보다 그냥 흔한 바다의, 떨어져나온 부품 같은 저게 진짜 전화란 말이야?
"나도 좀 들었어. 밤새 시끄럽더라."
아이바는 지난밤 자신이 조잘거렸던 것들을 되새겨보다가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팔이 미끄러졌다. 버, 번호 안 눌렀-.
"인어가 번호가 어딨어. 눈치껏 들을 때까지 부르면 누가 옆에서 알려줘. 운 나쁘면 못 받고."
"그럼 저, 저는.."
"운이 좋았던 거지."
남자는 수조 안을 헤엄치는 작은 물고기들에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멀리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아하하 웃었다. 아이바는 전혀 웃지 못했지만 남자는 그것만으로 신이 났는지 웃는 얼굴로 아이바를 돌아봤다.
"니노 지금 바빠."
"바빠요? 왜요?"
"짝짓기 철이니까."
- - -
낯선 인어가 돌아가고, 부모님까지 가게에 돌아온 터라 아이바는 가게 안쪽 구석자리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웠다. 일도 안 돕고 누워만 있을 거라면 집으로 가라며 등짝을 맞았지만, 아이바는 둥글게 만 등을 피기는커녕 대자로 누워버렸다. ㅉ, 짝짓기..철...? 니노가.. 니노.. 니노가...
"바보 아냐? 진짜로, 바보 아니냐고!!!!!"
아이바는 오노라는 낯선 인어의 말을 곱씹었다. 짝짓기? 짝짓기를 ㅇ, 왜, 어? 자기가 뭐라고, 어? 나는? 그럼 나는? 인간은 짝으로 쳐주지도 않는다는 거야? 어? 웃겨 진짜. 아이바는 아버지의 낮잠용 이불을 쥐었다. 뭐? 당분간 못 만나? 다앙~분간? 허? 쳇, 진짜 어 짝짓기 철인 건 왜 말 안 해? 꼴에 바람피우는 건 숨기고 싶었나보지? 어? 진짜. 어? 푸른색의 이불 위로 깊은 주름이 잡혔다. 아이바는 팔뚝에 핏줄이 설 정도로 이불을 쥔 채로 신음했다. 으으으... 진짜..
"도대체 뭐냐고!!!"
내가 애인 아니었냐고!!! 아무한테나 노래 안 불러준다며! 어! 키스도 했잖아!!!
"악!! 뭐야!!!!"
"주디 안 쫌매나! 라디오 안 들린다 안 카노!! 사내새끼가 목소리만 커가-"
아이바는 어머니가 던진 소쿠리를 들어 방구석으로 던졌다. 그러나 어디서 그딴 버릇을 배워왔냐는 호령에 아이바는 그것을 다시 주워 아버지에게 건네드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짜증이 난 탓에 걸음마다 쿵쿵 소리가 났다. 이씨- 엄마가 뭘 알아! 괜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할 말을 삼킨 아이바는 도끼눈으로 어머니를 노려보는 게 전부였다. 어머니의 구수한 욕에 아이바는 눈을 크게 뜨고 마음속으로 심통을 부리다가 아버지가 어머니를 잡고 있는 동안 가게 구석에서 소라고둥을 잡아들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시장은 꽤 한산했다. 여름 해안가 마을이라고 다들 관광지로 유명하지는 않다. 아이바 역시 높은 빌딩이 반짝거리는 도시를 선망하기는 했다. 검은 정장에, 광이 나는 구두와, 비싼 차 같은 것들을 부러워했었다. 슬리퍼 사이로 작은 돌이 굴러들어와 발바닥을 괴롭혔다. 아이바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발을 털었다. 발가락에 걸린 슬리퍼가 달랑거리며 발바닥에 부딪혔고 아이바는 몇 번인가 더 털어내고서 다시 발을 땅에 디뎠다.
아.
아이바는 그제야 품에 안긴 소라고둥을 인식했다. 전화기라던, 니노미야에게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제 품에 안겨있었다. 비록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인어들 모두가 그 이야길 들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일단 니노에게 닿을 수 있다면. 아이바는 고개를 저었다.
뭐가 예뻐서? 뭐가 아쉬워서 내가 바람난 인어 따위를 생각하고 있어? 됐네요. 나도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어. 아직 안 죽었을 거라고, 내 인기.
한 번 고개를 끄덕인 아이바는 가까이에 보이는 쓰레기통으로 걸어갔다. [일반 쓰레기]라고 적힌 구멍에 소라고둥을 대어보지만, 들어가기는커녕 끼긱 불편한 소리를 냈다. 아이바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소라고둥을 손에 든 채 항구를 향해 걸어갔다.
- - -
깊은 바다 아래로 소라고둥을 떨어트린 아이바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세 시간쯤 전에 저녁을 차려 먹었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20분 전에는 다음 출항 일정에 관한 연락을 받았다. 크루즈의 선원으로 일하는 것은 꽤 버거운 일이다. 손님으로 지내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단 며칠의 항해라 해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경우의 수로 따지자면 거짓 조금 보태 7만 개 정도 있다. 이제까지 그런 적은 없지만, 목숨이 걸린 순간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바는 세상의 끝까지 펼쳐지는 바다를 사랑하고, 그 아래 헤엄치는 생명이 신기했다. 갑판에 올라와 노을이 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오묘한 색이 사람을 홀렸다. 그렇게 달이 뜨고, 하나둘 짙어지는 별빛은 아이바에겐 그 어떤 도시의 반짝임보다 화려한 바다 위의 사치였다.
가벼운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니 별빛은 고사하고 습한 날씨에 곰팡이가 기승을 부렸는지 누런 자국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사 가재도. 아이바는 침대 구석에 두었던 핸드폰을 찾으려 몸을 돌렸다. 충전기를 꽂은 핸드폰 옆 검은색의 게임기에 초록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충전 다 됐네. 니노가 사달라고 했던 게임도 사뒀는데. 쳇. 짝짓기? 참나.
"어떻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냐."
아이바는 핸드폰에 알람을 맞추곤 짧은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면 바다로 가야지.
- - -
그 후로 정확히 나흘이 지났다. 어쩌다 찾은 두 번째의 소라고둥을 손에 든 채로 잠이 든 아이바를 깨우는 손길이 물에 젖어있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아이바의 볼을 타고 귓가로 흘렀다. 으응? 눈을 뜨니 젖은 검은 머리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차 그의 뒤로는 하얀 별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깔끔하게 뒤로 넘어간 머리칼 덕에 니노미야의 하얀 피부가 달빛 아래서 빛을 냈다. 별빛처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아이바는 다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깨에 닿은 니노미야의 손을 겹쳐 잡았다. 입꼬리가 휘는 그의 얼굴에 아이바는 울상을 지었다.
"바람 피우고 오니까 좋냐?"
"뭐?"
아이바는 물에 젖어 차게 식은 그의 몸을 안기 전 그 말을 전해야 했다. 한 번 안아버리면 말은커녕 입술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니노미야는 품에 안기는 따뜻한 인간의 체온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웬 바람? 반가워서 그래? 그나저나 너 왜 여깄어. 감기 걸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말에도 입술을 일자로 다문 채 훤히 드러난 니노미야의 쇄골에 이마를 붙였다. 니노미야의 허리 아래에 둘린 수건으로 뚝뚝 물방울이 떨어졌다. 큰 수건이라도 하얀 다리를 전부 가리진 못하는지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하얀 발목을 찾을 수 있었다.
"놔봐. 나 옷만 찾아 입고 올게."
아이바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니노미야는 한숨을 푹 쉬고는 아이바의 등에 팔을 둘렀다. 품이 넓은 나시가 들썩이도록 울음을 참는 모습에 웃음이 지어져 니노미야는 그대로 아이바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토닥토닥. 금방 인간의 체온을 되찾은 인어의 따뜻한 손이 아이바의 넓은 등을 매만졌다. 못 본 사이 더 탔네. 니노미야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조금씩 흔들었다. 따뜻하고 좋다.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허리를 더욱 가까이 끌어안았다. 바다의 냄새가 났다. 아이바는 속박을 풀어내려는 듯 제 팔을 잡은 니노미야의 어깨를 물었다. 싫다고.
"다 벗은 채로 프러포즈하는 건 좀 아니잖아. 잠깐만 놔줘 봐."
프러.. 프러포즈?
"서프라이즈도 못 해주겠네, 진짜."
아이바는 고개만 살짝 들어 니노미야와 눈을 마주쳤다. 겨우 높이가 맞은 눈동자에 니노미야가 손을 들어 아이바의 얼굴을 감쌌다. 그래, 프러포즈요. 인간아. 니노미야는 아이바가 어벙벙해진 틈에 팔을 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니노미야가 허리에 두른 수건을 쥔 채로 모래사장을 걸어갔다. 필시 바위 뒤에 숨긴 제 몫의 옷을 찾으러 가는 것이겠지. 아이바는 수건이 아이바는 멍한 눈으로 경이로운 두 다리를 살폈다. 물속에서는 전혀 다른 색의 비늘로 뒤덮이는 두 다리가 휘적휘적, 한 발 한 발 모래사장 위로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프, 프러포즈라니?"
"지금 좀.. 그런 시기거든."
"그런 시기?"
"새로.. 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시기랄까?"
"짝짓기철이라는 거야?"
니노미야는 반점이 자리 잡은 아이바의 한쪽 어깨를 아프지 않게 밀쳤다. 그래, 짝짓기철. 아이바는 품에 안긴 니노미야의 어깨에 턱을 기댔다. 셔츠 깃이 아이바의 볼을 간질였고 니노미야는 아이바의 무릎에 앉아 손에 들린 천을 조금씩 풀어갔다. 꼼꼼하게 잘도 묶었네.
"어떻게 찾은 건데, 오다 잃어버리면 안 되잖아."
아이바는 가는 손가락을 움직이는 니노미야의 목선과, 턱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거슬리는 셔츠 깃 위로 드러난 하얀 피부가 보이는 자리에 몇 번이고 맞추었다. 프러포즈라니, 생각도 못 해봤는데.
"이거 구하러 엄청 멀리까지 갔었어. 물고기들이 노랗고 파란 그런 곳까지."
"오키나와?"
아이바는 저를 노려보는 눈에 눈웃음을 지었다. 더 멀리. 태평양 어딘가의 섬이려나.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허리를 더욱 가까이 당겨 안았다. 하늘 위로 반짝이는 별빛이 니노미야의 검은 눈동자까지 닿았는지 일렁이는 눈빛에 아이바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프러포즈라니!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쇄골 사이로 얼굴을 한 번 더 파묻었다. 진짜 귀엽잖아.
"좋아. 그대로 눈 감고 있어."
니노미야는 꽁꽁 묶인 천을 겨우 풀어냈는지 한 손을 들어 아이바의 눈을 가리고서는 아이바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아이바는 눈 위로 닿는 니노미야의 손을 두 손으로 덮었다. 응. 감았어.
"셋에 눈 뜨는 거야."
아이바는 대답 대신 니노미야의 손을 붙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니노미야의 손이 떨어진 후에도 구겨진 아이바의 눈주름이 펴지질 않았다. 뭐 하는 거야. 까르르 웃어버린 니노미야가 아이바를 불렀다. 아이바, 이제 봐도 돼. 아이바는 오른쪽 눈을 살포시 떴다. ㅁ, 뭐야. 이게.
"인어들은 말이야. 구애할 때 세상에서 제일 값진 물건을 갖다주거든."
"이거.."
"난파선에서 찾았어."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손에 들린 조개에 손가락을 얹었다. 새하얀 조개껍질을 연 니노미야의 다른 손가락에는 이미 같은 반지가 끼워진 채, 아이바는 조개 사이에 놓인 반지를 조심스레 들었다. 이거, 이거 가지러..
"인어한테 주려면 뭐, 대포알이나 이런 것도 통하는데, 컥- 숨, 숨 막혀."
아이바는 니노미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인어를 만났더라면 보석 몇 알이면 될 일이었는데, 인간을 만나는 탓에 인간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고르느라 며칠을 보냈다. 이틀 만에 목걸이를 찾았다가 다른 놈에게 넘겨주고 이틀을 더 헤맸다. 깊은 바다 아래서, 전화 너머에 니노미야를 찾는 인간이 있다고 전하는 친구의 말에 웃음이 지어졌다. 니노미야는 자신의 몸에 닿은 인간을 안았다.
"평생.. 함께해줄래? 물 위로 나온 인어는 인간만큼 살거든. 그래서.."
니노미야는 눈을 마주친 인간의 눈을 바라봤다. 니노미야만큼이나 휘어진 눈꼬리에 니노미야는 말을 멈추고 입을 맞췄다.
"거절해도 잡아먹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거절 안 해."
"엣. 이렇게 쉽게? 좀 튕겨야 재밌는데."
아이바는 니노미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끼워줄 거야?
"안 맞을 수도 있는데."
니노미야는 반지를 받아들고서 아이바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의 끝자락에 반지를 맞춘 채 시선을 나눈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침을 꿀꺽 삼켰다. 다시 무르기 없어, 알지? 응. 아이바는 반지를 든 채 머뭇거리는 니노미야의 손목을 잡고 내리깐 목소리를 냈다. 평생. 아이바는 스스로 손을 움직여 반지에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다행스럽게도 얼추 사이즈가 맞는 듯했다.
"평생, 함께하자. 카즈."
아이바는 반지로 묶인 연인의 볼을 감쌌다. 무심하게 튕겨도 된다는 말을 하는 주제에 귓가가 발갛게 올라서, 아이바는 손가락으로 니노미야의 귀를 건드렸다. 다른 손으로는 물기가 말라 흘러내린 머리칼을 넘겨주고 그대로 얼굴을 가까이 했다. 또다시 바닷냄새가 났다.
"선물 고마워."
인어에게도 처음인 선물이었다. 아이바는 별빛을 반사하는 니노미야의 검은 눈동자가 감기는 모습을 봤다. 인어의 속눈썹이 무척이나 길어서 아이바는 아무런 생각없이 그 눈 위로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작은 코 위에 입을 맞췄다. 흐흥, 소리와 함께 그의 콧잔등이 움찔거렸다. 입술이 닿기 직전 니노미야가 입술을 벌렸다. 작은 입술이 속삭였다.
"좋아해, 인간."
"나도 좋아해, 인어 씨."